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99만보. 1/김신영
-99만보를 걷는다
마음이 따뜻해질 때까지
인생이 훈훈해질 때까지
황망히 99만보를 걷는다
99만보를 걷는 건
어두운 골목길에 등 밝히는 일
그대의 행복에 미소 짓는 일
떨어질지도 모르는 어느 나락에서
간절히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기를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휘둘려
겁먹지 않기를
어떤 미혹에도 선을 넘지 않고
의연하게 걸어가기를
악마와 마주친 영혼은
돌아보지도 않기를
함께 있어 좋은 가지 풀잎을 엮어
가슴깊이 외로운 꽃을 피우고
맨드라미 씨알 작은 꽃잎에 매달린
새벽 해맑은 이슬이 되어
내 마음이 따뜻해질 때까지
내 인생이 훈훈해질 때까지
힘써 99만보를 걷는다
맨발은 가진 것이 없다는 무소유의 의미를 품고 있고
99만보는 애쓰는 걸음 중에 가장 완성치에 가까운 것을 품고 있다
하여 맨발의 99만보는 우리들 인생을 은유한다. 가진 것 없이 와서 99만보를 걷기까지 애써야 하는 그러나 어떤 인생도 완성은 아니다. 죽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99만보는 인생이 훈훈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