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 바람에 실려오는 기억

지나간 사랑은 돌아보지 않는것이다.

by 유진율

거리에 수두룩하게 깔린 노란 은행잎들이 보이고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를 흔드는 세찬 비바람이 지나가면 계절은 늘 겨울을 향해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겨울이 주는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나간 기억들에 온몸에 서리를 맞은듯이 아픈기억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어설픈 사랑이었고, 누군가에는 열등감에 시달려 차마 말하지 못한 일이었다고는 하나, 그날의 일들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고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 같다.


대학교때의 일이다, 나보다 한 살많은 신입생 오빠는 쌍꺼풀이 진하게 그려진 동그란 눈을 한 사람이다.

난 무쌍의 큰 눈을 좋아하는데 그 오빠는 내가 느끼하다고 생각하는 쌍꺼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호감이 갔다.


극 내성적인 내가 내 성격을 버리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듯, 난 가끔 그 오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짓이었지만...두 손 두발이 오그라드는 말을 서슴없이 해대고 있었다.


점심시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날 따라 입맛이 없어서 밥을 거의 남겼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스스럼 없이 들고가 "내가 먹어도 되지?"하면서 싱글거리며 내 밥을 신나게 먹어서 내가 벙찐 얼굴로 "어..어.."하게 만들었다.

그 일을 계기로 조금은 기대를 걸었었다.


학교를 마치고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 나와 친구는 둘이서 우산을 쓰고 있었다. 친구가 문구점에 들릴일이 있다고 해서 혼자서 우산을 쓰고 문구점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다다다 거리며 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한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듯 가리고 열심히 뛰어서 나 혼자 서있는 우산으로 뛰어들었다.

"같이 쓰고 가자" 하는데 그때 친구가 문구점에서 나왔다.

그 친구를 본 그 사람은 "혼자 가야겠네."하고 돌아섰다.

비를 맞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마음이 안좋았다.

그리고 내 옆의 그 친구도 내마음과 같은 듯 했다.


이 친구는 나와 단짝이었던 친구였다.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사람에게 가는 내 마음이 그 친구에게 보였나 보다.


그 사람의 관심은 나에게 있고, 나는 친구를 위해 내 마음을 보이기가 미안했고, 그 친구는 나에게 향한 그 사람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날 그친구는 나에게 절교하자는 쪽지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돌아섰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그 사람은 학교에 나오지않았다.


너무 궁금했지만, 나는 아닌척하며 다시 1년을 보내고 시간이 흐른후 그가 군대에 갔다가 다시 복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날인가 자격검정시험 장소인 학교에서 마주친적이 있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나를 쫒아오려했지만, 나는 그를 피해 열심히 내달렸던 기억이 있다.

그날 도망치지 않고 그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내 친구가 그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살면서 종종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면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와 잘 되서 함께하고 있다면 지금보다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버스에 앉아 대기하던 중 그가 차를 운전하며 바로 옆에 서 있었을때 참았었던 눈물이 버스안에서 터져서 숨죽여 울던 그때의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그랬다면...랬었다면..



이제는 처연해질때도 됐는데..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베이듯 지나갈때면 그날의 그가 떠오른다..


내 우산속으로 뛰쳐 들어오던 그 해맑던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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