오케스트라 첫 무대
차량 외기온도가 41도를 찍은 날,
건하는 이모부 양복바지를 입고 허리가 작다고 연신 힘들어했다.
엄마 에어컨 틀은 거 맞지? 바지가 더워서 그런가? 더 더운 거 같아.. 형부가 주신 십몇년이 된 싼타페는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도 도대체 시원해지지 않았다. 여름에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도 목에서, 몸통에서 흐르는 땀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앞자리에 앉아 운전하는 나도 더운데 선팅도 되지 않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직광을 받은 애들은 더 더워했다. 연신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건하는 내내 바지 탓을 했다.
엄마 이 바지.. 왜 이래?
허리가 작아서, 앉으면 남대문이 열린다고!!!
허리 32인치 바지가 작다고 연신 불평하는 건하에게 살을 빼라고, 그만 좀 먹으라고 자존심 상하지 않게 말하려다가, 그냥 참아!라고 얘기했다.
예하는 엄마 꽃사올 거야? 누구랑 같이 올 거야? 묻다가 꽃이랑 간식은 사 올 수 있지만 엄마 혼자 간다니까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문화예술회관 입구에서 악기를 챙겨주며 아이들을 들여보내는데, 건하가 아빠는 오는지 물었다.
엄마.... 아빠는 몰라?
알아.
그럼 오겠네~
아이들이 걸어가던 그 길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나는 눈을 감았다.
춘천에서 가장 더웠던 날 중에 하루, 건하 예하가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가게를 대충 정리하고 춘천에서 제일 싸다는 도매상 꽃집을 찾아 꽃 한다 발을 사고, 애들이 좋아하는 마카롱을 샀다.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구두를 신고 나오는데, 구두 밑창이 덜렁 거렸다.
한동안 신지 않았던 구두를 벗고 지희언니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흰색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티켓 두장.
한 장을 예매했는데, 예하가 말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오케스트라 연주회 한다고 하면 꼭 올 거야. 엄마 아빠 자리도 예약해 주면 안 될까?
아빠라는 말이면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 엄마에게 조용히 손을 비비는 예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떨어져 있지만, 예하 위치에서 잘 보이는 자리 하나를 구했다.
예하는 연신 엄마 고맙습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자리에서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조명이 켜지지 않은 무대를 보며 나는 목을 긁으며 울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자기 위치에 자릴 잡아 시작된 연주
예하는 앙코르까지 전체 7곡 중 한곡만 연주를 하고 건한 6곡을 연주했다.
앞자리에서 예하와 눈이 마주친 나는 손을 흔들고 , 예하는 곡을 연주하고 퇴장을 하며 나에게 손가락 하트를 보냈다.
클라리넷을 부는 건한 연신 시선을 돌리며 나를 찾는 것 같아 손을 들고 싶었지만, 할 수 없어 마음으로 건하야 엄마 여기 있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연주회 내내 무대 위에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했다.
비록 이 자리에 축하하는 사람은 나뿐이지만, 분명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더 축하하고 기뻐하시리라 생각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단원들이 인사를 하고 퇴장하는 순간 예하는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나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예하는 처음 손가락 하트는 엄마한테.. 그리고 끝나고 보낸 하트는 멀리 있는 아빠한테 보낸 거라고 말해주었다. 엄마한테 작은 하트 보내서 미안해.라고 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예하, 건하에게 미안하고 정말 고마웠다.
무대 밖에서 연주회 소식을 듣고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기다렸던 친구를 만났다.
가족들에게는 말도 못 한 연주회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예하 건하 꽃다발을 들고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건한 연주회가 떨린 것보다 바지 허리가 작아서 앉아있기 힘들었다고 말하고, 예하는 한곡만 연기, 못하는 부분이 많아 활을 떼고 연주하는 척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아이들에게 멋있었다고 말을 하다가 울고, 고생했다고 하다가 또 울음이 났다.
애들이 먹고 싶다는 치킨을 사서 친구에게도 사서 들려 보내고 늦은 저녁 우리는 밤이 늦도록 파티를 했다. 차린 상은 초라하지만, 어느 것 하나 풍성하지 않은 게 없었다.
예하는 꽃다발을 보며 좋아하고, 나는 건하의 남대문이 열린 바지를 보느라 웃겨서 쓰러지고 건한 허리 때문에 먹지 못한 저녁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밤이 길었다.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바로 잠이 들었는데 나는 애들의 낮은 숨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에게 아이들 사진을 보냈고
예하와 건하의 기다림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잠든 아이들의 볼을 비비느라 잠들지 못한 밤, 찾아온 새벽 나는 교회로 가, 새벽예배 앞자리에서 감사기도를 드렸다.
기쁨으로 나의 밤을 채워주시고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비록 지금 주님께 드릴 예물은 없지만, 보여드릴 감사의 마음은 가득하다고 감사한 모든 일들을 열거하며 기도했다.
몇 년간 늘 비통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던, 힘든 시간 속에 보물 같은 지지 않는 기쁨의 밤, 환한 백야를 주신 하나님과 아이들에게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