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시인
<장기투숙 중인 첫사랑을 꺼내어 읽습니다>
하얗게 첫눈이 내리는 밤이면
기억의 방에 장기투숙 중인
첫사랑을 꺼내어 읽습니다
백마의 갈기처럼 천지에 내리는
그대는 눈의 격정을 닮았습니다
어느 때인가
눈 쌓인 골목에서 다짐하던 맹세가
오늘은 밖으로 나와 천지에 흩날리고
사랑을 아느냐고
격정을 겪었느냐고
차갑게 묻습니다
하여, 최초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하여
호숫가를 거닐고 있습니다
첫사랑은 호수 깊이 잠들어 있고
어느 바람 부는 날에 또 생각하겠지요
다시 격정의 날을 만날 수 있겠지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루지 못한 고백이 수북이 쌓여
지독한 장기투숙 생이라고 속삭입니다
-불교문예 2019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