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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Jul 11. 2023

시문학아카데미 금요포럼

신영옥 시인론 발표 <길에서 만난 사랑과 애착>

23년 7월 7일 종로 혜화역 좋은공연안내센터 지하 1층 다목적홀에서 한국시문학아카데미 금요포럼이 열렸다. 그날은 김예태 선생님의 문덕수 초기 시와 내가 발표하는 날이다. 나는 신영옥 선생님을 조명하였다.


다음은 발표 전문이다.


<길에서 만난 사랑과 애착>

신영옥 시인론 『길에서 길을 가다』를 중심으로      


발표 김신영 시인, 문학박사    

      

1. 들어가며     

한 사람의 궤적은 그대로 서사를 이루어 도도한 강으로 흐른다. 길은 그대로 인생이 되어 세상의 시간을 흐른다. 어디로 가는지 가늠할 수 없는 강줄기를 따라서 흘러간다. 가다 보면 넓은 바다에 닿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에 시인도 길 위에서 길을 찾으며 물으며 도도한 강줄기를 헤쳐가고 있다. 이에 그의 인생길이 어디에 있는지 그의 길을 따라가 본다.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다르고 신발 문수가 다르듯이 그의 인생도 걸음걸이가 다르고 신발 문수가 달랐다. 그 시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며 어떤 오브제의 다른 모습이다. 또한, 어두운 길을 밝히는 것이며 틈새를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길을 가다 보니 여전히 길이다. 아직도 시인은 길 위에서 길을 가고 있다.     

신영옥 시인은 충북 괴산에서 출생하여 교육계에 헌신하며 시단을 지켜왔다. 계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하여 시와 아동문학으로 활동하며 그의 작시 가곡이 80여 곡에 이르는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등 다수의 협회 회원이며 국민훈장 동백장 등 수훈하고 허난설헌 문학상 등 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그간의 시집으로 『오늘도 나를 부르는 소리(1995)』, 『흙내음 그 흔적이(1998)』-윤병로 해설, 『스스로 깊어지는 강(2004)』-구인환 해설, 『산빛에 물들다-대영시집(2015)』, 『길 위에서 길을 가다(2021)』를 출간하였다.

본 고에서는 그의 최근 시집인 『길 위에서 길을 가다』를 중심으로,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시를 써온 시인의 흔적과 애착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도도한 강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도 수많은 헌신과 희생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길은 온전히 그대로 기쁨이자 행복이며 자랑이자 그리움으로 남는 시간이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만난 사람과 애착이 곧 인생이며 행복이고 기쁨인 것이다.     


‘아들딸’이라 써 놓고/-사랑-이라 읽는다//

‘가족’을 세워 놓고/-둥지-라 껴안는다     

세 살 적 익힌 배려 평생으로 이어지고/둥지에서 익힌 소통 우주로 향하니

어려움도 기쁨도/함께 나누는 밥상머리/양보도 협력도 키워가는 둥지여라     

방 한 칸도 넉넉하다 불평 없는/까치네 집

다독이고 용기 주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우리네 살림에도 사랑이 제일이라

하늘 가득 날개를 펴/사랑 둥지 전한다

-「사랑 둥지」     


시인은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노래한다. 아들과 딸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족은 ‘둥지’라고 껴안아 애착을 보인다. 인생에서 자식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자식처럼 베풀어주어도 한없이 베풀고 싶은 대상이 없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은 지극하고 위대하다 하겠다. 자식에 대한 헌신과 희생으로 내닫는 궁극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애착은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소중한 아이콘으로 다가온다. 시인의 가족 역시 세상에서 긍정과 배려를 베푸는 삶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려를 배운 아이들은 불평보다는 다독이고 용기를 주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에 시인은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룬 자신을 뿌듯해하고 있다.

또한, 시인은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한다.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에서 그의 노심초사를 읽을 수 있다. 수많은 가정이 문제를 일으키는 데 여기에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또 한 번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시간의 무늬 속에 담긴 아들의 일기장//

‘할아버지와 함께 입학식을 하였다. 참 기뻤다’는

내용과 함께 중절모를 쓰신 모습을 그려 놓은/큰아들 양서의 그림 일기장     

한 장 두 장 펼치다 보면/‘열 살 양서가 서울로 간대요.’

