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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Aug 14. 2023

정혁용의 <문밖의 사람>을 읽고…

낮엔 택배, 밤엔 소설가로 두 개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책을 주문한 것은 한 신문의 책소개에 드러난 짧은 도서평을 읽고서였다. 이렇게 소개되고 있었다. '소설가로 등단해 두 권의 책을 냈고 전업작가가 아니라 택배 일을 하는 저자의 산문집. 번역본이 출간된 나라의 초청을 거절한 것도 택배일을 거를 수 없어서였다. 작가로서, 생활인으로서 쉬운 예상을 넘어서는 이 저자만의 삶과 시각이 젊은 날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 같은 개인적 이야기와 함께 담겨 있다.'


물론 나는 이 책 만 주문하지 않았다. 모두 14권을 주문했고, 택배기사의 손을 거쳐 집으로 온 후 가장 먼저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문밖의 사람>이다. 나는 관음증이 있는 것 같다. 성적인 차원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라던가 살아가는 모습이라던가, 뭐 이런 것에 관심이 있는거다. 소설을 쓰면서 택배일을 한다는 거, 일반적인 일이 아니잖은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 "택배요!"라고 외친다는 것,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이유는 이랬다. 소설만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여러 일을 하면서 불거진 수억 원대의 빚까지 있었다. 현실은 자명했다. 그래서 2016년 즈음, 거제도에서 택배를 시작했다. 당시 미혼으로 울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그는 택배일을 하면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부터 일을 시작해 새벽 2, 3시에 귀가했다. 1년여를 거제도에서 택배을 한 뒤 잠깐 쉬었다가 상경해 택배일을 이어갔다.


'택배는 거제도에서 처음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종일 타티아나 리즈코바의 기타 연주를 들었고,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일곱 시 부터 일을 시작하면, 새벽 두세 시에 들어왔다. 밤을 새우고 일한 후 바로 출근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1년을 살았다. 하루 쉬는 일요일도 전날의 물량이 남아 오전에 배송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날이 흔했다. 매일매일이, 살아가는 게 아나라 살아내는 기분이었다.' _13쪽


'여러 직업을 거쳐 좌절의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난 게 택배였다. 육체노동은 처음인데다 강도도 커서 매일 체력의 한계치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건 내 시간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항상 밖에 있는데 하늘을 볼 시간도 바람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쓰러져 자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것도 서너 시간 말이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면 한 줌 일요일 오후의 휴식이 찾아왔다. 이미 체력은 다 소진한 터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소주를 옆에 놓고 하염없이 기타 연주만 들었다.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고 깊은 밤의 어둠이 풍경으로 걸릴 때까지 말이다. 간혹 눈물이 흘렀고 열린 창틈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_14쪽


《문밖의 사람》은 택배기사를 말함이다. 그에 앞선 직업은 소설가이고. 책에는 택배일과 소설가의 삶, 두 가지를 모두 알게 된다. 택배일을 하게 됐고, 해보니 어떠했고, 몸이 힘들면 깨닫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글을 쓰는 것은 결국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고 같았고, 이렇게 두 몫의 삶이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우리는 택배로 아침을 시작하고 택배로 하루를 마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대체적으로 말이다. 나는 책을 읽고 택배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했다. 오죽했으면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이렇게 남겼다. 


'택배일을 하는 분들이 모두 이 책을 샀으면 싶다. 설령 책을 읽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었던 읽지 않았던, 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넘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 책의 독자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택배진상'의 숫자는 줄어들테니까 말이다.


'화를 내지 않게 된 계기는 하나 더 있는데 아파트 배송을 하고 나올 때의 일이다. 엘베가 하나인 경우 문 사이에 택배를 놓고 잡아서 배송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1층으로 나올 때 욕을 먹는 일이 많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삼심 대 초반의 남자가 술에 취한 채로 문이 열리자마자 말을 건넸다.

"야, 이 개새끼야."

'깜짝이야.' 싶었지만 멱살을 잡진 않았다.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얼핏 본 그 남자의 모습이 그날따라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화를 내다 내다 지쳐서겠지. 평소 같으면 "야 이 자식아, 여기 주민보고 택배를 시키지 말라고 그래. 왜 날 붙잡고 지랄이야?'라고 했겠지만 그날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피곤하실 텐데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쳐드렸습니다." _28쪽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대목은 앞으로 페이지 넘김을 멈추고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다. 남의 삶일지라도 나의 삶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반복읽기로 마음에 남아 있는 부분을 나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해 책의 나에게 전해준 긴 여운을 여기에 남기기로 했다.


- 작가는 2009년에 등단했다. 계간 《미스터리》 겨울호의 신인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첫 책은 『침입자들』이라는 제목으로 2020년 3월에 나온다. 소설가로서 본인의 자질은 어떤가?

