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인공지능이 가져 올 미래는 위협적일까 위험할까!

by 별통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를 읽다 보면 인공지능이 바둑계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오면서 ‘기풍’(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 나타나는 각 개인 특유의 방식이나 개성)이 사라졌다며 프로들이 안타까워 한다. 한 바둑칼럼리스트는 “바둑에서 기풍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람에게서 감정이 사라지고 이성만 남는 것과 같은지 모른다”라고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갑자기, 정치에도 인공지능의 위협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사회는 이성은 사라지고 감정 만 남지 않았나 싶은데, 인공지능이 정치에 들어오면 좀더 이성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추천사를 쓴 KAIST 뇌인지과학과 정재승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늘 미래가 멀리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직업, 어떤 공동체, 어떤 게임은 그 미래를 조금 더 빨리 맞는다. 바둑이 그랬다. <먼저 온 미래>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가장 먼저 들이닥친 풍경을 조용히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의 세기적 대국을 거친 후 바둑계의 변화와 혼란을 취재했다. 인공지능이 등장해 인간세상을 좌절(또는 지각변동)시킨 최초의 현장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것, 그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인공지능은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와는 다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두려워하는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터미네이터가 등장해 인간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것. 나는 그 두 가지 악몽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 역시 내 기준으로는 악몽이다.

스카이넷과 터미네이터는 나타나지 않고, 당시도 어쩌면 일자리를 잃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 다른 업계 사람들까지 인공지능의 등장 앞에서 안전과 일자리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설마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사실 그런 인간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그리 대단한 성능의 인공지능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파괴가 일어난 뒤에야 그 가치들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_25~26쪽


바둑은 예술인가 스포츠인가, 를 놓고 논란이 됐었다. 그러나 스포츠로 결론났다. 그럼에도 프로기사들은 바둑은 ‘예술’이라는 매력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바둑계 침투가 창의성의 주변에도 얼쩡거리면서 틈새를 노리고 있다는 우려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이 문학작품의 창출이라며 관여하는 것 역시 미래의 풍경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곤란한 질문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가? 기계도 창의적일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언젠가는 기계가 수학의 난제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창의적인 예술작품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바둑에서의 창의성, 수학에서의 창의성, 예술에서의 창의성은 각각 다른 것일까? 창의성은 대체 무엇인가?_43쪽


인공지능이 문학 출 판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인간 소설가의 영역은 인공지능 이 잘하지 못하는 일로 축소된다. 그런 때 인공지능이 팔 수 없는 결 내가 팔 수 있다면 든든하리라. 그리고 내 머리에는 나만이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내 사생활'이라는 답이 떠오른다._267쪽


결국 알파고를 통하여 우리는 인공지능은 ‘먼저 온 미래’의 한 구석을 보았을 뿐이다. ‘먼저’라는 시간적 울타리가 점차 거두어지고 널리 퍼질 때 쯤이면 우리의 ‘현재’는 더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작가는 내다본다.


터미네이터가 등장하지 않아도, 내가 해고되지 않아도 나의 깊은 부분이 인공지능의 발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_48쪽


작가는 인공지능의 공격 범위를 ‘무한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추월할만큼(책에는 집어삼킬 것이라고 썼다)의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무언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그 자체일 거라고 작가는 예상했다.


인공지능은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아니, 이 말은 부정확하다. 인공지능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집어삼킬 것이다. 인공지능은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뒤에 나올 다른 여러 기기,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그 뒤에 나올 다른 여러 미디어와 결합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뭐라고 볼러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그 무언가는 사실상 우리가 살아야 하는 환경 그 자체일 것이다._113쪽


인공지능은 기업, 건축설계, 교육과 상담, 의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펼쳐보일 때 정작 인간은 인공지능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소위 문화적 충돌 내지는 문화적 지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를 우려한다. 그러면서 정치와 인공지능의 연계성과 인공지능과 민주주의 상관관계를 조심스럽게 건들기 시작한다. 아마, 인공지능과 민주주의의 연계성 접근은 장 작가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구매 협상을 인공지능이 인간 구매 담당자보다 더 잘할 때, 인간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단지보다 인공지능이 설계한 곳에서 소셜믹스가 더 잘 일어날 때, 아이들의 잠재력을 인공지능이 인간 상담교사보다 더 정확히 파악할 때, 신경증 환자에게 어울리는 약을 인간 정신과 의사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처방할 때, 그런데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지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치 시스템의 일부분을 블랙박스에게 아웃소싱한 사회에서도 민주주의는 잘 작동할까?_141~142쪽


작가의 경고는 섬뜩하다. 인공지능에 대비한 ‘인간적인 것’, 곧 그것은 인간의 가치를 말함일텐데 그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면 ‘죽음’의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가치의 원천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공지능에 기반한 사회는 거대한 '죽음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급여와는 상관없다._225쪽


작가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먼저 온 미래를 경험한 프로기사들은 알파고 등장 이후 주로 슬픔을 표현한 서글픈 목소리 였다. 더불어 알파고의 주체 기업인 구글을 원망을 포함해 적대시했다.


