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시인은 “불평등시대에 탁월한 비유로 시대를 초월하여 작품을 창작한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는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훨씬 뒤에 나타내 보여준다. 여기에서 「저항의 여인상」이라는 다음 백과의 설명이 그나마 눈에 띈다. 또한, 더불어「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기량을 펼친 천재 시인」이라고 해야 한다.
당시에 기생들이 시를 배웠다고 하나 잘 쓰기는 쉽지 않다. 황진이는 기생이지만 인간다운 인생을 살고자 노력했다. 김탁환의 소설에서 황진이는 삼십 대 이후에는 관기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진다. 이후 그의 삶은 금강산을 유람하기도 하면서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역사적인 사건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룰 때, 전하여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각색하게 된다. 이것은 여러 고증을 거쳐서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당시의 시대를 복원한다. 사실의 기록이 없다 해도 이를 인정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에 적시할 수 없는 여러 사실을 유추와 고증을 통해서 창작한 소설은 그만큼의 진위성을 인정해야 한다. 소설에서는 황진이 스스로 기생을 택하였다는 가십거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세인들의 야담류에 흥미가 지나치게 더해져 기록된 가담항설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네이버에서 황진이를 검색하면 기생이 앞에 나오며 심지어 시인이라는 칭호조차 없다. 2023년 7월17일에 검색한 네이버의 소개는 이런 신분 차별적 행태를 비롯 천재시인에 대한 예우를 고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황진이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 그의 신분은 아직도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