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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율 Jan 26. 2023

살자.

그냥 사는 것도 힘든 일



생과사의 기로라는 것은 한순간에 결정된다

안타깝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거의 사실이다.

내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7년간 그저 결절이거니.. 안일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결절을 가진 사람 중 5%만이 암이 된다는 글을 보고 나는 안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5%의 희박한 확률 속에 내가 들어가고 보니 더 이상 안도할 일은 아니었다.

불행은 준비해도 어렵고 준비하지 않으면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난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7년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했더라면..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는 그에 합당한 대처만이 살길이다.


돌이켜보면 그냥 하루하루 아무 일 없이 무던하게 흘러가는 하루는 정말 축복었다.

환우들이 모인 카페에 가입을 했다. 하루에 수도 없이 건강검진으로 갑작스레 암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멘붕 소식들이 올라왔다. 처음엔 놀람 다음으로 슬픔 다음으로 분노 다음으로 수용의 단계를 거친 사람들의 글도 많다.

그런 글엔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고 , 눈 한번 감았다 뜨면 수술은 끝나있고 별일도 아니며 고통스럽지 않다고 위로해 준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당사자로선 수술 후의 고통은 그냥 눈감고 뜨면 끝나있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침 한번 삼키는데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하고 물을 마실 때도 항상 고개를 숙이고 먹게 된다. 밥 먹는 것도 고통이고 약 먹는 것도 고통이었다. 목감기의 백배쯤 되는 그야말로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는 건 재발이다. 5년이나 10년쯤 지난 후 재발했다는 글들이 종종 올라왔다.

번째이니 담담할까?

세 번째 재발이니 그러려니 할까?

아니다. 수술 후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수술대에 올라도 담담해지지 않는다.

갑상선암은 사람을 금방 죽음에 이르게 하진 않지만 결국 인체의 메커니즘을 무너뜨리고 신체를 망가뜨려서 평생을 괴롭게 만들며 수술대에 오르게 한다.

그럼에도 다른 암들에 비해 수월하다는 인식은 그야말로 민폐나 다름없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단조롭고 무던해서 너무도 지루했던 그 시간들을 이제는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어딘가 아프면 긴장하게 되고 긴장하면 몸이 힘들어지고 주변사람들에게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친다 생각하니 이 한 몸이 가진 수고스러움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불편한데 그 누구도 본인이 당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잘 맞춰진 블록들이 조금씩 방향이 틀어져 있어 무너지진 않을 것 같지만 위험하게 흔들리는 그 느낌을 말이다.


흔들리는 그 안에서 미친 듯이 안정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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