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통 Jun 21. 2023

좁은 오솔길에서 넓은 인생을 만날 수 있다

인생이란게 별거 있나. 내가 하는 방식이 원칙이 되고 기준이 되는 거다

들을 지나 숲을 지나 고개 넘어 가는 길

들꽃 들만 도란도란 새들만 재잘재잘

누가 누가 오고 갈까 어떤 이야기 있나

뭉게구름 흘러가고 바람만 지나가는

꼬불꼬불 오솔길 마냥 걸어갑니다

꽃들과 얘기 나누며 새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꼬불꼬불 오솔길 마냥 걸어갑니다

구름과 바람 벗 삼아 휘파람 불며 불며

- 김원겸 시 김정철 곡 -


오솔길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많다. 동요가 그렇다. 오솔길이 주는 느낌이 편안해서 일게다. 좁다란 흙길 위에서 추억을 실어 나르기 때문일게다. 길 위 하늘에는 새 소리, 얼굴을 부딪는 바람소리, 귀를 울리는 시냇물 소리. 모든 소리에 집중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편안함 속에 에너지가 생기고 발걸음은 가벼워져서 신명까지 절로 난다. 오솔길의 정취다.


가끔 좁은 오솔길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다른 사람도 만나게 된다. 잠깐 비켜서서 자리를 내어준다. 그리고 그의 뒤를 멍하니 바라본다. 뭐 하는 사람일까, 누구일까? 반가움은 관심이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궁금증은 그에 대한 나만의 프로필을 만들어본다. 사람의 뒷모습은 그래서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앞 모습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뒷모습을 보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물론 깨달음은 쉽지 않다. 최종의 모습에 집중하는 인간의 성향 때문이다. 결과에 집중하다 보니 과정은 쉽게 잊어버린다. 훌륭한 결과에 대한 부러움만 가득할 뿐 그 과정에 어떤 신념과 각오가 들어갔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심각한 고뇌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간의 나약한 습성 탓이다.


습성의 한계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그래서 오솔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하이파이브를 시도해보자. 초면이라도 상관하지 않기다. 상상이라도 괜찮다. 내 삶에서 가르쳐 줄 게 있다면, 낯선 그에게 말을 건네 보라. 상대방에게 배울 게 있다면 그걸 알려달라 졸라 보라. 어차피 인생은 오솔길이 아니던가. 밟히는 게 흙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길이 된다. 오솔길로 시작했어도 과정의 과정이 거듭되면서 다져지면 신작로가 된다. 대로(大路)의 시작도 어치피 오솔길부터였으니.


인생이란게 별거 있나. 내가 하는 방식이 원칙이 되고 기준이 되는 거 아니겠나. 그 정도의 용기는 갖춰진 내가 아닌가. 인생의 오솔길은 결국 내 몫이 아니겠나. 인생의 길이 폭우로 웅덩이가 패인다 해도 흙으로 메우면 된다. 낙엽이 쌓이고 눈으로 덮으면 쓸어내면 된다. 


가끔씩 들꽃이 피어나면 코를 내밀어 꽃 향에도 취해 본다. 내 꽃이라 해서 절대 꺾지는 말자. 오솔길을 찾아오는 벗님들에게 같은 향으로 취하게 하는 거다. 그 향은 나의 냄새요 내가 살아 온 인생의 냄새요, 또 나의 뒷모습을 비추는 거울의 냄새가 아니던가.


보리밭 오솔길로 걸어가면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 뒤를 돌아봐 아무도 없다 해도 실망하지 않는다. 고운 노래가 바람에 실려 귓가를 맴돌며, 저녁놀 빈 하늘이 도화지처럼 펼쳐져 마치 나의 인생과 같은데 뭐가 아쉬운가. 


행여 실패라 해도 인생의 향은 피어나는 법이다. 사람의 뒷모습에 보여진 실패는 나의 자본(資本)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성공의 빛에 가려져 있는 실패한 사람들의 아픔을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실패가 가져다 주는 고통은 아픔이 아니다. 몸에 좋은 쓴 약과 같다. 


‘실패’는 인생을 스토리텔링화 할 수 있는 고귀한 주제다. 나의 실패가 없었다고 소재가 없는 건 아니다. 아버지의 실패 이야기, 선후배의 이야기, 친구 이야기, 동료 이야기, 사촌의 8촌의 실패 이야기가 모두 나의 성공을 위한 스토리 파일이다. 