부모 품을 떠나 유학의 길에 오르며 차창 너머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던 노랫소리     

엄마 아빠 동생들이 보고 싶을 때는/이불속에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내 눈시울을 적신다     

이제는 아픈 이의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내과 전문의/의술은 인술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따라가는 길이/외롭고 어렵고 힘들어도

묵묵히 걸어가는 그대 모습/신의 축복받으며

굳세게 펼쳐가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아들의 일기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헤치고 의사가 된 아들에 대한 서사가 들어있는 이 시는 스스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배어난다. 그렇게 큰아들은 서울로 가서 공부를 이어가면서 가족이 보고 싶어 울기도 했다는 문구에 자신도 눈시울을 적신다. 아들의 아픈 마음이 동일시되는 현상이다.

부모의 마음은 이처럼 자식의 아픔을 동일시한다. 자식의 아픔은 자신의 아픔이며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열 번이라도 대신 아파주고자 하는 애착이다. 아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따라 사는 길에 다시 축복한다. 신의 축복을 받으며 굳세고 의롭게 그 길을 가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엄하신 듯 인자하신 우리 아버지/믿음으로 자상하신 우리 어머니

어버이의 어지신 사랑 밭에서/오순도순 자라난 우리 칠 남매     

즐겁고 자유롭게 사랑받고 자란 고향/발자국 새겨 가는 갈피마다

꽃길에 새들 노래하고 춤추는 숲 속     

결혼하여 둥지 세운 나의 울타리/인의예지신 높이 세운 시대 가풍에

수신제가 가훈 속/형통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시어른들     

사랑하는 아들딸 삼 남매/여섯 명의 손자 손녀 며느리 사위

열두 명의 자손들 자기 일에 충실하고/부모 형제 스승 친지와 국가

대자연과 문화 문명 기구들이/함께 가는 우리 길에 주님 함께 하시니     

아름다운 이 동행에/하나님 은혜가 충만하게 축복하여 주소서

-「사랑 둥지」     


위의 시에는 시인이 성장하던 과거의 가정과, 이후 가족을 이룬 현재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가 이룬 가족과 가정은 삼 남매 그리고 손자 손녀들, 그렇게 열두 명의 대가족이다. 시를 사랑하고 가르치던 아버지, 믿음을 가르치고 인도한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난 행복하고 온화한 화자인 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제 그도 부모님처럼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며 사랑 둥지를 키웠다.

가정을 이루어 화목하는 것, 서로 다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어느 가정이나 있는 것 같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에 시인은 자신의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면서 흡족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프면 울어라/무엇이 너를 서럽게 하는지

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대여/그대가 가는 길에 버티고 선

육중한 철문/만일 두려워서 열지 못한다면

방황하는 거리에서 흔들리다 쓰러질 뿐이니

물러서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라/한 번 두 번 세 번…….

학문으로 두드리고 진솔로 다가가면/꿈과 열정과 사랑이 있는 한

문은 반드시 열릴 것이다/흔들리지 말고 노력하며 다가가라

가느다란 철삿줄도/펄펄 끓는 용광로를 거쳐 나온 것

상처를 두려워 말고 힘차게 걸어가라/그대는 철삿줄보다 소중한 보배

웃으며 다가가라, 소중한 그대여

-「울고 있는 그대에게」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참지 말고 울라고 시인은 다독인다.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고 말한다. 시구로 미루어 볼 때 참기만 하고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대상에게 하는 말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참는 게 미덕이라며 참을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때로 참는 것이 지나쳐 마음의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현대인은 특히 소외현상을 겪고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은 많은 사람 속에서 홀로 있다는 외로움에서 비롯한다. 이에 자신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그것을 들어줄 대상이 없는 현대사회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넘쳐나고 있다.

