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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Jun 13. 2023

한 조각의 말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말하는 습관도 연습하면 달라질 수 있다

#1 “이 사람은 됐어, 엄마.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지난 설날, 처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모님이 과일을 깎아 내주시려 하자 아내가 말했다. 순간, 장식장 위 못난이 인형처럼 나는 굳어 버렸다. 아내는 유난히 음식 앞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대변한다. 아니, 잘 읽는 척 한다. 남편의 마음뿐 아니다. 아이들의 생각과 의사를 읽어내는 것도 선수다. 그런데 C급이다. ‘됐어!’라는 말의 애용자이기도 하다. 특히 음식 앞에서는 말이다. 그럴 때 마다 “나?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이내 들숨으로 묻히고 마는 건, 아내의 언어 발사의 신경조직이 나보다 훨씬 예민하기 때문이다. 몇 번 따지기는 했다. “남자가 조잔하고 소심하게 왜 이래?” 라는 핀잔에 늘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쿨해 보이고 싶은 남자의 불편한 진실이 부부간 감정을 꼬이게 하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남편은 아내 앞에서 입맛만 다신다.


#2 국내 한 대기업의 상무 이야기다. 별명은 ‘말훅’이다. 말로 한번에 ‘훅’ 가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기는 말 자르기와 ‘알고 있고~’ 달인이다. 상무 밑에는 부장이 있다. 부장은 상무한테 업무를 보고한다. 상무는 부장이 맡고 있는 팀의 전 팀장이었다. 그래서 팀 업무를 잘 알고 있다. 부장이 보고할 때면 “그건 이미 알고 있고… 됐고~”라고 말한다. 다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인데도 예외가 없다. 상무는 매번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부장의 설명이 이어지나, 냉소적인 ‘알고 있고’ 벽에 부딪치고 만다. 보고할 때 마다 이와 같은 장면은 드라마의 재방송처럼 반복된다. 이 지경에 이르다 보니 부장은 상무 앞에 서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상무에 대한 다른 직원들의 뒷담화도 부장의 마음과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부장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위로 삼는다. 하지만 ‘알고 있고’ 상무는 6개 지사의 조직을 책임지고, 1백 명에 가까운 조직원을 거느리는 지역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장은 상무의 앞날 보다는 조직의 앞날이 더 걱정이다.


#3 지난 해 모 신문사 광고대상에서 신인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 눈에 띈다. 국내의 한 제약회사의 상처 치료 연고를 주제로 삼았다. ‘너 결혼 안 하냐?’ ‘너 취업 안 하냐?’ ‘넌 대학 안 가냐?’는 광고카피 위에다 하얀색의 연고를 발라주는 비주얼이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이 팀은 “몸에만 상처가 나는 게 아니잖아요. 말(言)로 인한 상처까지 치유한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어요.”라고 작품의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말로 생긴 상처에는 ‘○○○○연고’가 최고라는 광고 컨셉트가 기발하다. 말로 받은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진짜 약이, 만약 아주 만약에 개발된다면 세상살이가 지금보다는 황홀하지 않을까 싶다.


신문의 한 칼럼에서 본 내용은 이렇다.

사람은 하루 평균 2만5000마디의 말을 한다는 연구가 있다. 놀랄 것도 없지만 여자들은 좀 더 많아 하루 3만 마디를 한단다. 이 말들을 1년 동안 모으면 400쪽짜리 책 130권 분량이나 된다는 거다.


이렇게 많은 말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을까를 생각해본다.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나온 건 아무래도 칭찬의 말은 짧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의 꼬리를 말아 올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같이 말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도 사랑했던 연인 사이, 의리 변치말자며 굳게 약속하며 의형제라 다짐했던 우정 사이, 장래를 보장하며 힘껏 밀어주겠다던 직장의 선후배 사이. 말의 끝자락이 주는 상처로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좋은’ 관계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사람만큼 약한 존재는 없다. 약한 이유는 ‘이성(理性)’과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일 수 밖에 없다. 그 사회가 가정일 수도, 학교일 수도, 직장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 속에는 분명히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그 틈에서 눈총과 멸시로 마음의 수갑을 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을 해코지 않으려는 고운 심성으로, 몽니가 나도 참고자 무던히 애를 쓴다. 생각과 취향이 다를 수 있는 사회에서 누구는 생존의 뜀박질에 숨이 차다. 누구는 감정을 화장하고 메이크업으로 포장한 얼굴 표정을 짓고 살아간다. 누구는 조폭처럼 언어의 흉기를 휘두르며 세상을 견제한다. 그럼에도 사회 속의 우리는,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진정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 보듯 서산 너머 내려가는 해를 보라. 천체학적 태양의 가치는 동일하지만, 해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느낌의 인식이 다르고, 해석하는 감성의 능력이 다름을 말함이다. 가수 김광석(1964~1996)은 말의 역설적 표현으로 노래를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 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만이 긴 숨을 내쉰다.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여자, 가방 없이 학교 가는 아이, 비 오는 날에 신문 파는 애…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 만이 긴 숨을 내쉰다. 백화점에서 쌀을 사는 사람, 시장에서 구두 사는 사람, 한 여름에 털장갑 장수, 한 겨울에 수영복 장수, 번개 소리에 기절하는 남자, 천둥소리에 하품하는 여자… 독사에게 잡혀 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언어를 살짝 비틀어 흥겨움을 주는 노래이다. 말은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밝게 만들어 준다. 말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인기 개그맨의 성공사례도 마찬가지다. 말의 긍정적 희화화가 인기의 가장 큰 비결이다.


