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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율 Jan 18. 2023

잘 못먹나보네?

빈혈

수술이 끝나고 나면 일주일이나 2주일 후에 병원엘 한번더 간다.

그 자리에서 수술시 떼었던 조직에서 암이 진짜 나온건지, 전이는 있는지 동위원소치료는 해야하는지를 결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수술후 가야하는 그자리가 세상 참,,많이도 떨렸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보통 3개월, 6개월 단위로 호르몬제의 적응증을 보면서 팔로우업 한다.


그런데 나는 중간중간에 너무 이상하게 아픈곳이 많았다.

어느날은 자고 일어나면 비오듯 땀이 흠뻑 나있고, 또 어느날은 머리카락이 항암하는 사람처럼 뭉텅이로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느날은 등이 이유없이 너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수가 없어 응급실을 제집 처럼 드나들었다.

그래서였는지 내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내 얼굴을 아는 간호사들이 뭐라뭐라 수군거리는 모습들이 포착되곤 했다.

하지만, 어쩌랴...내가 너무 아픈것을.


3개월마다 가는 병원이어야 하는데, 요즘은 한달에 한번으로 당겨졌다. 수술하고 더 안좋아진것 같다고 "나를 조금 더 일찍 만나는걸로!" 의사선생님의 말이다.

이말만 들으면 너무 설레는 멘트인데..하핫.



호르몬제의 적응증 중 반응이 심하고 나는 몸을 가눌수가 없다고 얘기했더니, 이렇게 처방이 났다. 의사를 만나기 2시간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채혈을 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예약시간보다 30분쯤 늦게 이름이 불려 의사를 만나러간다.

모니터에 때려박힌 눈은 혈액검사 수치들을 훓고 있다. 그리고 마우스로 수치를 가리키며, "빈혈이 있구요..혈당도 좀  높고, 콜레스테롤수치도 좀 높고.."

뭐..높다는이야기밖에 없다.

그러면서 "잘 못먹나보네..빈혈이.."

환자가 되어서 나는 처음으로 의사에게 반말을 듣고 앉아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의 내놓라하는 병원에 가도 의사들의 태도는 한결같다.

환자의 입장에서 모르고 궁금한 것들이 많은데. 질문을 하면

"그거랑은 상관없는데?"

이런식이다. 반말은 참겠는데,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의사를 만나면 환자라서 약자인가 보다. 내 위치를 실감하게 된다.


아무튼,그렇게 끼니를 잘 못챙겨먹어서 빈혈이 생겼다고 믿는 의사에게 나는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건강식으로 뭘 더 챙겨먹진 않지만, 그렇다고 굶지는 않았다.

내 나름으로 나혼자 내 몸을 건사하기도 바빴다고 주저리주저리 말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나는 그냥 웃었다.

그리고 함께 간 동생은 기계처럼 "언니가 잘 못먹고 있었나보네?"라고..말한다.

동생은 근처에 살지만, 본인도 참 바쁜 사람이다.



다들 아파봐라..저렇게 생각없는 빈말을 내 일이 아니니 할수 있게 되겠지만, 내 일이 되면 참으로 절실하고 아픈상황이 된다.

빈혈이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지만(수치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면 내가 나를 아끼면 되지 않아?

왜 넌 너를 못챙겼니?

라고 묻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큰아이는 올해 수능을 보는 고3이었다. 물론, 수시전형으로 대학을 가리라고 맘 먹어서 수능은 거의 포기상태였지만, 어찌됐든 고3이었고, 대학 때문에 알게 모르게 함께 그 스트레스를 견뎠다.

나는 아이에게 아무말도 안했고, 수시전형으로 입학할 대학을 줄줄이 읊어주는 아이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신은 나왔고, 갈 수 있는 대학은 한정적이었고, 아이는 꿈이 없었다.


이래저래 힘든날속에 내가 나만을 이기적으로 챙기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어느날은 화를 내고, 어느날은 서럽게 슬펐다.


오늘도 국그릇에 밥을 조금 담고 반찬 몇가지를 얹어서 배식받는 사람처럼 한그릇의 저녁을 먹고 있다.


비록..영양가는 없을지 모르지만,

굶지는 않고 있으니 쓰러지진 않겠지?

이렇게 밥먹을 시간이라도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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