=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택배를 시작하고 3년 뒤였다. 문학상에 또 응모한 건 마흔일곱이던 때였다. 역시 최종심에만 들었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이 꽤 절망했던 것 같다. '내 소설이 형편없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오래 시달렸다. 덜 자란 어른이지만 그래도 어른이니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는 늘 울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나는 쉽게 싫증을 내는 성격이라는 거다. 절망도 계속하고 있을 만큼 인내심이 강하지 못하다.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쉰한 살에 첫 장편을 냈지. 나도 아직 늦지 않았어.'라고 생각했다. 이때 보험 영업을 한 것이 도움이 됐다. 세일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까. 국내 메이저 출판사 다섯 곳에 투고했다. 2019년 겨울의 일이다. 한 곳은 거절의 메일이 왔고 나머지 세 곳은 답이 없었다. 그렇게 12월 말까지 벤치에 앉아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 싶었다. 하지만 좌절도 계속하고 있을 만큼 인내심이 강하지 못한 인간답게 얼마쯤 좌절을 흉내만 내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라도 계속 쓰겠다. 혼자서라도 가자.'라고 말이다. _38~39쪽


-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때는 없었나?

노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기 싫지만 성공에 대한 욕구 때문에 참으며 하는 것, 포기하고 싶지만 좋아서 참는 것. 당연히 후자가 그나마 쉽다. 아니, 많이 쉽다. 힘든 건 같지만 후자는 괴로움이 아주 덜하니까.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매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쓰면서 간혹 피리 소리를 들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그놈의 피리 소리가 들리는 거다. 세 번이 아니라 수없이 들렸다. 그만큼 많이 내려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수없이 내려갈 거라 생각한다. 아무든 관두려 할 때 마다 그놈의 피리 소리는 정말이지 어찌 그리 귓가에 똑똑히 들리는지 매번 홀려서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의지나 노력이라고도는 1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발견한 운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또 어쩌다 보니 버틴 것일 뿐이고,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그것이 적성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지인들이 "택배하면서 소설을 쓰다니 정말 대단하다."라고 얘기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저 퇴근해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간 것일 뿐이야." _41~42쪽


- 택배일을 하게 됐는데, 시작하게 된 이유와 작가 되기 전의 삶이 어떠했는지?

나는 택배 이전의 시간은 별로 기억하지 않는데,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 택배보다 훪씬 더 힘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아예 지워버리고 싶어서다. 건설회사 직원(작가는 토목환경공학부 학부와 대학원 졸업), 건설업체 사장, 보험설계사, 술집 주인, 막노동 같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이전투구, 접대의 괴로움, 부도, 카드 및 독촉, 수억의 빚보증, 모멸, 인간관계의 파탄, 빈곤, 생계의 공포 등 그 직업군이 갖는 대개의 일을 겪었다. 내게는 무척이나 힘들고 맞지 않는 일이었다. 세세하게 말하자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개의 직장인과 노동자가 겪는 다들 아는 이야기일텐데 말이다.

다만,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항상 발밑에 뱀이 돌아다니고 있는 기분이었다는 말로 대신할 수는 있겠다. 그만큼 내게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맞지 않았다. 거의 20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도대체 어떻게 그 터널을 지나왔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술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술은 싸구려 마약이니까. 마시고 정신을 놓고 그렇게 겨우겨우 버티며 살아 온 것 같다. 지금이야 술이 좋아서 마시지만 그때는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마신거다.

아무튼 그런 일들을 겪은 후, 어쩌다 택배를 만났다.' _54~55쪽

- 장모님 이야기가 나오더라. 부유했던 장모님이 파란만장의 삶을 살게 됐고, 아내가 외동딸이라 장모님을 윗층으로 이사를 온다. 장모님과 작가의 삶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정 서방, 잘 다녀와."

가방을 둘러맨 나는, "예, 장모님.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세요."라고 말을 하곤 출근을 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육체노동자로 산 장모님과 역시 육체노동자로 살고 있는 사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밥을 벌어먹은 자, 또 벌어먹는 자의 이심전심을 서로 느끼는 것이었다. 노동에 치이고 노동에 삶을 쓴 자들이 느끼는, 그래야 아는 사람들의 감정 말이다. 내 손으로 살았다는, 누구를 속이지도,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노동자의 품위를 가지고 산 사람들, 장모님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_ 64쪽


