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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Jul 01. 2024

공중을 걸어 허공에 도착했지


공중을 걸어 극지방을 걸어

사막을 걸어 회랑에 도착했지

돼지태반 찬란한 스펙트럼을

동굴 속에 감쪽같이 감추었어
몸 안에 어떤 빛살 하나도 남겨선 안 돼

빛이 몸에 새어 들어
암덩어리가 된 언니를 알고 있어
그 언니, 열 첩의 의사들을 만나 가슴을 도려냈지
집도하는 의사들은 영험한 하나님이야

가슴속에 자라난 풀을 아무도 모르게
잘라내 아주 멀리 던져버리거든


천천히 걸어 긴 회랑으로 와
거긴 하얀 은하수가 흘러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야

사람들 가슴에서 잘라낸 풀이
푸릇하게 자라는 곳이지
풀을 가슴에서 키우느라 힘들었지?

여기 사람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이야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지
먼 훗날 증기공장의 굴뚝이
만남을 주선한다고 했어

나는 회랑에서 책을 읽고 있어
하얗고 푸른 꽃을 안고 한참을 울지
내가 나를 안고 한참을 울지  
 
   시집 <맨발의 99만 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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