‘그대’는 육중한 철문을 열고자 하나 두려워서 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을 열지 못한다면 거리에서 쓰러질 뿐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문은 자녀들이 삶에서 통과해야 하는 것을 상징한다. 물러서지 말고 다가가라고 북돋운다. 학문과 솔직함으로 다가가면 열릴 것이라고 용기를 준다. 흔들리지 말고 다가가서 끝내는 그 문을 열라고 다독거린다. 그대는 ‘철삿줄보다 소중한 보배’라고 하며 소중한 대상이 혈육처럼 깊은 사랑을 부어주는 관계가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3. 사랑의 하피첩


시인은 세계의 여러 곳과 국내의 여러 곳을 여행한다. 그중에 만난 정약용의 하피첩은 시인에게 큰 영향을 준다. 어딜 가나 명승지요 완경(完鏡)이기에 시인은 감상하기에 바쁘다.     


다산 정약용/강진 유배 십 년 결혼 삼십 년 되던 해

아내가 보내온/빛바랜 붉은 비단 치마 하나     

낯익은 신혼 때 그 치마/이리 접고 저리 잘라

아들에게는/‘근검은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좋은 것이니 한평생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

라는 두 첩의 글을/딸에게는 화조도 한 첩을 그려 준 하피첩     

조선 역사 후미진 뒤안길로 밀렸던/실학자 정약용

남편 아내 자녀의 가족사랑이/삶의 근본임을 일깨워준 하피첩

그건 참사랑의 등불입니다/문화재 지정 보물 1683-2호 하피첩은

내가 걷는 길 위에도 그 사랑이 어둠을 밝혀옵니다

-「사랑의 하피첩」     


    유배지로 아내가 보내온 비단 치마, 그것을 조각내어 아들, 딸에게 당부의 말을 편지에 적어 보낸다. 거기에 얽힌 글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그대로 경이롭다. 정약용은 아내의 결혼식 때 입었던 치마에 대담하게 편지를 쓴다. 옷감이나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 소중한 것으로 아낌없이 중요한 의미를 담아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에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자녀에게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에 크게 감명을 받고 그 치마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애틋한 사랑에 눈시울을 적신다.

서로가 아껴주는 가족의 사랑, 유배지에 있는 남편에게 보낸 아내의 사랑, 그곳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서책을 쓰며 헌신한 지식인이자 목민관으로서의 사랑과 나라를 위한 우국 지정, 자녀를 향한 끊임없는 애정이 가득 묻어나 시인도 눈가를 적시며, 거듭 예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약용의 아내는 몸져누워있으면서 남편 걱정에 오랜 세월이 지난 빛바랜 해진 치마를 보낸다. 정약용은 어버이로서 두 아들에게 선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남에게 배우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물리치는 방법 등을 써서 보낸다. 또한, 이제 막 시집간 딸에게는 화조도를 그려서 그의 삶이 행복하고 순탄하기를 기대하며 선물한다.

정약용의 가족 사랑은 신영옥 시인에게 삶의 근본을 깨우치며 참사랑의 의미로 다가온다. 시인이 걷는 길에 정약용의 글은 등불이 되어 시인의 삶을 밝히고 있다.     


때때로/기억은 흐르는 공간을 더듬어

추억 속에서 나를 만나고/대중 속에서 나를 찾게 한다     

어제와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직선 위에 세워지는 부모 형제의 꽃그늘

내 자녀 얼싸안고 뒹굴던/꽃그늘의 살뜰한 그리움

화양연화의 산실을 그리며/내가 오늘 쓰는/한 편의 시

한순간의 기도가/진정 나를 찾아가는 길인지

미완의 그림자로 서서/바람 햇살 붙들고 나에게 묻는다//

이 사람이 내가 바라는 사람, 내가 맞는가?

-「어느 날의 자화상」     


그렇게 열심히 자신을 독려하며 살던 시인은 문득, 자신을 돌아다본다.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가족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화양연화의 그림처럼 살면서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다보면서 자신을 고찰한다.

시를 쓰는 시인은 또한 기도하면서 이렇게 가는 길이 잘 가는 것인지 반문한다. 미완의 그림자로 바람과 햇살을 붙들고 자신의 내면에 묻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내가 바라는 사람, 내가 맞는가?’라는 질문은 자아 성찰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의 자아 성찰은 어쩌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가족과 잘 어울려 살아왔지만 때로 이것이 이기주의가 아닌가? 또는 자신을 위하는 길이 맞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이로써 자아는 성숙하게 행복한 꿈을 꾸며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기억하고 있었구나/흘러간 줄 알았는데,/지워지지 않는 돌이 되어 남았구나     

