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대로 살아가야지...

순리는 바퀴처럼 돌고 돌아 인생의 겹을 두텁게 한다

by 별통

순리대로 살아가야지…

여름이 뜨겁던 눈빛을 아래로 내리자 가을이 오기 시작했다. 새삼 바람의 고마움을 무시했던 반성의 감각을 두드릴 만큼 기온이 변했다. 여름은 지난날의 성과에 시치미를 떼고 있다. 자취의 꼬리만이 조금 남아있다.

어느 계절이든 몽니를 부려도 시간의 걸음을 말릴 수 없다. 계절은 이렇듯 섭리를 따라 가고 또 온다. 이러한 순리는 사람이든 자연이든 따를 수밖에 없다. 자연이 섭리를 거스르지 않듯, 사람 역시 순리라는 틀에 송곳을 들이밀 수 없다.

뜨거운 햇빛에 눌러 기가 죽어있던 어느 날 오후, 모친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그 분의 막내딸이 전해줬다는 내용이었다.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의 통화 기록 가운데 최근까지 통화했던 번호가 모친의 것이라 부음소식을 전해줘야 할 것 같았다는 것이다.

나도 그분을 뵌 적이 있다. 몇 해 전 모친의 친구 분들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할 기회를 만들었고, 당시 모친의 친구 2분을 모실 수 있었다. 마른 체구에 곱게 늙으신 분이었다. 교양을 갖추고 계셨다. 그 때 들었던 이야기로는 2명의 아들을 먼저 저 세상에 떠나보냈던 아픔을 뼈 속에 간직하고 계신 분이었다. 고인께서는 몇 주 전에 숙성이 잘 된 지난해 김장김치를 모친 집으로 택배로 보내주셨고, 나도 맛있게 먹었다. 고향의 맛이었다. 아내는 선물을 챙겨 드려야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하던 차에 부고를 접했다. 아내도 많이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모친은 “친구들이 모두 떠났다. 이제 한 명 만이 남았다.”고 말하면서도 우시지는 않았다. 예상 밖이었다. 대신 내가 울었다. 모친 또한 친구 분들을 따라 곧 가실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상주로서 부고를 치룬 적이 없다. 선친이나 누이를 떠나보낼 때는 아주 어렸거나 학생 신분이었다.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것이 두려움의 이유일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정호승 시인은 “천년을 살아도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누구의 죽음이든 아플 것이고 슬플 것이다. 어쩌면 죽음은 또 다른 생의 시작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죽음 역시 자연의 순리다. 순리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다. 거부 보다는 순응의 자세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삶에는 지름길이 없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사람도, 자연도, 팽팽한 하늘도, 옆에 두면 행복해진다. 온 세상은 깊디깊은 속까지 행복의 눈높이를 맞췄다. 사랑스러운 세상을 짓고, 또 허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기다리던 계절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떠나듯이 때가 되면 계절은 우리들 곁으로 오기 마련이다. 계절의 순리는 무서우리만큼 철저하게 지켜진다.

노자가 말했다. “천하는 신비로운 것이어서, 다스리고자 하나 인위적으로는 다스릴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다스리고자 하면 실패하고, 천하의 지배권을 잡고자 하면 그것을 잃는다.” 순리는 인위적인 것으로도 밀어낼 수 없음을 말함이리라.

시인 윤동주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샜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라며 별 하나하나에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 시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을 불렀다.

윤동주는 1941년 가을 <별헤는 밤>을 썼다. 지나간 시간, 지나간 사람, 지나간 사랑을 불러보는 시다. 여기서 시인은 아침이 와 별을 못 헤지만 내일 밤이 남은 까닭에 가슴 속에 별을 남겨 둔다. 시는 이렇게 끝은 맺는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별의 흐름은 그야말로 별과 같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은 별빛뿐이다. 별은 하늘을 넓게 쓰고 여유가 있다. 멀리까지 훤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다. 그래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별들의 과정은 순리의 풍경이다.

살다 보면 마음이 어두울 때가 있다. 몸이 갇혀 있는 듯 도무지 어둠 밖으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한다. 그럴 때 별을 생각한다. 빛 같은 역할을 하는 별 말이다. 어쩌면 윤동주 시인은 별을 헤면서 삶의 순리를 강조했음직 하다.

순리는 맛이 없다. 단 맛도 아니고 쓴 맛이 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진심을 다해 살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사람들은 앞만 보고 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옆에도 눈이 가고, 걸어왔던 뒤쪽도 돌아본다. 그렇게 옆쪽도 보고 뒤도 보고, 기쁜 일 만큼 슬픈 일도 가슴에 담아둘 때 앞으로 가는 발걸음이 경쾌하고 가벼울 것이다.

삶의 지혜란 바로 순리대로 사는 것이다. 폭풍우가 쳐도 우리는 순리에 몸을 맡겨야 생존한다. 요동치는 큰물의 에너지가 덮쳐 와도 순리의 믿음이 두려움을 없애준다.

사람들의 삶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그 삶들은 모여 인생이 된다. 계절의 끝에는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봄이 떠날 때는 꽃들의 향연이 아쉽다. 여름이 갈 때면 폭염으로부터의 해방 보다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여름휴가가 금세 그리워진다. 가을과의 이별은 단풍과 추수의 노동이 그립고, 겨울은 하얀 눈이 여전히 체온에 남아 있는 듯하다. 이처럼 계절의 순리는 삶의 철학이다. 순리는 바퀴처럼 돌고 돌아 인생의 겹을 두텁게 한다.

무소유의 삶을 강조했던 법정 스님은 말했다. “저것은 저 사람 몫이고, 내 몫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 스님은 “재물은 이 생(生)에서 잠시 지니는 것일 뿐 내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순리를 거스르는 욕심이야 말로 불행의 단초가 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오래전 법정 스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답했다.

“소유의 단계를 거쳐 봐야 무소유의 의미를 진정 깨닫게 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소유를 하더라도 마음이 재물에 얽매이면 안 돼요. 재물이란 잠시 이 생에서 내가 맡은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재물이 많다고 부러워할 것 없고,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불행해 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불행해져요. 이만큼이 내 몫이고, 저 사람 몫은 저만큼이라고 생각하세요.”

스님은 답을 이어 갔다. “‘지금 불행한가?’ 하고 자신에게 물어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겁니다. 화나고 속상한 일들을 끌고 다니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소중한 자신의 삶을 위해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세요.”

요즘, 파란하늘을 보면 마음까지 파랗게 물들어질 것 같다. 혼자서 파란색 하늘에 하얀 글씨를 써보곤 한다. 사랑, 행복, 환희, 기쁨, 영광, 축복, 희망, 만족, 감사 등.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글씨를 흘려보낸다.

사랑은 별이 되어 가슴을 안아 준다. 행복은 우물이 되어 마르지 않는다. 환희가 찾아와 멋진 미소를 짓게 한다. 기쁨은 소나기처럼 쏟아져 쉼표를 만든다. 영광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을 비춘다. 축복의 삶들이 주변을 감싸준다. 희망은 오랫동안 머물러 예쁜 삶의 불씨가 되어준다. 만족은 엄마 품의 아가처럼 손 내밀어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온통 물들어졌으니 다시 감사한다. 곧 가을이 잘 익어간다.

불현 듯 나는 묘비명을 정했다. ‘순리대로 살다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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