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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Jan 10. 2024

송년과 신년은 순백지 365장의 차이가 있다

이제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새해를 언박싱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그런데 여기서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가 따라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물을 잘하지 못하거나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지난 연말에 가족과 평소 존경하는 주변인들에게 송년 선물을 준비하면서 나는 ‘나를 위한 선물’도 반드시 챙기기로 했다. 그 이유는 타인만큼 나 자신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만을 위한 택배기사가 되어 선물을 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챙길 줄만 알았지 챙김을 받을 생각을 못했던 터라 자기자신 만을 위한 선물을 기획한 것이다. 살아온 인생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마치 ‘너 자신을 알라’가 ‘너 자신에게 선물할 줄도 알라’로 각색되어 다가온 느낌이었다.   

  

나는 그간 내내 간절하게 원했던 것을 마음속에서 꼭 집어 끄집어냈다.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뒤져서 갖고 싶은 상품을 급기야 찾았다. 그러나 구매에 앞서 잠시동안 망설여졌다. 혹시 몰라 상품 환불에 대비해 관련 내용까지 찾아 읽어보았다. 그리고나서는 생각이 길어지면 단호함이 유야무야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던 나는 서둘러 카드결제를 했다. 곧바로 컴퓨터 화면에는 결제한 상품과 배송 주소지가 돌출되어 나타났다.

     

며칠 후 나를 위한 선물이 도착했다.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내 이름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소위 언박싱(unboxing)을 했다. 실체가 드러난 그 선물은 발목까지 올라온 운동화다. 업무 특성상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겨울이 되면 평소 안 입던 내복을 꺼내 입는데, 발도 따듯하게 보듬어주어야 한다.     


운동화를 신고서 사무실 안과 밖을 거닐어보았다. 금세 발에 땀이 차는 것처럼 보온성이 높았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선물이 나를 위한 것이 맞나?’ 이내 자신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으로 마음을 쓰담쓰담해 보고, 양손으로 차가워진 나의 볼을 토닥거렸다.      


그렇다. 통상적으로 가장(家長)이라는 직책은 자기자신 보다는 가족을 먼저 챙기는 법이다. 자신의 몫이라 챙겨 받아든 나를 위한 선물도 결국 가족을 위해 일해야 하는,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한 품목인 것이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고 내게 필요한 것을 구매한 꼴이 됐다.     


매해 연말이 되면 부름 콜이 빈번해진다. 따르릉 울리는 전화보단 카톡의 함성이 더욱 잦다. 나는 불려 나가기도 하고, 내가 사람들을 불러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정신이 없다. 이처럼 소란한 것은 ‘송년’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마치 자신한테 선물을 주지 못한 1년의 한탄을 토해내기 위한 자리를 원했던 것처럼, 송년의 자리는 늘상 소란스러운 하소연을 늘어놓게 된다.     


반면 연초(年初)라는 시기는 송년 만큼 특별한 시간이지만, 이때는 자못 조용하다. 시작과 새것이 주는 엄숙함 때문인지, 번잡스러우면 신년의 운수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인지, 아무튼 새해가 되면 사람과 세상은 조용한 울림 속에서 고요한 태동을 하는 것 같다.     


언제나 ‘큰’ 시간이 떠날 때는 시끄러운 법이다. 보신각에서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가? 시간의 입장과는 반대이다. 사람은 아우성치는 12월 송년과 달리 세상을 하직할 때는 조용하고 엄숙하기만 하다. 오히려 인간은 태어날 때가 고요하지 않고 시끌법적하다. 울음의 탄성으로 시작한 삶의 새로운 탄생이 첫 선물인 것처럼 말이다.     


바로 새해가 아가의 탄생과 다르지 않다. 신년(新年)은 아가의 울음처럼 소란스러워야 한다. 무작정 떠들어라가 아니라 새로운 계획과 목표와 소명을 찾는 움직임의 소란이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잊으려고만 할 뿐 배우려고 하는 것에 인색하다. 과거는 간다고 느낄 뿐 자신이 과거를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인색하다. 송년은 아쉬움을 달래는 자리이기보다는 돌아보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않는다. 지난 한 해 동안 기록된 과거 기억들을 다시 펼쳐 배울 것을 찾아보고 거기서 교훈을 만들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다.     

또 사람들은 신년의 벅참에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다가오지 않는 날들의 통제능력이 부족하고, 앞날을 예측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걱정과 불안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앞날의 목표가 정해지면 사람의 행동은 걱정과 불안을 오히려 앞지를 수 있다.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금세 허공으로 사라진 공기와 같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 공기의 구성이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곱고 빛나는 먼지라고 느낄 때 보석처럼 간직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과거가 흘러갔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이고, 과거가 주춧돌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의 희노애락은 먼지가 돼 동그란 화석을 한 개 남기고 사위어갔다.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보물처럼 간직하고픈 삶의 족적을 새로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각오의 다짐은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더 강렬하게 살아야 할 내일의 출발을 지금 막 시작했다.    

 

언제나 세월의 힘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는다. 단지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 세월로 인하여 몸은 어긋나고 생각은 자꾸 잊혀지고 기억이 사라지지만 생명의 잎들이 낙엽이 되어 하나 둘씩 떨어지고 다시 그 틈새로 잎이 나는 이치와 닮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니 세월의 경과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세월의 시작부터 두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관찰해야 한다. 시간이야말로 자기가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 모두는 새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다. 이제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새해를 언박싱하기 시작했다. 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는 순전히 시간이라는 새해 선물을 받은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선물로 온 2024년에게 <새해의 다짐>이라는 사명서(使命書)로 보답하려고 한다.     


떠나는 해가 아쉽다면 다가오는 해는 더 큰 노력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라

걸어 온 인생에 후회의 영상이 드리워졌다면 살아갈 인생은 신명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라

지나온 사랑이 미련으로 아쉽다면 해야 할 사랑은 최선으로 다가갈 것임을 다짐하라

과거라는 시간에 절망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내일이라는 미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것임을 다짐하라

흑백으로 삶을 스케치하였다면 이제는 총천연색으로 삶을 채색하겠노라고 다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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