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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골목

몹시 무더운 여름날 골목길에서

by 휘루 김신영

골목을 휘돌던 바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 골목에 더는 바람이 살지 않는다


바람마저 하느님이 사는 고층아파트로

잔짐 하나 없이 이사가 버리고

빈 생(生)만 골목에 옹기종기 붙어

뜨거운 먼지에 덮여 여름을 나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벽 사이로는

공기를 가르는 바람도 비집고 들어올 수 없지

그리운 골목에 들지 못하고 공중을 배회하지


바람 한 점 없이 여름이 참 더운 골목에서

바람이 바람나서 여기에도 좀 불어 주었으면


손님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가는 골목

지금이라도 바람의 영혼을 데려와

날아가지 못하게 대못질해야 하겠다

그렇게 한 삼 년이 지나면

골목에서도 바람이 살 수 있을까

골목에서도 청량한 여름을 날 수 있을까


고층아파트와 공원의 풀에게 내어준

센 바람을 찾으려 골목 어귀 평상에 앉는다

바람도 무척 미안한지


겨울이면 좁은 셋방까지 치고 들어와

여름내 흘린 땀을 처연하게 거두어갔다

-경기문화재단 우수작가 문집 2019.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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