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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Apr 12. 2022

폭발하지 않은 희망이 흘러가는 곳, 낙산사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 찾아와도 사랑과 평화를 얻는 곳...

5년 전이었다. 아내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아들 녀석을 위한 기도차 낙산사를 가자고 했다. 혼자서 가겠다는 운전기사로 동행했다. 곧바로 아내는 보타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108배에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힘들게 배를 올리는 아내의 모습은 마치 고난으로 감싸진 채 아이를 향한 사랑의 상징과 같았다.


그리고 2년 전. 모친이 장기 입원 중이었다. 의식이 없는 상황이었다. 면회를 마치고 차를 몰았다. 운전을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의 아픈 모습보다 이빨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피가 엉켜진 입술은 보고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폭발했다. 그 당시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찾았던 곳이 낙산사였다. ‘제발 우리 엄마를 살려 주세요!’라는 간절함이 나를 안내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낙산사는 항상 나를 오게 하는 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1년(671)에 창건했다. ‘낙산’은 보타락가(補陀落迦, Potalaka)의 준말이다. 바다 근처 바위가 가파르게 솟아 있는 곳에 관세음보살이 모셨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솔숲을 지나 흙길을 걸어 오른다. 먼저 사천왕문이 나온다. 보통 그냥 지나기 십상인 문이다. 세상의 벽은 모두 문이라고 했던 정호승 시인의 일갈을 다시 흡입한다. 문이 단지 그런 문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는 곳이 낙산사의 사천왕문이다. 일견하지 말고 자세히 봐야할 또하나의 이유이다. 사천왕 중에 지국천왕의 발밑에는 관모를 쓴 관리를 지국천황이 비파를 타며 발장단을 하며 밝고 있다. 광목천왕의 발밑에는 코끼리 탈을 쓰고 새의 부리 형상을 한 생령좌가 뾰족한 대못을 들어 광목천왕이 밟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흥미롭다. 인과응보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곳이다.



곧장 계단을 올라 대성문을 지나면 화마를 견뎌낸 칠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관세음보살의 궁전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이 석탑은 세조 13년(1467)에 세워졌다. 원통보전의 주인공 관세음보살은 고려 후기의 전통 양식을 계승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에서 모셔왔다고 전해진다.



낙산사는 관음성지이다. 보타전은 낙산사에서 가장 큰 불전이다. 불전 내부에는 천수, 성, 십일면, 여의륜, 마두, 준제, 불공견색의 7관음과 1천500 관음상이 있다. 양양 산불에서도 무사한 곳이다. 보타전과 보타각 사이에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이 있다.



관세음보살이 부처의 사리를 건네주었다는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에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이다. 앞서 언급한 큰 화재 때도 화마를 피한, 신성스런 곳이다.


낙산사는 모두 4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원통보전과 응향각, 빈일루, 범종루, 사천왕문이 있는 원통보전 구역, 해수관음상과 관음전,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이 있는 해수관음상 구역, 보타전과 지장전, 보타각, 관음지가 있는 보타전 구역, 그리고 홍련암, 의상대, 연하당이 있는 홍련암 구역이 있다.


나는 이제껏 미소가 이처럼 살아 있는 관음상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묵언으로 소망을 읊조린다. 언어가 필요 없다. 생각 만으로도 마음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더 큰 슬픔 밖에 없다.”는 어느 작가의 말을 되새긴다. 낙산사는 기쁨과 슬픔의 딱 중간에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 찾아와도 사랑과 평화를 얻는 곳이다.


낙산사에는 꿈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걸으면 양쪽으로 낙산사 방문객들의 수많은 소원쪽지들이 바닷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상만사가 우리를 간섭해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폭발하지 않은 희망이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낙산사에 오면 나는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내려오는 것이 또 하나의 루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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