최근 산소탱크 박지성도 지친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더 잘해서 통산 300경기에 도전하겠다면서도, “나이를 먹으니 일주일에 두 경기는 너무 힘들다. 이제는 한 경기를 뛰면 무조건 이틀을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8년째 맨유에서 뛰고 있는 박 선수의 성공에는 감독의 말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맨유의 독재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불 같이 화를 내는 성격 때문에 ‘헤어 드라이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박지성 선수는 맨유에 합류했을 때 “최고 수준의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 때 퍼거슨 감독의 한 마디가 박 선수한테는 큰 용기가 됐다. “나가서 싸워라.” 이 말 한 마디에 박지성 선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9,000m2 넓이의 축구장 곳곳을 누비며 ‘환상적인 선수’라는 극찬을 받을 수 있었다. 

말은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아는 언론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페르시아의 현자가 연회에서 사람들에게 말했단다. 어느 부족이 있는데 멀리 떨어진 샘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상한 벌레가 살아서 그 벌레를 밟으면 순식간에 물동이에 나쁜 기운이 퍼져 마실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이 부족은 물을 길으러 갈 때 항상 한 사람이 앞장 서 발 밑을 살핀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은 왕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현자는 그 마을을 찾아 증거를 수집한 뒤 6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가 증거를 내밀자 왕이 웃으며 말했다. “현자여, 증거를 찾기 위해 6개월이나 걸리는 말이라면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았겠나.”


크게 깨달음을 얻은 현인은 자식들에게 유훈을 남겼다. “세상에는 네 가지 말이 있다. 알 필요가 있고 할 필요가 있는 말, 알 필요는 있지만 할 필요는 없는 말, 알 필요는 없지만 할 필요는 있는 말, 알 필요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말이 그것이다.”


보통 권력자의 리더십은 행동에서 나온다. 행동의 표현은 말과 함께 표출된다. 말로 강조해야 행동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말로 권위를 내세우는 리더도 있다. 권력의 리더십은 오래 가지 못한다. 반면, 관념과 철학으로 세상을 이끄는 리더들은 언어로 리더십을 발휘한다. 관념의 리더십, 철학의 리더십은 명예로운 훈장처럼 소멸시효를 적용받지 않는다. 김수환 추기경의 언어가 그렇고, 법정과 성철 스님의 언어가 그렇다. 성철 스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유언은 “참선 잘 하그래이.” 한마디였다. 성철 스님은 평소 ‘깨달은 순간에 번뇌망상이 다 떨어지지 않았다면 깨달았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참선’은 곧 ‘함부로 말하지 말라’라는 함의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모 프로그램이 20대 이상 성인 남녀 629명한테 물었다. ‘살아갈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 동안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라고. 그 질문에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사랑을 더 표현하지 못한’(48.2%)이 1위를 차지했다. ‘삶이 1주일 남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도 ‘사랑’(40.1%)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우리 사랑하자. 말로 먼저 사랑하자. 힘들이지 않고 입만 벌리면 나오는 말로, 사랑을 입에 달고 살자. 참 쉽지 않는가! “사랑합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비로소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지 않나. 그의 입에서 제발 내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꽃들이 되고 싶지 않을게다. 그대가 이름을 부르면 아름다운 꽃들이 탄생하는 것을 보겠는가, 아니면 그대에게 불러지지 않게끔 숨어 사는 투명의 꽃을 만들것인가?


조각가 김영원 교수가 만든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이 말하고 있지 않는가. “백성들이여, 사랑과 평화를 꿈꾼다면 한글에는 언제나 긍정과 희망을 담아야 하느니라.” 말하는 습관도 연습하면 달라질 수 있다. 참 아름다운 세상, 우리 간에 상처 주고 상처 있는 말은 거(去)하게 해달라고 소망한다. 미안하다 서로 어루만져 주고, 사랑한다 보듬으며, 고맙다 미소 짓는 긍정과 존중의 세상에 우리가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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