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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Aug 04. 2024

차칸 마녀의 주술

지난 7월 초에 미오기 느님이 <마술상점> 리뷰를 해 주셨다.

책이 안 팔려 출판사에서 폐기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에 미오기느님이 발 벗고 나섰다. 이에 나도 주먹을 불끈 쥐고 임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껏 책을 여러 권 내었지만 어느 출판사도 대놓고 폐기하겠다는 말은 한 적은 없었다. 출판사와의 악연이다. 처음 책을 낼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 이미 출판계약서도 쓰고 책 교정도 다 끝나고 인쇄기에 걸려 있는 시점에 출판사 대표가 새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그가 횡포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출판을 하지 말라는 전언이었다.  결국 그는 여러 저러 이유로 주간도 내 쫒고 자기가 좌지우지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사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횡포임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내가 드럽게 마음에 안 드는데 할 수 없이 출판하였기에 책도 안 팔리고 더 이상 보관하기 싫은 심뽀이다. 그래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복기하면서 흩어진 바둑알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하는 페북에 올라온 미오기느님의 리뷰


- 착한 마녀의 주술

김신영의 『마술 상점』을 읽다가 창가를 서성거렸다.

199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한 그녀의 첫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을 기억한다.

정갈한 문장,  날카롭고 철학적인 사유는 정화력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시인이 굵은 선을 그으리라 생각했다.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그녀는  나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잘 쓰는 시인도 문예지나 언론에 노출되지 않으면 독자에게 잊혀진다.

『마술 상점』이 네 번째 시집이라는데 나는 두 권의 시집을 알지 못했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손님이 성공을 집어 듭니다/ 당신의 것 하나를 내려놓으시지요/ 깊은 가슴에서 꺼낸/ 실패를 서너 개 내려놓는 당신/ 성공은 좀 비쌉니다/ 하나 더 내려놓으시지요/ 당신은 곰곰 생각하네요/ 불평을 내려놓으며 한참을 서 있는 당신//


다시 진열대에 서성입니다/ 자신감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옵니다/ 무엇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역시, 열등감을 두세 개 꺼내 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종종걸음으로 달려갑니다/ 잊은 게 있어요, 이건 꼭 사야 하는데 하면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집어 들고 옵니다/ 무엇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당신은 추함을 내려놓으시는군요//


마술 상점에 잘 오셨습니다/ 모두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과한 마술이 마음에 걸립니다만/ 하나 남김없이 당신이 바라는 것으로/ 다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당신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다시 당신은 부지런을 집어 들고는/ 한참을 생각하고 있네요/ 그렇게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깊이 앉아 있다가/ 구석진 게으름도 내려놓습니다//

     - 「진열대에서」 전문


그 옛날 마녀사냥에 몰려 처형된 여자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이들이었다.

능력 있고 독립적이고 반사회적인 태도를 취하는 여자들을 사람들은 그냥 두지 않았다. 그녀가 주술을 걸어 우리 집 강아지가 죽었다고 고소하면 마녀로 몰렸다.

여름날 하천의 하루살이만큼 많은 이유로 여자들이 죽었다.


시인은 ‘살아남은 마녀’였다.

그리고 마술 상점을 열었다.


우리 상점에 오세요/ 없는 게 없죠/ 당신이 애지중지하던 스카프/ 잃어버려 찾지 못하던 반지/ 전당포에 맡기고 못 찾아온 시계/ 강을 건너다 빠뜨린 손수건/ 어머니가 잃어버린 참빗/ 애기들이 흔들다 놓친 왕방울/ 모두 여기에 있답니다//참,/ 당신이 제일 궁금해하는/ 유년의 해맑은 기억/ 첫사랑의 연인/ 그리운 어머니/먼저 간 친구들까지/ 모두 여기에 있어요/ 얼른 오세요/ 여기에 다 있어요- 「만물상회-마술 상점 2」 전문


언어의 빗자루를 타고 달밤을 날아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나를 버린 남자를 만나 그때 이미 용서했노라 말해주고 싶다.

시를 쓰는 마녀는 저주의 부적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의 주술을 걸었다. 나는 그녀가 살아남은 마녀가 된 것이 눈물겹다.


하늘에 별등을 달고/ 영혼에 별등을 다는/ 하나님의 창에도 환한 등을 다는/

모든 마음에 별등을 다는 일이/ 천직인 착한 시인//


오늘을 점등하러 골목을 나선다/ 사람마다 난삽한 영혼의 지도/ 어둠마다 맑은 별등을 달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신새벽/ 그대의 마음 창가에도/ 등에 반짝거리는지 올려다본다//


사람들 가슴에 한 빛, 별을 켜는 일/ 그 천직으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공원을 돌아 나오면/ 유엔 성냥으로 확 그어지는 불꽃/ 미욱한 가슴이 조금씩 환해진다//

     - 「별등을 달다-점등인의 사명」 부분


나의 『소행성 사전』에 생텍쥐페리 별은 2578번이다.

소행성 B612에 사는 ‘어린 왕자’는 별에서 별로 뛰어다닌다.

다섯 번째 별은 너무 작아서 1분에 한 번 자전을 한다.

그런데 그 별에  불을 켜는 점등인이 있다.


작고 약하고 모든 가여운 것들에게 별등을 내어주는 마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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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상점』은 초판도 안 팔려 창고에서 누워있다.

가격 8,550원이다.

시집을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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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숲 속에서 약초를 캐고 팔던 마녀들의 노래

Scarborough Fair

https://youtu.be/eJB-ninNVcs?si=DCDisSiKOPHdeh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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