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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Aug 23. 2022

[진진津津]을 읽고

진진, 왕육성입니다... 그의 요리 인생 이야기 역시 멘보사 만큼 맛있다

나이가 들어감은 인생의 농도가 짙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한 색깔에 둘러싸인 삶들이 글이 되고, 나아가 책이 된다. 그 인생을 교훈삼아 살아갈 삶들이 맛이 들어가는 법이다. 그래서 남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거나 보거나, 또는 읽거나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진진’이라는 책을 선택한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호텔 레스토랑을 박차고 나와 골목식당 ‘진진’을 만든 요리 인생이야기”. 대기업을 나와 8년 차 자영업로 살고 있는 나의 처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야기일거라는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수년 전 ‘진진’을 손님으로 가본적이 있다. 후배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는데, 한 후배가 진진을 예약했다. 직장과 거주지가 강남이었던터라 다소 의외였다. 후배는 첫 주문은 무조건 ‘멘보사’ 부터라고 강조했다. 그 때 황홀했던 충격의 맛은 지금도 혀끝에서 맴도는 듯 하다. 


그리고 시간이 제법 많이 지난 후, 터키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생처럼 아끼는 후배가 귀국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는 꼭 소주 한 잔을 해야한다며 날을 잡자고 했다. 제주가 본가인 후배는 제주행에 앞서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나는 진진을 약속장소로 잡았다. 그 당시에도 역시 대만족의 환호성과 탄성이 나왔고, 여전히 여운은 나의 귓전에 남아있다.


나에게 진진은 이랬다. 그러니 주인장의 인생이야기가 어찌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진진’을 읽기 시작하면 바로 초입에서 ‘글쓰는 세프’로 유명한 박찬일의 추천의 글을 만나게 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마음에서 감정이 흔들렸다. 


‘그와 인연이 생기고 나서, 위로 받고 싶을 때 그에게 여러번 찾아갔다. 

… 중략 …

“형,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어!”

“그래요, 찬일 씨, 어떡해요. 조금 참고 기다려 봐요.”

그러고는 더운 술잔을 잡아 내게 따른다. 그에게 위로받고 오는 날은, 처졌던 어깨가 조금 올라가고 기운도 살아난다.’_12쪽


‘그저 힘들 때 그의 가게에 들러 밥 한 그릇을 청하곤 한다. 그러면 그는 바쁜데도 슬그머니 주방에서 나와  옆에 앉는다. 보살처럼 따뜻하게 웃으며.

“힘들지요?”

괜히 목울대가 무거워진다. 나중에 나도 왕육성처럼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나는 긴 세월 공짜로 그렇게 형을 뜯어먹고 살았다. 나뿐이랴. 일렬종대로 서교동을 돌아 열 바퀴, 그 만큼의 인간이 있다. 사람들은 오늘도 외친다.

형, 고맙습니다!’ _15쪽


책 ‘진진’은 왕육성이 말하고,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안충기가 글을 쓴 형식을 취했다. 주인공이 직접 부대끼고 견디며 살아온 이야기가 녹여져 있지만, 자칫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미쉐린 가이드의 스타 세프가 된 왕육성의 인생 이야기가 자칫 위인전 처럼 전개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기우의 완전체였다. '진진'은 왕육성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중화요리의 근본과 역사, 전설적인 중화 요리사의 계보를 꿰뚫어 속을 내보였다. 요리와 장사와 사람에 관한 지식과 상식의 크기를 한층 늘릴 수 있는 백과사전이었다.


결코 녹록치 않았던 그의 인생이 한편의 영화가 되었고, 나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읽는 듯 했다. 그의 고향이야기를 비롯해, 거쳐온 식당들의 흐름도가 타임스케줄 처럼 드러나있다. 그 흐름의 역정歷程에서 그가 인내하며, 노력하며, 때로는 감사해하는 장면들이 삶의 훈장 처럼 활자로 새겨져 있는 느낌이었다. 화교로서의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장면에서는 죄송함이 마치 내 몫인 양 다가왔다. 


