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루 김신영 Jun 15. 2023

건반이 궁금해지는 저녁

김신영 시인

웅성거리는 건반이 꼭꼭 들어찬 동네


차가워진 겨울 저녁을 따스히 두드리는 건반이 밤이면
서로의 기슭이 되어
서로의 창이 되어
뚫려있는 가슴을 채우는 곳


저녁이면 집집마다 그대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오고 넘어가고


담쟁이, 배롱 꽃이 담 넘어오고 가듯이

옆집 코끼리가 끓다가 테너 음으로
창을 날아들어 온다


앞집 불고기가 보글 합창으로
현관을 넘어 콰트로를 부르고


우리 엄마, 미역국을 끓이다가 골목에서
저음의 수다로 알토음을 낸다


고양이가 옥상 놀이터에서 북북 긁는 건
벌써 저녁식사를 끝내고 냄새를 지우는 중


그 아침에 내건 나의 건반은
음계를 잃고 골목에서 놀다가
오색 창연한 색깔을 입고 울었지


머릿속이 온통 껌인 원숭이가 골목에 들어서면
울음을 그치고 2층 계단을 뛰어올라
양손으로 현란하게 심장 음계를 두드렸어


하루를 건반 속에 삼키고

입에 손을 대고 눈을 연신 깜빡거리던


지금은 건반들이 다정히 저녁을 먹는 시간


*너무 오래 거울만 보면 원숭이처럼 보인다. 구토, 사르트르 중에서
웹진 시인광장 2018년 5월호,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성남시 태평동의 골목길에서 착안한 건반의 거리, 골목의 끝에서 사람이 보인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하늘과 맞닿은 동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멸(寂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