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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Aug 02. 2023

휴(休) 리더십… 딱 두 가지만 배우자

부채처럼 시원한 여름, 느티나무 그늘처럼 지혜로운 여름  보내기

배움 1. 자유롭게 상상하기



머리 속에는 겨울이 가득하다. 눈이 내리고, 성탄 캐롤송이 들려온다. 지난 겨울에 올랐던 한라산의 설경을 회상한다. 환상적인 눈(雪) 풍경과 꽃이 눈(目) 앞에 펼쳐진다. 여름 속 겨울 상상으로 머리는 시원하나 몸은 여전히 뜨겁다. 사무실의 에너지 구두쇠 절약으로 사무실이 가장 시원하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덥다.


쨍쨍한 햇빛이 시원함을 찾게 하는 여름. 올드 세대 최고의 미남배우 알랭 들롱 주연의 불란서(왠지 ‘프랑스’ 보다는 옛스럽고 정감 있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기억해낸다. 스크린 가득 지중해와 나폴리 근교의 아름다운 풍광이 돋보였던 영화다. 야망을 위해 친구를 살해하고 완전 범죄를 꿈꾸는 청년 톰 리를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눈부신 태양 아래 쪽빛 바다 위 요트의 출렁거림을 기억나게 한다. 옛 생각이 나서 ‘태양은 가득히’를 인터넷 검색해 보면 영화 이야기 보다는 펜션 이름으로 더 많이 검색된다. 멋없다.


사실 여름 휴가는 워커홀릭에게도 기분 좋게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휴가를 떠날 때면 사람의 마음도 태양처럼 활활 타오르게 된다. 열심히 일한 후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 같기도 하고,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기도 하다. 자신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 살아 왔으니 한 여름 내 며칠 동안 휴가를 즐길 권리와 의무가 있다. 멋지게 놀고 맘껏 쉬면서 재충전의 소중한 기회를 가져 보는 것. 긍정의 에너지가 나오고 힘이 솟을 것이다. 힘난다.


일과 휴식의 균형은 사람의 생각을 숨쉬게 한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생각에 몰입하면 창의적 파워를 늘릴 수 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뇌의 쓰임새가 다르다. 일을 비롯해 글과 그림 등을 바라볼 때 먼저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나서 디테일을 살펴보는 인식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조적 사고를 할 경우 그렇지 않을 때 보다 뇌 활성화에서 차이를 보인다. 뇌있다.


일과 사물을 구조화(構造化)하여 사고하려는 경향이 강할 때 뇌의 활동성이 높아진다. 곧 뇌의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조적 사고는 뇌를 젊게 만든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을 때 전체 구조로 바라보면 좋다. 휴식을 통하여 뇌의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일로 지친 심신을 여유로 달래면서 새롭고 창조적인 사고로의 전화를 시도해 보자. 지금껏 일관했던 동일한 시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자.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일 것이다. 여름 휴가를 통해 생각을 싹 틔우고 생각에 몰입하여 긍정적 사고를 키워 보자. 소박할 휴가일지라도 자신은 비범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생각한다.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임현우 교수는 “앞으로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나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상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문맹자이다.”라고 일갈했다. 죽어 있는 생각의 활동 기능을 살려 내고, 폐기 처분한 자기 자신의 상상력 기계에 기름칠을 해 줘야 한다는 말이다. 헬렌 캘러는 “진정한 시각 장애인은 시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상상한다.


도시에 갇혀 있는 당신, 일에 매몰돼 있던 당신, 가사의 무게에 압박 당하고 있는 당신. 이번 여름에 인생을 확 바꿔 보는 상상력 키우기 여행을 떠나보자. 휴식을 통한 재충전으로 자신을 회복시키는 것은 삶에 있어 희망의 틈새이기도 하다. 쉴 수 있고, 떠날 수 있고, 또 되돌아 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잘 쉬어야 일도 잘 할 수 있는 법이다. 떠난다.



 

배움 2. 지구 위에서 지구 보기



曲士不可以語於道

束於敎也

시골 선비에게는 진정한 도를 설명할 수 없다.

자신이 배운 것에 구속돼 있기 때문이다.

 

장자의 추수편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은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고정적 관념과 자신 만이 옳다는 생각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생각과 행동은 현재 수준에서 고착되고 사고의 자유가 없어지면서 기계처럼 돼 버린다. 깨트린다.


어린 시절, 몸 둘레의 세 배가 훌쩍 넘는 팽나무에 자주 오르곤 했다. 거북 등처럼 거친 나무껍질은 맨발로 오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른 팔뚝만한 곁가지에 올라서서 발을 구르는 재미가 솔솔 했다. 나무의 고통 쯤은 생각 못했던 개구쟁이 시절이었다. 아이한테는 쏟아지는 즐거움이 더없이 크기만 했다. 땅 위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아이들이 더 떨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건(?) 현장을 만드는 나와는 달리, 광경을 지켜보기가 더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 모습에 신이 나서 한참을 올라갔다. 끝이다 싶을 때까지 올랐다. 한참 아래 쪽에 있는 아이들이 무척 작아 보였다. 저 멀리 학교 운동장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는 아이들까지 눈에 들어 왔다. 한 치 앞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을 나무 위에서 처음 알았다. 커간다.


비행기를 탈 때 마다 하늘로 솟아 오르는 5분 동안, 좁은 창으로 바깥을 내다 보곤 한다. 큰 나무에 올랐을 때 보았던 땅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사람 사는 세상이 무척 작아 보인다. 그저 단추 구멍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넓힌다.


학창 시절, 어머니한테 투박한 지구본 하나를 선물 받았다. 요즘의 것과 비교해 볼품은 없지만, 그 표면 위에서 파랗고 노랗고, 푸른 오대양 육대주를 볼 수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들을 찾고, 광개토대왕의 중국 정벌을 회상했다. 뉴욕 맨해튼이나 런던 거리를 걷는 꿈도 꾸었다. 당시 지구본은 세계를 보는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지구본 위에서 바라보는 세계의 넓이는 작지만 마음 속 세계는 작아 보이지 않았다. 세상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세상 안에서 보는 시각의 크기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눈뜬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밤 하늘의 별 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사람이 바라 보는 각도에 따라 눈에 보이는 넓이의 차이는 아주 크다. 새로운 의미를 찾을 때, 현재와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자 할 때, 지금의 자신과 다른 모습을 원할 때, 지금 바라 보고 있는 시선의 각도를 바꾸어 보라. 그리고 세상 위에서 세상을 바라 보라.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일 것이다. 바꾼다.


크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우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의 색깔을 찾아 보는 것이다. 바라보는 시선으로 단색이 아닌 다색이 보일 때, 세상은 몰랐던 기쁨으로 가득 찰 수 있다. 이렇게 세상 위에서 세상을 바라 본다면, 그것은 성공의 보증수표가 될 수도 있다. 보인다.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교수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더 큰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이 지구 위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다면…. 올 여름, 잠시 일을 떠나 자기 내면의 충전까지 아우를 수 있으면 한다. 부채처럼 시원한 여름, 느티나무 그늘처럼 지혜로운 여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시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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