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옥

김신영 시인

by 휘루 김신영

<파리지옥>

긴 목숨의 삶이 오래 너를 기다리지

간질간질 육질을 지지면서 거리에 자장을 흔들어


너의 새끼발가락까지 무릎에 올려놓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젠 너를 놓아줄 수 없어


누구와도 물 한 잔 나누지 못해 홀로 있었지

불어대는 모래바람 속에서 건조한 살을 만나는 건

사랑, 이라 말하기 불편했어


하여, 먼지바람으로 네 음성을 막고

혹시 너를 만날까 사막 언덕을 돌아 집에 이르곤 했어

허나, 너는 시럽냄새를 풍기며 사뿐히 내게 온다

그 순간, 하얀 꽃대궁을 밀어올리는 욕망이 불처럼 일어나

다섯 장 꽃잎 햇살 받는 영광의 하루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젠, 함묵을 깨워버린 분홍 살점을 내어주지 않으리

나, 오랜 사멸의 늪에서 무척이나 버둥거렸지


삶인지 죽음인지 초로를 마시고 모운을 삼켰지

내 사랑은 지옥에 있거든, 너는 파리지옥에 와 있거든

『불혹의 묵시록』 천년의 시작.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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