- 부두노동자를 사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버지는 신장암으로 고생을 하셨는데, 삶 역시도 고생고 떨어지지 않았다. 작가의 학창시절은 어땠는가?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꿈은 대한민국의 주류공장을 모두 폭파시키는 거였다. 나는 술이 싫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술만 들어가면 보름달이 떠오르는 밤의 늑대인간처럼 변했으니까. 그렇다고 폭력을 휘둘렀던 것은 아니다. 그저 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이다. 단 한마디. "내가 니 공부시킬라꼬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나?" 라는 말이었다. 시간은 상관없었다. 술이 들어간 날은 차렷 자세로 3시간 동안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어렸을 때는 굉장히 무서웠다. 오줌이 마려워도 화장실은 갈 생각도 못 했으니까. 어린 마음에 그저 공포에 떨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겁은 나지 않았다. 단지 짜증이 났을 뿐이다. 그래도 마칠 때까지 듣고 있었다. 그게 나를 먹여 살려주는 아버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_68쪽


- 쉰 살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는데, 너무 늦지 않았나?

이제 나는 쉰 살이 되었다. 간혹 스물일곱 살의 그때가 떠오른다. (아버지)상을 치르면서, 슬픈 것도 있었지만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던 그때. 배도 고프고, 목욕도 하고 싶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던 그 때, 한편으로는 내 인생이 슬픔으로 가득 차지 않고 생활로 자꾸 눈이 돌아가서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그때. 그래서 똥을 누는 것조차 죄스러웠던 그 때. 하지만 지나고 보니 진짜 슬픔은 그런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불현듯 생각나서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집 안의 물건을 보다가 예전에 했던 사소한 대화가 떠올라서 울어버리기도 하고, 거리를 지나다가 언젠가 이 거리를 함께 걸은 적이 있다는 생각에 먹먹해지기도 하는 것.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올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피붙이의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진짜 슬픔은 장례식을 끝낸 뒤 한참 뒤에야 찾아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런 시간들을 겪다 보면 슬픔이 뼈에까지 쌓인다는 것을. 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인 건 그 슬픔의 깊이만큼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 깊이도 알게 된다는 거다. 물론 그 사살이 나를 구원해주었다는 것을 안 것은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난 후였다. _ 83쪽


- 택배일 이야기를 해보겠다. 힘들었던 기억이 적지 않을텐데….

배송 구역에 7층 빌라가 있다. 7층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된다. 엘베가 없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물론 건축법상 6층 이상은 무조건 엘베를 설치하게 되어 있으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엘베 옆에는 항상 '고장'이라는 종이가 떡하니 붙어 있는데, 1년째 붙어 있으면 수리가 아니라 전기세 아끼려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법규 위반도 피할 겸 말이다.

본인들이야 7층을 걸어 다니든 기어 다니든 내 알 바는 아니다. 문제는 나다. 짐을 지고 올라가야 하는 건 나니깐. 가벼우면 그나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택배라는 게 인생과 닮아서 불행은 항상 쌍으로 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힘든 상황에 진상까지 착 달라붙어 오는 경우 말이다.

7층에 누가 사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1~2주에 한 번은 생수박스를 시킨다. 작은 것도 아니고 1.8리터 6개 묶음 스무박스다. 양손에 하나씩 잡을 수밖에 없으니 열 번을 올라가야 한다. 7층을 말이다. 물량 전체로 보면 70층을 올라가야 하는 거다. 63빌딩을 생수 들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과 비슷하다. 도무지 상식이라는 건 안 키우나 싶다. 하긴, 상식이 없으니 진상이지 있으면 어떻게 진상이 되겠는가? 진상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다섯 번쯤 올라가서 문 앞에 내려놓으면, 어쩔 수 없이 묻고 싶어진다.

"아니, 이 돈이면 정수기를 임대하겠소. 도대체 생수를 시키는 이유가 뭐요? 욕조에 생수를 부어 장미향을 첨가한 다음 스펀지로 욕조를 애무하려고? 택배기사의 허리와 다리가 부러지는 걸 즐겁게 상상하면서?" _88~89쪽


- 택배일에 대한 고뇌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지금의 내가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택배를 하는 무수한 시간 동안, 택배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생각을 수없이 한 탓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은 다 한 것 같다. 물론 대개는 과거으 나에 대해서다. 처음에는 남에 대한 원망이었지만 결국, 자신에 대한 원망에 도달하게 됐다. 허투루 살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꼈다. 자신의 역량을 몰라서, 사람을 몰라서, 인생을 몰라서, 무엇보다 삶을 가볍게 생각해서 그 모든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_112쪽


- 택배일을 하면서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지 않아요?

택배는 버스와 같아서 동네 일부를 순서대로, 정해진 골목 순으로 간다. 당연히 산책 나온 주민과 동선이 겹칠 수도 있다. 그걸 따라다닌다고 말하면 황당할 따름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라면 몰라도 보통 이런 경우 상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예외는 있다.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경우다. 이때는 소인배의 소갈머리가 툭, 튀어나온다.

