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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Aug 11. 2023

계절 소품… 태풍 그리고 가을 꽃

삶이 느슨해질 때 인생의 그라운드에 태풍을 만든다

10년 전쯤 이었을거다. 태풍이 한꺼번에 몰려온 적이 있다. 볼라밴, 덴빈, 산바! 지독한 녀석들이었다. 때린 곳 또 때리면 얼마나 아픈지, 양심 없고 예의도 모르는 센 놈들이었다. 세상에나, 한 달 새 태풍 세 개가, 그것도 엄청 강한 놈들이 몰아쳤으니 한반도한테 위로라도 해줘야 할 정도였다. 태풍은 늘 가볍게 오는 법이 없다.

열대과일이라는 뜻과는 동떨어진 카눈은 올해 6호 태풍도 그렇다. 일반 태풍보다 3배가 길었다고 한다. 카눈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과 땅, 유과실·무과실 나무가 모두 하루빨리 아픈 상처에서 회복될 수 있기를 태풍을 불러 온 하늘을 보고 빌어본다. “오, 하느님!”


태풍이라는 녀석은 지나가면 항상 흔적을 남긴다. 아픔을 남긴다. 눈물을 남긴다. 사랑도 남긴다. 또 교훈(敎訓)을 남긴다. 사람들 가슴에 문신을 새긴다.


우리네 인생에도 태풍이 불어 닥칠 때가 있다. 날씨 마냥 예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 예보관처럼 인생캐스터라도 있다면 도움이 될텐데, 인생은 그저 태풍 앞에 난감할 뿐이다. 우리의 인생이 태풍을 만나면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찢긴다. 인생의 태풍 후에는 온정의 손길이나 베풂이 따라오지도 않는다. 그저 인생 위에 쏟아지는 폭풍우에 고뇌의 흔적이 쌓여질 뿐이다. 자기자신이 헤쳐 나가야 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우리 자신 스스로가 ‘내’ 인생의 태풍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삶이 느슨해질 때, 그저 시간의 흐름에 인생을 맡기고 있을 때, 생활의 속도에 멀미가 날 때. 이때가 되면 내 마음과 생각에 태풍을 몰아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살짝 긴장도 되고, 인생의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기술도 터득할 수 있다. 태풍처럼 강한 놈한테 몸과 마음이 한번쯤 날아가 보면 괄약근 조이듯 인생의 근육도 탄탄해진다.


싱거운 음식이 몸에는 좋다지만 맛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미건조함 속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보다야 태풍의 눈 속에서 회오리처럼 돌아가는 자신을 관찰하고 돌아보는 것도 인생의 과정이다. 태풍 후 눈 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처럼 태풍이 지난 우리네 인생도 맑고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인생의 태풍 소품이여, 안녕입니다.”


태풍_ 나희덕


바람아, 나를 마셔라

단숨에 비워 내거라

내 가슴 속 모든 흐느낌을 가져다

저 나부끼는 것들에게 주리라

울 수 있는 것들은 울고

꺾일 수 있는 것들은 꺾이도록

그럴 수도 없는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또 가벼워져서

신음도 없이 지푸라기처럼 날아오르리

바람아, 풀잎 하나에나 기대어 부르는

나의 노래조차 쓸어가 버려라

울컥울컥 내 설움 데려가거라

그러면 살아가리라

네 미친 울음 끝

가장 고요한 눈동자 속에 태어나


태풍이 지나면 자연의 순환이 가을을 불러온다. 태풍에 가려졌던 가을이 오니까 여름이 떠날 것이다. 가을 꽃 중에 <꽃며느리밥풀>이 있다. 꽃 이름의 탄생은 이렇다. 가난한 농가의 며느리는 제사상에 올릴 밥을 준비하다 쌀알 두 개를 떨어뜨렸다. 흙이 묻은 쌀로 밥을 지을 수 없다고 판단한 며느리는 버리기가 아까워 입에 넣었다. 제삿밥 쌀을 입에 댔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쫓겨난 며느리는 이내 목을 매고 만다. 며느리의 넋은 꽃으로 환생(還生)했다. 혓바닥처럼 생긴 붉은 꽃잎 한 가운데에는 두 개의 쌀알 같은 흰 점이 있다. 이 꽃이 바로 꽃며느리밥풀이다.


이 꽃의 슬픈 사연처럼 가을와서 사람들은 외로움과 고독을 노래할 것이다. 태풍을 가을을 준비하라는 신호탄을 소지하고 있는거다. 뜨거운 여름의 치열했던 삶이 이내 곧 가을꽃들이 진통제 역할을 한다. 가을꽃말을 보면 우리는 가을의 평화를 알 수 있다. 국화의 꽃말은 맑음, 고상함이다. 동요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누나가 좋아했던 과꽃의 꽃말은 신념이고, 맨드라미는 열정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가을이면 하늘하늘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꽃,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이라고 한다.


이름 있는 꽃들은 전설이나 설화가 있다. 늦여름부터 우리들 눈에 쉽게 들어오는 코스모스는 그렇지 않다. 신(神)이 가장 먼저 습작으로 만든 꽃이 코스모스란다. 그래서일까, 가냘퍼 보이기만 하다. 흡족하지 못한 신은 여러 종류의 코스모스를 추가로 만들었다. 최후에 만들어진 꽃이 국화다. 코스모스는 국화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코스모스가 가을꽃의 시조(始祖)라도 된다는 건가. 꽃은 사연을 품고 있지만, 묵묵히 아름다움과 사랑을 선물한다. 가을꽃의 역설은 희망이다.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약속이다. 희망을 품은 씨앗이 꽃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요 고독의 시기인 가을에 피는 꽃의 반어적 효과 때문이다.


가을꽃_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 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강한 비바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풍성한 추수철에 모습을 드러낸 가을꽃


가을 꽃은 우리한테 대기만성의 희망을 선물한다. “고맙습니다, 곧 만날 가을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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