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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Mar 08. 2021

[무작정 여행] 서천 · 서산

나에게 인생은 여행이고, 나에게 여행은 숙제이다

금요일 저녁, 여행을 제안했다. 요즘 아내는 나의 제안에 무조건 동의한다. 기특하게 큰 아들이 따라 나선다고 했다. 선뜻 시간을 내주지 않는 아들 역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준거다. 맛있는 음식을 먹자며 감사를 표현했다. 

나는 목적지를 밝히지 않고. 제철을 맞은 주꾸미를 먹자면서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동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웠다. 인근에 있는 별다방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빵을 샀다. 여행은 돌입 전부터 들뜨기 마련이다. 진짜 출발이다.

며칠 전 방송에서 주꾸미 철판볶음으로 연 매출 40억을 올린다는 집을 티맵한테 목적지로 명령했다. 충남서천에 있다. 상호는 서산회관이다.             

11시 20분 경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은 서해바다 바로 앞에 있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과 희뿌연 하늘이 풍경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식당 안에는 1~2개 테이블 만 남았다. 맛집은 코로나와 무관함을 다시 느꼈다. 주꾸미철판볶음 중짜를 주문했다. 주문이 밀려 한참 지나 싱싱한 미나리 한 움큼을 덮은, 살아 움직이는 주꾸미 한 접시가 나왔다. 

철판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주꾸미의 몸부림이 잦아 들었다. 대신 3쌍의 젓가락은 그 움직임이 빨라졌다. 미나리는 부드럽고, 알맞게 익은 주꾸미는 졸깃하다. 미나리 한 접시를 추가해 짠맛을 조절했다. 철판이 비워질 때쯤 흰밥 2인분으로 철판볶음밥을 만들었다. 역시 마무리는 밥이어야 한다. 

식당을 나오면서 아내는 커피를 찾는다. 마땅히 갈만한 커피 가게가 없다. 붉디 붉는 동백꽃으로 대신하자며 마량리 동백나무숲을 향했다. 

1965년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서천의 명소다. 500년 이상 자란 동백나무 85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언덕에 자리잡아 해풍을 피했다지만 일부는 바람을 못 이겨 비스듬히 서있다. 수 백년을 버텨낸 굵은 곡선의 동백나무 줄기가 애처럽게 아름답다. 사시사철 푸르다는 나뭇잎들은 매끄럽고 번지르하다. 3월 하순에 절정이라는데, 지금의 동백꽃도 그 붉음이 강렬하고 곱디곱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한테는 붉은 멍이었다는데, 나에게는 엄마의 삶처럼 다가왔다. 어릴 적 엄마가 불렀던 동백꽃은 슬펐다.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은 낙화마저도 품격이 있다. 나무계단에 떨어진 동백꽃이 아직 시들지 않았다. 누가 만들어놓은 듯 함초롬한 자태가 기록을 자극하여 저장한다. 언덕마루에 있는 동백정에서 내려다 본 서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하다. 오력도라 불리는 무인도의 풍경이 뛰어나다.

드라마 동백꽃필무렵의 주인공 이름이 왜 ‘동백’이었는지 알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해줬다. 

자동차로 몇 분을 움직여서 춘장대해수욕장을 갔다. 철이 지난 춘장대의 풍경은 고즈넉하다. 모래갯벌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들 마저 없었다면 쓸쓸함에 울었을 성 싶다. 바닷바람 소리는 슬픈 그리움을 재촉하는 채찍과 같았다. 얼른 자리를 떴다.

서산으로 향했다. 10년을 다녔던 회사의 공장이 있던 곳이라 친숙하고 익숙하다. 2년 전 이맘때 엄마와 함께 맛집 여행을 했었다.

바로 개심사開心寺를 갔다. 열릴 ‘개’ 마음 ‘심’. 의자왕 때 혜감국사가 창건했다는 조용하고 작은 절이다. 절 초입에 일렬로 나란히 앉아 망원렌즈를 들이대고 뭔가를 열심히 찍는 시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보고 있었더니 작은 새들이 가로로 스러진, 이끼낀 통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이내 셔터 소리가 작렬했다. 작품의 가치는 고생과 비례한다고 했다나.

절은 풍경소리 마저 들리지 않는다. 가끔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평화롭다. 수양하는 곳인가 싶었는데, 내려오는 스님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합장으로 마음의 평온을 바래본다.

사찰의 평화는 서산동부시장의 왁자지껄로 이내 사라졌다. 시장원조호떡집부터 찾았다.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손에 기름을 살짝 발라 솥뚜껑에서 구워내 호떡은 기름 한 방울 없이 건조하고 바삭하다. 1,000원에 2개. 아내는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겠다면서 20개를 샀다. 보통 이렇게 다량으로 사가는 손님들이 많아 대기시간 수 십분은 기본이다. 그래서 한 두개 사서 바로 먹으려는 손님들은 한숨을 토하고서 바로 발길을 돌린다. 

좁은 골목을 나오다가 푸른 한지 같은 감태 위에 기름칠을 하고 굵은 소금을 뿌리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1만원을 주고서 감태김 4봉지를 샀다. 불면에 시달리는 아내는 “감태가 수면을 도와준다”고 했다. 

생선 파는 가게 앞 붉은 플라스틱 통에는 주꾸미가 살아 움직였다. 살까 말까 고민하던 아내가 나를 쳐다본다. “사요?” “사요!”

역시 주인은 할머니. 90도로 구부러진 허리를 제대로 펴질 못 한다. 힘이 부쳐 보이지만 장사 의욕이 강하시다. 

“주꾸미 가격이 어떻게 돼요, 할머니?” 

“1키로에 2만7000원!” 

시장입구에서 아주머니가 외쳤던 가격 보다 2천원이 비쌌다. 

“2키로 주세요!” 아내가 말했다.  비닐봉지에 주꾸미를 옮겨 담는 모습 역시 많이 힘겨워 보였다. 포장을 마무리한 검은 봉지를 건네 받고 할머니의 빈 손에 6만원을 드렸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는데 연거푸 빈손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갈까?’라는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들이 그냥 가자고 했다.

“할머니, 잔돈은 됐어요. 안 주셔도 돼요!”

“뭔 소리여, 잔돈을 받아가야지. 6천원 주는게 맞쥬?”

“예, 사장님.”

축축한 습기를 품은 채 잔뜩 구겨진 지폐를 아내가 받아들었다.

“잘 가시유!” 할머니가 인사를 건넸다. 

“예, 많이 파셔유!”

아내는 시장을 나오면서 노상 매대에서 냉이와 달래를 사면서 6천원을 사용했다. 나물을 파는 주인 역시 할머니였다. 자외선에 검게 탄, 깊이가 있고 굵디 굵은 주름살을 하얀 마스크도 숨기지 못했다. 동백의 붉은 색 같았던 할머니들의 인생이 언제 있었을까 싶었다.

서천舒川의 서는 펴다, 신장하다는 뜻이다. 서산瑞山은 상서로울 서를 사용한다. 서천瑞川이고, 서산舒山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서천에는 상서로운 동백꽃이 있었고, 서산은 동부시장에서 만난 나이 많은 사람들의 골곡진 삶들이 잘 펼쳐졌으면 싶어서다. 여전히 나에게 인생은 여행이고, 나에게 여행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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