덩그마니 남겨진 수많은 돌멩이 속에/동글동글 안겨 오는 조약돌 하나

정감 넘치는 세상 되기를 바라는/소통의 선과 색채가

골 깊은 그림자를 엮어 가는 사이     

민족의 수난과 기쁨은 얼마였으며/사랑으로 감싸 주던 손길은 얼마였던가//

결국, 물길도 바람길도/낮은 데로 흐르는 평행선의 구도 속에

자유의 의지인 양 나를 밀어 넣고     

해와 달의 진실한 사랑 앞에/순수를 담아내는 기다림의 내일

바람은 지울 수 없는 시간을 세척하며/잔잔한 노을 속으로 주름을 펼쳐 간다

-「시간을 세척하며. 1」     


수난의 세월이 지나갔다. 결코, 녹록지 않았던 그 시간마다 낮게 엎드려 낮은 데로 흐르던 삶이다. 그렇게 지나간 줄 알았는데 작은 돌멩이들은 민족의 수난과 기쁨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수난과 기쁨이 한꺼번에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온 시간, 지울 수 없는 시간을 세척하는 바람은 오늘도 불어오고 있다. 시간을 씻어내는 것은 고통스럽고 슬펐던 절망스러운 기억일 것이다. 시간 속에 묻은 힘들었던 일들은 이제 노을 속에서 평화롭게 주름을 펼쳐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다.      



4. 여름 동화


신영옥 시인의 노년은 마치 여름날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삶이 펼쳐지고 있다. 평화롭게 안정된 그의 삶이 시에 녹아 면면을 흐른다. 그가 추구한 행복과 삶의 안정을 이루면서 노년이 노을빛처럼 화려하다.

여름의 시기는 계절 중 가장 왕성하게 식물이 자라는 시기다. 식물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왕성하게 광합성을 하고 영양을 축척하여 가을을 준비한다. 시인은 아직도 가장 왕성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거기 틈이 있었어/에둘러 빠져나가는 바람자락 붙들고

꽃인 듯 눈물인 듯/피면서 지는 사이/바로 거기 사람, 사람이 있었어

없는 듯 보이는 틈새로/군중 속 네가 지나가고/어둠이 지나가는 긴 여운에

빛깔별로 일어서는 눈동자가/내 품에 안겨 올 때/붉게 솟아오르는 환한 빛줄기

그 빛에 내 동공은 더 크게 벌려지고/지나가는 발자국들이 둥그렇게 쌓여

용수철이 되는 날/활기차게 다가오는 영롱한 눈동자/그건

푸른 심장 틈새마다 숨겨 둔 너와 나의 기쁨

신성하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비밀이었어/꽃구름 피어나는 하늘가

황금빛으로 익어 가는 들녘에 서서/화살처럼 당기는 틈새 바람 어루만지며

오늘은 활활 타는 가을 산을 오르고 있어

-「틈새 바람」     


삶을 살다 보면 의외로 완벽하다고 생각한 곳에서 틈이 보인다. 그 틈은 아쉬움과 그리움 같은 것들로 꽃이며 눈물에 해당한다. 꽃은 기쁨이자 긍정적인 것이며, 눈물은 슬픔이자 부정적인 것들이다. 이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틈을 발견하고 거기에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그 틈에 없는 듯 보였으나, 어둠이 내리면 너무나 아파서 시인의 품에 안겨 온다. 이에, 시인은 눈을 크게 뜨며 그의 푸른 심장을 안아 들인다. 뜻밖에도 그의 심장에는 틈새마다 기쁨이 숨겨져 있고, 신성하고 아름다운 비밀이 있었다.

사람인 그가 구름이 솟는 하늘가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 바람은 가을 단풍으로 산을 오른다. 따라서 서로 안고 안겼던 틈새의 계절은 더욱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틈새는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 것이다.      