내가 만난 프로기사 중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구시대의 무기 를 들고 신기술로 무장한 침략자를 향해 돌진하겠다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고 '바둑에서 인간이 최고수 자리를 영영 잃게 됐다니, 아주 기뻐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많은 기사가 '어쩔 수 없 죠라고 말했다. 3장에서 "Al에 대해서는 그 엄청난 경지를 봤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였"다며 "AI가 나오고 나서는 슬픈 일이 많은 것 같네요"라고 했던 오정아 5단을 기억하시는지. 그와 비슷한 반응들이었다. 서글픈 목소리들이었다. 인간 기사들은 초라해졌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보급되면 인간 소설가도 초라해질 것이다. 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으로 인해 초라해지는 인간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몇몇 프로기사는 인공지능이 바둑을 정복한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구글이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분개심을 드러냈다._277쪽


작가의 동아일보 기자출신이다. 그래서라고 단언컨대, 인공지능을 향한 사회적 사명감과 미래적 비판의식 등 그 만의 기자성(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사회현상의 비판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서울에는 이미 자율주행 버스가 도로를 다니고 있고 자율주 행 택시도 머지않은 미래에 나올 것 같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으 로 밥벌이를 하는 수많은 운수업 종사자의 생계를 위협한다. 철도 기관사나 선박 운항사, 항공기 조종사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전 세계 택시 기사, 대리운전 기사, 버스 기사, 화물차 기사, 특수차량 기사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수백만 명? 수천만 명? 자율주행차가 보급되면 운수업 종사 자들이 크리스퍼 전문가나 오보에 연주자로 전업할 수 있을까? 이 들과 그 가족들의 운명이 테슬라나 구글 같은 몇몇 테크 기업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지 않는다. 어떤 권력자나 정부가 그런 일을 벌인다면, 아니 그런 일을 벌일 기미라도 보인다 면, 수많은 사람이 들고일어나 항의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테크 기업에 대해 그렇게 하지 않는다._324~325쪽


장 작가는 인공지능의 침투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인간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 인간의 능력과 자부심을 믿고 키우는 것 등을 주문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 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투스」 마지막 구절을 조금 변형해 책을 마무리하 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_340쪽


인공지능이 먼저 침입한 바둑계의 반향은 부정적 요소가 더 컸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먼저’를 보내고, 그 다음에 찾아오게 될 인공지능은 어떨까? 아마 최강의 진도 규모에, 사상 최대급 초강력 태풍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 세상 전반에 걸쳐 변화와 변동을 이끌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추억 블루스까지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나 아내가 식탁 위에 채워주었던 맛난 음식들은 이제 인공지능이 차지하게 될건가? 흑백요리사 100인에 인공지능 세프는 몇 명이나 넣어야 할까? 아니면 흑백요리사 인공지능편을 별도 제작해야 할건가? 오늘도 나의 곁을 지켜주는 반려견 ‘루체’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까?


알파고가 비둑이 아니라 의사였다면, 닥터 알파고가 와서 의료계에 먼저 온 미래가 된다면, 장 작가의 글은 또 어떤 미래를 점쳤을까? 라는 터무니 없는 사고에 빠졌다. 그렇다면 의료 분쟁이나 초등학생 의대입시반 등이라는 이해못할 현실이 지금과는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 전 장 작가가 동아일보 기자 시절에 나는 홍보팀장의 포지션에서 그를 만났다. 사람 좋은 선한 기자였다. 그의 페이스북에서 아내의 아픈 소식을 접하고 많이 안타까웠다(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에서 직접 아내를 언급한다). 인공지능의 긍정적 요소는 책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마음이 되어 인공지능이 의학분야에 어여 개입해 그의 아내를 완치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와 주기를 학수고대한다.


#먼저온미래 #장강명 #동아시아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