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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Aug 12. 2024

네 번째 시집 <마술 상점> 세 번째 장「순이의천년」

네 번째 시집 <마술 상점>은 5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작품을 실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위로와 감사와 긍정의 말이 넘쳐나는 마술상점 시리즈를 실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3번째 장에는 「순이의 천년」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회의 순이와 을의 일상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무엇보다 <사과>와 <용서>라는 테마로 작품을 실었다.


순이의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그녀는 무던히 용서와 사과의 고통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모습이다. 오래전 김부남 사건처럼 칼을 들고 골목에 나타난다. 용서하려고 하나 상대가 용서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흔히 피해자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썩은 마음으로 살지만 가해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2차 가해가 심한 사회다. 상황을 들여다보고 논하기보다 드러난 모습으로 욕질을 한다. 따라서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은 그대로 ‘양의 모습’으로 남는 일이 다반사다.


양의 얼굴가면을 쓴 늑대는 거짓으로 화해했다고 말한다. 사실, 화해는 용서가 선행된 후에나 가능하다. 용서받지 못한자가 성급하게 화해했다고 말하고 양의 얼굴을 하면 모두 믿어버린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무수한 순이의 고통, 그의 착하고 맑은 심장을 주우며 용서를 생각한다. 납을 매달고 마음은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고, 상대를 용서하려고 천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세상은 점점 수다스러워지고, 목소리 큰 자들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표리부동한 자들이 너무 많아져 진실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아 졌다. 따라서 진실을 알기는 더 어려워졌다. (순이의 천년)


허약하고 분한 마음을 수척한 겨울 숲에 버렸다. 그리고 순이의 심장을 읽는 일에 주목한다. 구석에는 미루어 놓은 일들이 밀려서 박혀 있다. (구석) 별일 없이 울리는 비상벨처럼 마음이 오작동의 비상벨을 자꾸 울린다. (비상벨) 그래서 신발을 벗고 지친 마음으로 절대자 앞에 무릎을 꿇는다. 때가 악하다는 그의 음성을 듣는다. (상한 갈대)


드디어 대나무 숲에 도착했다. (당신의 신탁) 마음껏 외쳐도 된다. 살아온 날들의 생환일지를 들고 마구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또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는 일에 골몰한다. 나 스스로 악마가 될 수도 있으니 그것을 경계한다. 머리와 심장을 들어 신께 바칠 살을 발라 각을 뜬다. 어디를 각으로 떠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해저에서)


이렇게 처절하게 몸부림하는데도 독사과를 들고 오는 나쁜 놈이 있다. 맛있는 사과라고 먹으라 한다. 맹독을 숨기고 노래를 부른다. (사과를 물고) 그는 대부분 사기꾼에 난봉꾼이다.


이후 네 번째 장에서는 자신을 탁발하고 유랑을 한다. 그래서 너무 많은 오크, 괴물인간을 만난다. (무지개는 오크를 세고) 기관 없이 신체를 더듬고 말을 더듬고(착란의 말 더듬) 지쳐서 산봉우리에서 격잠이 든다.(격잠) 끝내는 구원을 얻기 위해 겨울의 문장을 읽는다. 그렇게 석 달 열흘을 웃는다. (신념에 부는 연풍)     


    사진은 23년 11월 제주의 어느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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