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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Aug 17. 2023

껌딱지

김신영 시인

<껌딱지>

         

시커멓게 계단과 현관 앞에 철퍼덕 내려앉은

껌딱지를 떼다 보니 알겠다

껌딱지 하나 떼는 데도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콘크리트 계단 황동에 늘어 붙어 삶에

검댕을 칠하는 껌딱지를 떼어 내려고 하니     


커터 칼과 송곳을 휘둘러 깎아내고 찔러대야

겨우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껌딱지 하나에도

질기고 긴 소멸의 역사가 스미어 있음을 알겠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것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면적이 서너 배인 껌딱지는 떼는데도

상당한 공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오래된 시간만큼 시커멓게 분장을 하고 있는

껌딱지를 떼다 보니 바닥에 붙어 있는 것이

껌딱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지난겨울 문틈으로 숨어드는 바람을 재우느라 쏘다 흘린

실리콘도 여기저기 껌딱지처럼 바짝 엎드려 있다는 것을

바닥에 붙어 있는 것이 모두 껌딱지가 아니라는 것을     


시커먼 자욱만 보면 껌딱지를 탓하는데

함부로 손가락질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몇 개만 떼어 내도 휘어지도록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2019년도 Pen 문학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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