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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퍼도 꾸준히 May 08. 2020

나의 취미생활, 초록이

식물을 기르는 게 취미입니다. 환경에 도움이 되려나요?

이상하게 꽃이 좋았다.

꽃이 좋아진다는 것은

곧 나이가 드는 거다라는 말이 맞다면

나는 진작에 나이가 꽤 들어버린 모양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계절마다 변하는 식물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식물이 주는 초록빛은 공기도 맑게 해 준다니

겁쟁이에 건강염려증인 내가 어찌 식물을 싫어할 수 있으랴.


직장을 얻고 언니의 자취방에 기생하면서

나와 같이 기생할 초록이들을 들였다.

식물의 식자도 모르고 그냥 눈에 예뻐 보이는 아이들을 골랐다.

물론, 자취방에서도 잘 클까요?라고 묻기는 했다.


옥탑인 관계로 햇살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던 그 집에서

곧잘 자라던 아이들은

내가 휴가로 잠시 자취방을 떠난 사이 처참하게 말라죽었다.

언니는 나와 관심사가 참 달랐고,

초록이의 목마름을 알아채지 못했다.


옥탑을 벗어나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겨갔던

두 번째 자취방은

비싼 서울 땅값을 잊을세라

빽빽하게 자리 잡은 빌라촌의 2층 집이었기에

해가 쨍쨍한 낮에도 집 안에 있으면

오늘은 비가 오는구나 싶은 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집에서 식물이 잘 자랄 리가 없었다.

음지식물을 검색해서 신중히 데려온 아이들도

동굴 같은 그곳을 견뎌내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집에서 내 마음을 밝혀줄,

그리고 퀴퀴한 공기를 정화해줄 식물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직장에서 소소하게 식물을 길렀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곳은 해가 잘 드는 곳이었다.


드디어 결혼을 하면서

다시 옥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햇살과 바람이 풍부한 집은 옥탑뿐이었다.


다시 햇살 가득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다.

나사에서 공기정화 1위 타이틀을 쥐어준

스투키 대품(당시 인기만큼이나 몸값이 꽤 나갔다)

통 큰 남편 덕에 여섯 분(盆)이나 들였다.

스투키를 받자마자 예쁘면서 저렴한 플라스틱(!) 화분에

낑낑대며 분갈이를 했다.

벌써 우주에서 제일가는 공기 맛집이 된 기분이었다.


가끔 줄기가 물러지는 것도 있었지만

가끔 어린싹도 내가며 스투키는 잘 자랐다.

겨울 휴가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스투키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방심했다.

난 그렇게 화분을 잘 몰랐다.


유독 추웠던 그 해,

집이며 화분이 얼까 문을 꼭꼭 닫아두고

남편과 따뜻한 베트남으로 떠났던 그 해,

스투키는 별나라로 떠났다.


화분에게 환기란 물과 햇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스투키를 보내고서야 알았다.


그 후로도 참 많은 화분들을 들였고 또 보냈다.

때에 맞춰 물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성가신 일이었다.

화분에는 모름지기 벌레들이 딸려오는 게 자연의 섭리라는 것은

가끔 나를 화분에게서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옥탑에서의 여름과 겨울이라는 계절,

일 년의 절반이라 쓰고 대부분이라 읽는 두 계절은

화분들에게는 참으로 혹독한 계절이었다.


옥탑답게 떠나보낸 화분들은 집 밖에

(혹자는 옥탑에서 파티도 할 수 있고 좋겠다는 말을  건네는 그곳에)

내보내고는 이내 잊었다.

내쳐진 화분에서 이름 모를 풀들이 자랐다.

풀들이 미세먼지를 조금이나마 잡아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버려진 화분들도 지구를 위해 힘을 쓰고 있다고 좋을 대로 생각했다.


물론 밖에서 나는 풀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내가 애지중지 집안에서 키우던 화초들은 그리 쉽게도 떠났건만

얄궂게도 잡초들은 물 한번 제때 챙겨주지 않아도

무성하고 빽빽하게 잘도 자랐다.


제로웨이스트에 눈을 뜬 지금

나는 화분을 들이기가 망설여진다.


화원에서 데려오는 초록이들의 집은 다 플라스틱이다.

화분을 들일 때마다 나는 플라스틱을 구매하는 것이다.

내게 들어오면

일부야 다시 화분으로 활용될지 몰라도

대게는 버려질 예정이다.

그리고 그 화분은 500년이 지나도 지구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거나.


게다가 내가 또 화분을 죽인다면

그 또한 화분이 내게 오기까지 겪었을 많은 과정들을

무로 돌리는(혹은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어내기만 하는)

것이 될까 봐 조심스럽다.

화훼농가에서 그 식물을 키우기 위해

무수히 많은 에너지와 비료와 노력을 들였을 것이므로.


결국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내가 내린 결론은

있는 아이들부터 잘 보살피자는 것이다.

나와 함께하고 있는 것들에게 더 정성을 쏟자는 것이다.

어서 나를 데려가라고 갖은 교태를 떠는

어딘지 모르게

집에 있는 초록이들보다 아름답고 튼튼할 것만 같은 그 화분들도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 머지않아

다른 새 화분에게 내 물욕이 옮겨갈 것이므로.


코로나로 집안에서의 시간이 늘어난 봄,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이 이렇게 예뻤던가를

창문 너머로만 감상하던 봄,

그리고 식물들이 다시 나를 유혹하는 이 봄.

나는 오늘도 더 많은 식물과 함께하면 더 행복할 거라는

구태의연한 지름신의 유혹을 견뎌내며

나와 함께하는 화분들에게 애써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수박아, 하트야, 미스김아.

이번에도 목마르게 해서 미안하다.

오래오래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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