"선생님. 개를 따라다닌다고 뭐라고 하시면 이해됩니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귀여운 개니까요. 하지만 저는 인간 따위는 따라다니지 않아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_120쪽


-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행복도 감정의 동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불운이나 불행도 당연히 싫지만 행복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도를 깨달아서가 아니다. 언젠가는 그 감정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불안이 계속되면 익숙해지고, 결국 그것이 삶의 기본값이 된다.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작더라도 성공의 경험이 축적돼 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불은이나 불행 쪽만 보고 살면 그리되는 것 같다. 진짜 불운이나 불행은 그 자체도 힘들지만, 지나가도 그것을 놓지 못하게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있다. 행복이 와도 마치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도무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잃어버릴 것 같아서 불편하고 불안할 뿐이다. 차라리 빨리 옷을 벗고 익숙한 그곳으로 가고 싶게 만드는 거다. '이게 진짜 내 인생일 리가 없어.'라는 부정만이 자리를 차지하곤, 행복이란 감정을 밀어내는 것이다. _150쪽

- 이젠 택배일과 친해졌다고 해야할까 만족스럽다고 해야할까? 뭐, 택배일이 달관인가 내려놓기인가?

= 오히려 그토록 힘들었던 택배 노동자의 삶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일하고, 술 마시고, 영화 보고, 자는, 단순한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작가라는 직업에서는 멀어졌다. '상관있나?' 노동자로 살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사람이 나이 마흔을 넘기면 대개 한두 번 맛보았던 것들이라 딱히 욕심이나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 작가의 허영기도 더 이상 나의 시선을 끌지 못하니,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는 고민 없이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한 후, 백수 관로사를 목표로 퇴근 후에는 줄곧 놀기만 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_207쪽


- 과거의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넌 틀린 게 아니야.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아이일 뿐이야. 좀 더 예미내서 남들과 다른 방향을 볼 뿐인 거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길을 걷는 거고.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정말이지 수고했어." _228쪽


- 택배일과 소설가, 결국 돈이 이유가 되지 않았나?

나는 돈에 대해 간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돈을 사랑하는 건 천박한 거고, 돈으르 무시하는 건 오만한 거다.'

내 경우는 빈곤까지는 견딜 역량이 안 되고 가난까지는 어찌어찌 살아지는 것 같다. 작가이긴 하지만 전업은 아니고 생계를 위해 택배를 하니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크게 불만은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노력이란 말을 싫어한다. 삶의 멱살을 부여잡고 돈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서.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신 대가는 치러야겠지. 실패, 낙오, 상실, 상처, 좌절 고통 같은 것들 말이다. _232쪽


- 앞으로의 삶은?

인생은 선택할 수 없다. 인가은 매일 매 순간 주어진 삶을 살아낼 수 있을 뿐이다. 오직 해석이 있을 뿐이다. 나태로 삶을 사느냐, 열정으로 사느냐. 다만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해석의 뒤에 자기만의 삶의 의미가 따라올 것이다.

밤이다. 태평양의 심연에 놓여 있던 키보드를 건지고, 안데스산맥의 어디 쯤에 놓여 있던 책상을 가져와 앉았다. 앞으로도 수없이 이 산을 내려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앉았다. 이게 노력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쓴다. 세 번째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_ 236쪽


- 그래서 《문밖의 사람》은 어떤 책인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실수도 없이 무난하게 인생길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런 에세이는 전혀 쓸모가 없는, 설령 있는다 하더라도 한 문장도 와닿지 않을 사람들 말이다. 뭐, 부럽긴 하다. 나도 그런 인생을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싶어서. 하지만 대개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고 부르고, 길을 잃고 헤매다 실수를 반복하면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것이다.

나는 고만고만한 인생을 고만고만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해서 거창한 주제나 전문적인 지식을 쓸 수는 없다. 딱히 삶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이나 성찰도 없다. 고만고만한 삶을 고만고만하게 바라보면 겨우 배운 몇 가지가 있을 뿐이다. _250쪽

지금껏 이렇게 잔머리만 쓰는 에세이를 써본 적이 없다. 내가 이 글을 에세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마땅히 붙일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이나 부, 자기계발에 대한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없을 거다. 머리가 나빠서 쓸데없이 상처만 받은 덜 자란 어른에 관한 내용만이 있을 뿐이니까.

다만 '이렇게 살면 안 된다.'까지는 아니겠지만 '내가 이 작자 정도는 아니잖아?'라는 위로는 있을지 모르겠다. _253쪽


작가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설쓰기와 택배 노동을 병행하면서 비로소 삶의 진정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누구나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선택을 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 선택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작가 처럼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랬으면 싶다. 누구나의 삶에는 늘상 '진상'이 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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