나뭇잎이 무르익어/낙엽으로 날리는 날

또 다른 상념의 길을 찾아 나섰다     

무릉도원 여기인가/달려 나간다

황홀함에 당황하다/길을 잃었다     

보듬고 감싸도 닥쳐오는 추위/움츠러들수록 날 저물고 어두워

이 길이 끝인가/깊은 낙심 속에/숲 속/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니

가지마다 새로움이/별처럼 빛나고/시냇물도 길을 찾아

힘차게 달려간다     

돌이켜 가다듬고 생각을 모아/시련을 반석으로

당당하게 일어서니/믿고 찾는 가슴에 열리는

새로운 길/길 위에 길이 있어/다시 찾아 걷는다

-「길 위에서 길을 가다」     


시에서 길은 흔히 인생을 의미한다. 인생은 길처럼 구불거리기도 하고 쭉 뻗어 가기도 한다. 아니, 길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진 것이 인생이다. 이에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길을 걷는 것은 인생을 걷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보니 나뭇잎은 낙엽이 되고, 상념은 꼬리를 문다. 게다가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무릉도원을 생각한다. 따라서 황홀한 시인은 급기야 길을 잃고야 만다. 길에서 길을 잃어 갑자기 추위가 닥쳐오고, 추위는 어두움과 함께 온다. 이에 시인은 낙심하여 움츠러든다.

그렇게 춥고 어둡다가도 길에서 가만히 있으면 마음은 누그러지고 무섭고 두려운 것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이다. 별이 빛나고 시냇물소리가 들린다. 놀랍게도 길이 나타난다. 시련을 반석으로 바꾸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찾은 시인은 이제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다.     


머리가 하얀 알프스 자락에/하늘을 받치고 선 목가들이 평화롭다     

풀꽃 위에 방목하는/양 떼와 젖소/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방울 소리가

아브라함 겨울 궁전 울림을 타고/흰 구름 두둥실 꽃구름 막을 연다

계곡마다 들려오는/푸른 숲 속 요들송/하얀 벽 창가에 줄지어 선/꽃 얼굴들

하이디가 들려주는 알프스 이야기가/루체른 호수 위에 은물결로 반짝이고

호수 다리 갤러리에 걸어두고 오는 마음/어느 것이 허상인지/어느 것이 실상인지     

한 여름 아기 꽃을 이야기로 엮어가는/영세 중립국

아름다운 종소리가/동서양 벽을 넘어/아늑한 얼음 궁전 등불로 밝다

-「루체른의 여름 동화」     


시인이 소망하는 세상은 동화의 세상이다. 동화 속에는 행복한 공주가 살고 그림 같은 궁전이 있으며 그곳은 풍경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곳이다. 눈 쌓인 알프스에서 그러한 동화의 세상을 만난다. 시인은 동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을 잃고 바라본다.

그곳은 양 떼와 젖소가 풀을 뜯는 목장이 있고 소방울 소리가 들리며 흰구름이 꽃처럼 피어나는 장소이다. 시인은 이러한 곳에 애착을 갖는다. 도시풍경이 아닌 평화로운 자연이 어울린 곳, 이 애착은 그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릉도원은 자연과 함께 무병장수하는 동양적 이상향이다. 알프스에서 그러한 이상향을 만난 시인은 그 장소에 애착을 느낀다. 따라서 시인의 애착은 도시보다는 목가적인 풍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즐겨 찾는 장소는 이처럼 동화 같은 세상이다. 이에 시인은 이곳이 실상인지 허상인지 잠시 장진주몽처럼 아득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의 종소리가 벽을 넘어 얼음 궁전에서 등불을 밝히고 있다.          



5. 나가며     


지금까지 신영옥 시인의 시를 거칠게 살펴보았다. 그는 평화를 추구하고 가족과 함께 행복을 구가하는 긍정의 시인이라 할 것이다. 특히 목가적인 자연에 애착을 보이며 삶을 지탱하고 신앙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따라서 그의 시는 무엇보다 자아로서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배려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바르게 사는 의미를 숙고하는 자세를 보인다.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고 대가족으로 자손을 이끌어가면서 지금까지 잘 살아온 모범생 시인이라 하겠다. 신영옥 시인이 그린 서사와 애착점은 그런 실재를 잘 보여준다.

인생길에서 길을 가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삶을 돌아보고 이 길이 맞는지 고심하는 모습에서 또한, 숙고하고 사색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시인의 면모를 보인다.

길을 걸으며 시간의 무늬를 만나고, 고락 간에 희비가 교차하고 그렇게 다시 삶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그는 앞으로도 염결 하는 정신으로 올곧게 살아갈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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