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지팡이길>
천년 동안 꽃이 피지 않는 방에서
햇살이 들지 못하는 지하 방에서
긴 잠을 잤어
오래도록 그대의 살결에 백번쯤 묻히는 꿈을 꾸었지
거미가 먼저 그물망을 쳐 놓고 가림 판을 치고
날마다 거미줄이 경계를 그어대는데
불타는 옥탑방에서 태양처럼 이글거리기도 했어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계단이 날마다 녹아내렸지
옥탑으로 향하는 계단이 휘어져 휘청대는 날이었지
하나님이 가끔 오셨지 깊이 끓어대는 밤
별주에 안주를 그을 때 별빛이 북쪽으로 휙 긋는
아름다운 깃을 치고 영혼이 영혼을 부르고 불꽃으로 피어날 때
어머니의 그림자 방을 기웃거릴 때
어머니는 항상 물으셨어, 잘 사느냐고
그래 냅다 눈물이 차 올라와서
잘살고 있어요. 괜찮아요. 그렁그렁
어머니의 아득한 음성이 깊은 밤에
나를 찾아와 궁생원의 나락을 훑을 때
그럴 때는 꼭 하나님도 오셨지
하늘은 젖과 꿀이 흐르고
산등성이에는 무지개가 피어났어
피안의 방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그래, 지팡이로 질퍽이던 대지를 내리치면
마른 길을 걸어갈 수 있었지
그 길에서 사냥하고 떡을 구웠지
맨발로 길을 걷고 있었는데 말이야
동리목월 2017 여름호, 시향 2017 가을호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