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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Jun 27. 2023

도리도리 세상, 십선계(十善戒)로 도리(道理) 리더십을

모든 사람이 도리를 다하는 삶을 살 때 아름다운 별들이 총총 뜰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시험기간을 앞두고 동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엉덩이가 무거운 큰 아이와 달리 작은 아들은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만 들락거리고 집중력을 좀 발휘하지.”


내가 속삭이듯 말하자 아들이 서둘러 응수했다.


“아빠, 도서관에서는 쉿!” 하며 손가락을 자기 입을 거쳐 내 입술에 붙였다. 나는 십선계(十善戒)의 부진에(不瞋恚)를 애써 생각해 냈다. 


잠시 후 아들이 다시 자리를 떴다. 무슨 공부를 하나 싶어 책상 위에 놓여진 책을 보았다. 국어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그 중 아들이 써놓은 하나의 답이 눈에 띄었다. 눈으로 읽혀진 답은 ‘그렇게 살지마.’ 였다. 아들의 답을 보니 도대체 무슨 문제인지 궁금해졌다. 해당 문제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효성이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말썽을 피웠다. 집과 학교에서 빗나간 행동을 하는 효성이한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아들은 효성이에게 “그렇게 살지마.”라고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십선계의 불기어(不綺語)가 떠올라 조용히 웃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희로애락의 통제가 쉽지 않다. 자식으로 인해 가끔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돌고 도는 인생살이라 해도 때론 탐욕적 과잉을 부려볼 때도 있다. 어찌 보면 세상살이 자체가 번민이다. 때문에 나는 십선계를 마음에 담아 암송한다. 불교에서는 번뇌의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10가지 계율을 정하고 있다. 그것이 십선계이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10가지 규율을 간단히 소개한다.


먼저 불살생(不殺生)이다.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이어 불루도(不偸盜).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불사음(不邪淫), 남녀의 도를 문란케 해서는 안 된다. 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불기어(不綺語), 현란스러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불악구(不惡口),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불양설(不兩舌), 이간질을 해서는 안 된다. 불탐욕(不貪慾), 탐욕스러운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부진에(不瞋恚),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끝으로 불사견(不邪見), 그릇된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10가지 규율은 사람의 도리에 관한 것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언론의 사회관련 뉴스를 들춰 보자. 도리를 벗어난 행동은 백이면 백, 뉴스 감이다. 진돗개를 도끼로 때려 죽인 전직 승려는 불살생을 어긴 것이다. 부산의 한 버스에서 벌어진 젊은 남녀의 애정행각 커플 사진이 네티즌들 사이에 아침부터 야동 보는 줄 알았다는 논란을 불러왔다. 불사음의 계율을 안 지킨 행동이다.


도리를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 할 바른 길을 잊어 버리는 게 문제다. 도리를 망각해 버리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정치하는 사람은 뽑아달라고 애원할 때 다했던 다짐의 도리를 금세 잊어버린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도모하는 것이 도리라고 착각한다. 사람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신의를 지켜야 하는데 불사견의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부모와 자식 관계 역시 도리가 있다. 최근 나의 마음을 울린 두 편의 사모곡이 있다. 먼저 한편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사모곡이다. 


“…그러던 몇 달 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혼자가 편하다’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시는 어머니께 반찬을 갖다 드리게 되었다. 늘 집사람과 함께 갔는데 그날따라 혼자 가게 됐다. 나보다는 집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시는 어머니와 모처럼 둘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의례적인 인사로 시작했다. 춥지 않으세요. 난방은 괜찮고요. 어디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그러다 무심코 물었다. 쌀은 떨어지기 전에 늘 사다 놓으시죠? 응, 항상 20kg짜리 사다 놔. 20kg 사 갖고 오려면 무거울 텐데 10kg짜리 사다 드시지요. 그것도 한참 드실 텐데. 쌀독에 다 부으려면 힘드시잖아요.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였다. 10kg짜리 사다 쌀독에 부으면 반도 안 차. 쌀독이 비어 있으면 너희 어렸을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 싫어. 그래서 항상 20kg짜리 사다 쌀독이 차게끔 부어 놔. 그러다 쌀독 웬만큼 비기 전에 다시 사다 채워 놓고.

나는 어머니의 대답에 그냥 무너져 내렸다. 태연하게 어머니와 더 이야기하다 나왔지만 주차장 차 안에서 한참을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 세 끼를 온전히 챙겨 먹기 힘들었던 시점, 끼니로 자주 먹던 수제비, 외상 달고 됫박으로 샀던 쌀, 많이 못 들이고 몇 장씩 사다 쓰던 연탄. 그 시절의 어머니를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살며 얻은 내 작은 성취의 모든 뒤안길에는 자신의 삶이라곤 거의 없었던 어머니의 희생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김동연 도지사가 ‘가슴으로 쓰는 사모곡’이라는 제목으로 한 신문에 실은 칼럼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김 차관은 상고 졸업 후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행정 · 입법고시에 합격했다.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미시간대 정책학박사이기도 하다. 그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서 최선을 다한 어머니의 도리를 사랑했다. 반면 어머니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 아픔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어머니와 자식의 도리는 어쩌면 이처럼 주고 받는 것이 아닐까.


또 하나는 소설가 김주영의 사모곡이다. 대하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은 장편 소설 ‘잘 가요 엄마’를 펴냈다. 등단 41년 만에 처음 불러보는 절절한 사모곡이자 내밀한 자기고객을 담고 있다는 서평이 나왔다.


소설은 배다른 아우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설 속 ‘나’는 제 발로 고향을 떠났지만, 떠돌이로 살게 한 어머니라며 원망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장례를 치르고 아우와 함께 돌아 온 나는 엄마가 쓰던 싸구려 비닐 가방 속에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립스틱을 발견한다. 배다른 형제 간에 대화가 오간다.

‘어머니 립스틱 바른 모습 본적 있어?’

‘본 적 없어요.’

어머니가 그걸 써봤든 몇십 년 동안 핸드백에 립스틱을 놓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어머니 역시 여자였구나, 싶은 연민이 뒤통수를 쳤다.”


작가는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살 수 밖에 없는 ‘엄마’를 소리 내어 부른다. 그 울부짖는 울림은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가 살아 낸 모성을 부르는 소리일 것이다.


언제나 부모의 도리는 자식의 도리보다 컸다. 책임감의 크기 차이일 것이다. 자식의 후회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 데에서 온다. 나 역시 후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나이로 서른 셋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자라오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움은 원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한 쪽만 남았으니 다른 한 쪽에 잘해야 한다며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보이지 않는 아버지였고, 바랜 사진으로만 품어야 했던 아버지였다. 사무칠수록 어머니한테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의 절반이나 줄어든 한쪽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고 후회해야 했다. 도리는 말뿐,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도리를 배반한 고통으로 지금도 깊은 후회를 감당하고 있다. 도리란 그런 것이다. 어렵지 않게, 마음에 품은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 왜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아이들과 별을 보러 갈 생각이다. 별은 어디서든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인간이 빼앗은 자연의 도리가 준 보답이다. 사람들은 중요한 걸 나중에 깨닫는다. 별이 보이지 않으면 후회와 탄식뿐이다. 그래도 나는 별을 찾아 나설 것이다. 별이 보이면 아이들 손을 꼭 잡고 별을 보며 도리도리를 해봐야겠다. 


케페우스(Cepheus) 별자리와 사수 별자리도 찾아보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나는 어머니의 가슴을 뜯어먹고 비로소 시인이 됐다”고 했다. 나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도리를 다하는 삶을 살 때 아름다운 별들이 총총 뜰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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