사람한테 실패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실패할 때 마다 눈물 방물이 퍼져 그려지는 나이테. 그것이 나의 역사요 일기장이다. 잊어야 할 게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성공의 순간은 잊더라고 실패의 과정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주변의 고생했던 삶의 스토리에 귀를 가까이 대어 본다. 몸에는 시퍼런 문신처럼, 심장에도 솟구치는 시퍼런 피처럼 기록해야 한다. 왜? 내 삶의 서바이벌 기록이니까. 그리고 실패의 경험을 신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는 실패 일뿐 감동은 따라오지 않는다.


오솔길을 걷는 느낌으로 가끔은 생각에 취해 보는 것도 괜찮다. 생각에 집중하면 생각도 바꿔진다. 생각의 대부분은 공허한 생각일 뿐이다. 생각을 되새김질하면 못생긴 생각도 걸작의 조각작품처럼 다듬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 소득 없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생각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생각함이 아홉 가지가 있으니, 볼 때 밝음을 생각하며, 들을 때는 총명함을 생각하고, 안색은 온화하고자 생각하며, 태도는 공손하고자 생각하고, 말은 성실하고자 생각하며, 일을 할 때 신중하게 하는지 생각하고, 의심스러울 때는 남에게 묻고자 생각하고, 분(憤)이 날 때는 잘못이 닥쳐 오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득을 볼 때는 반드시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하라.’ 부분 만을 보고 생각을 접어서는 안 된다. 생각을 되(再)생각하고,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끔씩은 ‘내가 왜 달리는 지’ 생각해보자. 행복을 위해 달리는지, 성공을 위해 달리는지, 자신을 위해 달리는지, 자녀를 위해 달리는지.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 끝에 좋은 결론이라 내린 결론은 보통 이렇다. 돈 많이 벌어서 부부가 되면 세계 일주하면서 멋지게 살겠다고. 바쁜 일 끝내면 책을 쌓아 놓고 읽겠다고. 이번 주말만 집에서 낮잠 자고 다음 주말에는 아이들과 캐치볼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음 주부터 아내와 집안 일을 나눠서 하겠다고. 


보통의 사람 대부분은 공력(功力)이 약하다. 청정한 수행자가 아니면 내공의 다스림이 약해 ‘생각 이후’의 액션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에 그칠 뿐이다. 생각하면 당장 해야 한다. 돈이 없어 해외여행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여행부터 떠나면 된다. 바빠도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피곤해도 야구 글러브를 들고 아이와 밖으로 나가면 된다. 되게 생각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곧 생각의 낭비를 줄이는 방법이요 좁은 생각은 멀리하고 넓은 생각을 하는 법이다.


봄이 왔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던 겨울이 갔다. 올 겨울처럼 삼한사온이 잘 맞은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봄인데 무엇을 할건가. 보리밭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을 걸어볼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길이지만, 조금 지나면 확 뚫릴 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오솔길 여행을 이 봄에 떠나 보자. 어떤 역경이나 고난도 오솔길을 걸으면서 담담하게 맞고 잘 극복해 보는 것이다. 


오솔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초조함은 찾기 힘들다. 평범하지만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작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도 오솔길을 걸을 때만큼은 기적처럼 감탄해보는 거다. 오솔길은 축제의 거리가 되고, 꿈의 길이 된다.


함민복 시인은 수필집 제목을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라고 했다.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은 큰 차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막 꿩이 낸 길은 길의 새싹인가. 길들은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며 서로 만난다. 길끼리 만나지 않은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섬(島)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도 이웃처럼 정겹게 여겨진다. 이해인 수녀 시인은 길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반가워요. 다 저의 일가친척 되시는군요!’하는 사랑의 인사를 마음으로 건넨단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고 표현했을까. 오솔길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봄, 신록은 온 누리에 생명의 빛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짙푸르러 가는 세상의 변화 때문에 우리는 봄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 푸르름이 우거진 오솔길을 걸어 보라. 장밋빛 미래를 절실하게 생각하면서, 오솔길에 만나는 이웃에게 정겹게 말을 건네 보라. “반가워요.” 이 봄에 각자 자신에게 맞는 생각으로 인생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다짐하고 다짐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길은 보이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 조각의 말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