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서두를 시작하면 좋을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일단. 연재하던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완성해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연재일자를 계속 놓치고 말았다. 혹시 기다렸을 분들에겐 죄송한 마음이다.
위암 진단을 받고 이제 5년차를 시작하던 아버지에게 한달만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지난 5월에 전신 검사를 했는데 폐에서 안보이던 암이 생겼다고 한다.
소세포암으로 주로 나이드신 분들, 흡연을 오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암이라고 했다.
이건 희귀암이기도 하고 면역항암약값이 백만원이 넘어가기도 하는..이래저래 머리아픈 병이다.
하지만 담당의조차 면역항암을 지금 해서 특별한 효과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환자만 더 힘들게 할 뿐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버지는 이미 목 아래까지 암이 퍼진 상태라고 했다.
서둘러 검사결과를 듣고 한달쯤 지났을 무렵부터 아버지는 자주 응급실로 실려갔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도 해 줄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식사를 못해 우선 일주일정도를 링거를 맞으며 입원하기로 했다.
일주일이 조금 지나서 아버지는 약간의 기력을 되찾으며.
"나 금방 죽지는 않을 것 같다"하곤 허허 웃으셨다.
퇴원날 아버지는 집으로 가고 싶어했지만, 어차피 집에가면 죽말고는 먹을게 없고 쳐질게 분명했다. 실제로 죽도 안넘어간다고 하시는데 집으로 가기엔 리스크가 컸다.
엄마도 연세가 있는데 병든 아버지를 홀로 수발하기엔 무리였고..
담당의사도 호스피스병원을 권유했다. 그렇게 호스피스 병원으로 입원한지 이제 두달 반이 지나간다.
일주일전에 갔을때만해도 힘겹지만, 말은 하셨고, 사람도 알아보았지만. 지금은 고열과 그렁그렁하는 가래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몸부림 칠만큼 아픈 고통을 호소하시며 진정제와 마약성진통제를 맞으며 견디고 계신다.
하루에 석션으로 빼내는 가래양도 너무 많고, 그걸 할때마다 말씀은 못하시고 괴로우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다.
이제 눈동자는 허공만을 응시하고 눈동자의 색도 옅어져서 아버지는 자신만의 고통과 죽음의 시간에서 헤메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의 병원이라서 퇴근하고 아빠를 잠깐잠깐 보러갔는데, 갈때마서 점점 더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게 눈에보인다.
얼마전에 동생이랑 아빠 마지막 이야길 하며 전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뭔가 치밀어 올라 대성통곡을 했다.
어릴적 아빠는 뭔가 일이 안풀리거나 화가나면 늘 폭력을 행사했고, 그건 나나 엄마도 예외는 없었다.
손에 든게 허리띠이건, 효자손이건 배드민턴 채 이던, 뭔든 상관없이 난 매질을 당했다.
이제와서 엄마가 그런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는데 엄마도 방관자였고, 피해자였기에 나는 더 말을 하진 않았다. 내가 말을 시작하면 아마도 엄마와도 인연을 끊어야 할 것 만 같아서였다.
주말에 병원을 다녀와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나더러 더이상 병원엔 오지말라고 한다.
한때는 그냥 빨리 죽어 없어졌으면 싶었던 사람.
한때도 즐거운기억, 좋은 추억이 없었던 사람.
이 세상에 왜 저 사람이 나의 아빠인것인가?를 한탄하게 만들었던 사람인데..
막상 죽음의 순간은 저렇게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허망한것을 보고 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왜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의 말에 난 그냥 알았다..고 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육체와 허공을 떠도는 멍한 눈빛이 잘려고 누우면 자꾸 생각이 났다.
요즘은 전화벨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비보일까..싶어서..
증오하던 사람의 마지막은 나도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괴로워하는 마지막을 보니 무엇인가 사무친다.
그런 아빠와 헤어질 순간이 이제 곧.. 인 것 같다.
몇일내로 돌아가실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호스피스병원의 의사가 얘기했다.
돌아가시기전..정신이라도 좀 맑을때 나한테 사과라도 할 줄 알았는데...그건 그냥 다 드라마속 얘기였다.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있는건지..이제와서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흐리멍텅한 눈으로 무언가를 찾는 아빠의 마지막 의식속에 나와, 엄마와..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다면...
그건 그냥..내 욕심인지도..
...아버지가 오늘 영면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