‘철가방 시절부터 대상해까지 40년, 인생 2막을 시작한 지 10년이 다 돼가니 진진에는 왕육성 50년 세월이 녹아 있다.’_291쪽

책의 끝 부분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책 속에는 왕육성의 50년 세월에 더해 그가 그 햇수 동안 살아온 시대적 배경까지 나열돼 있다. 이것은 글을 쓰는 안충기의 조사와 취재가 얼마나 알찼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여기에 더해 성공한 자영업자, 왕육성의 성공담을 낱낱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손이 빠른 사람이 있고 느린 사람이 있잖아요. 일손이 달리느느 쪽이 있으면 얼른 달려가서 도왔어요. 계급에 맞는 일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았죠. 주방 밖의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요. 그 덕에 짧은 시간에 모든 부서 직원들과 가까워졌어요. 일이 즐거우니 출근 시간이 기다려지는 거예요. 연회장 담당팀에선 관리하는 창고 열쇠를 내주더군요. 그 안에 온갖 식자재와 귀한 술이 그득했으니 저를 맏는다는 얘기였죠.' _ 176쪽


그의 노력과 정열은 곧 성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수 십년을 걸어온 길에 그와 함께 한 것은 투지와 자신감, 그리고 긍정성이었다. 


'장사꾼은 항상 웃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손님을 보면 무조건 먼저 한 번 웃고 이야기를 시작해라. 그래야 내 말이 손님 귀에 들어간다고요. 얘기할 기분이 아니면 말을 붙이지 말라고도 했어요. 고된 날들이었지만 사회생활의 기초를 배웠죠. 젊은 날 이런 경험들이 내 삶의 영양소가 됐어요.' _128쪽


금수저의 광란과 흙수저의 좌절, 그것은 출생의 징표인양 거들먹거린다. 주어진 삶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마다하지 못하고, 마치 움츠리고만 있다가 존재감 없이 동가숙서가식하는 처지에  천착하는 인간들에게 왕육성은 한 방을 매긴다.


'돈 한 푼 남겨주지 않은 아버지가 섭섭하지 않아요. 그 때문에 몸 던져 일했고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빈손으로 왔으니 반손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떠날 때는 통장 잔고가 0이 되면 딱 좋겠어요. 제 뒤에 남을 가족들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정도는 준비해야겠죠. 거기까지예요. 진진을 대물림할 생각이 없어요. 가장 좋은 유산은 돈이 아니라 덕이거든요. 진진이 계속 좋은 식당으로 발전한다면 그걸로 된 거죠.' _ 257쪽


손자병법에는 '용장勇將은 지장智將을 이길 수 없고, 지장은 덕장德將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왕육성의 성공인자가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준을 넘어서는 그의 노력, 혜안을 품고 있는 그의 도전은 그가 뼈속까지 박아놓았던 덕이라는 인자가 마중물이 아니었나 싶었다.


언제일지 모르나 진진을 찾아갔을때 그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딱 소주 한 잔을 건배와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의 인생 이야기가 소실되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의 세 가지 희망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8미味(1미는 맛난 음식, 2미는 즐거운 일, 3미는 풍류, 4미는 친구, 5미는 봉사, 6미는 공부, 7미는 건강, 8미는 그렇게 깨닫게는 인생이란다.)를 제대로 알게 되고 그래서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나 역시 8미의 삶을 꿈꾸면서...


'일에 빠져 8미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 왔어요. 예로부터 중국에선 서書, 기棋, 금琴, 화畵 넷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품위 있게 인생을 사는 바탕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삶은 여유 있는 선비들 이야기죠. 저는 요리 밖에 몰라요. 살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했으니 우아하게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울 시간이 없었어요. 대신에 미쉐린 가이드 별까지 받았으니 요리사로는 인정을 받은 셈이에요.' _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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