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라는 감독자의 편집으로 세상에 연출된다
# 장면 1
남해의 전망 좋은 집의 거실이다. 한 사람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주변에 둘러앉은 4명의 여자들이 관객이다. 노래를 들으며 눈을 슬며시 감은 이가 있고, 눈과 입으로 조용히 웃는 이가 있다. 노래와 기타 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아주 소심한 박수도 함께 한다. 노래를 마치고 노래를 불렀던 여자가 말했다.
“가끔 옛 생각을 해요. 살아왔던 일 대한 시나리오를 점검하듯이 말이에요. 잘했던 일 보다는 잘 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후회스럽고 괴롭기도 하죠. 그러다가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 중에 이 부분은 편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왜 그랬을까? 참회가 거듭되면서 인생의 한 부분을 드러냈으면 싶은 거 있죠. 우리의 인생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카메라 속 필름이고, 그 필름 중에서 이런 부분은 편집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 말이에요. 저만 그런가요?”
유난히 음악에 빠졌던 한 여자는 바로 반응했다.
“나는 내 인생을 통편집하고 싶어요!”
그녀는 2번의 이혼에다 33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소위 팔자 사나운 소설 속 여인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그녀의 화려한 연예인 시절은 남들로부터 부러움과 우상의 대상인 적도 있었다. 지금은 남해의 한적한 곳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그녀가 인생의 통편집을 외쳤다. 그러자 인생의 편집 이야기를 먼저 꺼냈던 여자가 말했다. “내 삶은 내가 편집하는 거예요. 편집해 버려요.”
KBS TV <같이 삽시다>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 장면 2
아버지는 암이라고 확신하고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내에게는 자식들한테 짐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살아가라고 엄포를 놓는다. 자식들에게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라 한다.
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는 힘든 과거의 삶이 정리되는 것을 애써 좋아라 한다. 한때 잘 나갔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지금은 바로 눈앞에 있는 자식들한테 그저 무능력한 아버지일 뿐이다.
암은 이렇듯 버겁고 버티기 힘든 아버지의 책임과 역할에 마침표를 찍게 해주는 인생 치료제이다. 아버지는 삶의 무게로 중단했던 기타를 다시 배운다. 웃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시나브로 생을 정리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세상 어떤 아버지가 이처럼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싶다. 여기까지다. 반전이 있다.
간절히 바라던 죽음을 배신하듯 아버지의 병은 상상암이라고 밝혀진다. 아버지는 크게 실망한다. 죽음의 예약을 고마워했던 아버지. 그는 한편으론 다시 살 수 있음에 마음으로 기뻐한다. 역설적이게도. 아버지는 다시 의욕을 찾아간다.
다시 일이 벌어진다. 상상암은 말기암의 오진으로 판명되고, 그는 다시 죽음을 준비한다. 두 번째 준비는 이전보다 훨씬 부담이 없고 수월하다. 상상암을 앓는 동안 가족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이후 남은 가족들의 삶을 위한 아버지의 준비는 더욱 짜임새가 있다.
그렇게, 버킷리스트를 실천해간다. 아버지를 앞세워 가족들은 소풍을 간다. 가족들이 준비해 줘서 꿈꿔왔던 기타 독주회도 잘 마친다. 그리고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하늘과 햇빛을 바라보며 끝내 숨을 거둔다. 남겨둔 유서에는 가족을 위한 재산분할 내용이 담겨 있다.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렇게 흘러나온다.
“지안아, 내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지수야, 내 딸이 돼 줘서 고맙다. 지태, 지호야 너희 아버지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양미정 씨, 사랑했습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묘비명을 이렇게 새겨 드린다. ‘아낌없는 주는 나무 같았던 우리 아빠 서태수’.
KBS TV 주말 연속극 <황금빛 내 인생> 이야기다.
2개의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주목하게 된 건 ‘바로 이 순간’이라는 계기였다.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 말이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후회를 하게 된다. 또 유쾌한 생각은 아니지만 죽음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삶의 중간과정 점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중간 점검은 결국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살아온 삶 속에서 ‘후회했던 것’ ‘아쉬웠던 것’ ‘미안했던 것’을 제거하기 위한 미래 전략인 거다. 과거를 편집하기 위한 과정인거다. 후회하지 않는 법을 익히고, 아쉬움을 덜어내기 위한 삶을 훈련하고, 미안해했던 대상들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도록 하는 법을 배우는 거다.
인생에서 ‘편집’이라는 과정은 그냥 오지 않는다. 과거는 결코 일사불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애를 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올수 없는 것처럼 삶의 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삶은 메마른 겨울 들녘처럼 거칠다.
인생은 ‘나’라는 감독자의 편집으로 세상에 연출된다. 삶을 구성하고, 그 구성된 삶의 오류를 편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인 것이다. 삶은 그 사람의 흔적이다.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또는 저기에서 여기로 흔들리며 살아온 자취가 다져진 게 삶이다. 한평생을 돌아다녀 쌓인 행적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삶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온 과정이 비참하고, 불행하고, 일과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그 순간 삶은 끝이다.
삶은 수채화처럼 적당히 낡아간다. 그게 이치요 자연의 순리다. 빛바랜 그림처럼 인생이 처연해지면 편집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정현 작가의 <인생편집>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삶의 모든 순간이 편집이다”라고 했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그가 제안한 인생편집의 기술은 이렇다.
“어떻게 편집할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목차를 설정하고, 서론 본론 결론을 정해라. 바로 인생의 편집소재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인생의 핵심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인생 편집력이다. 편집력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사람은 혼자 속앓이를 하며 상처를 받는다. 자신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고 한다. 속앓이를 멈추고, 옳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존감 회복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고 잘못을 편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쳐 고단할 때면 두 개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항상 크고 밝고 건강한 자신으로 만들어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주위의 위안에 기대면서 자신을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비로소 형식적인 안정을 찾는 것이다.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이며, 인생편집의 스토리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인생의 편집자는 바로 나여야 한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그만큼 성공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에서 편집의 과정을 거치고 싶었던 삶이 있었던 거다. 그것은 아마 헛되이 추구했던 것, 인생을 허비한 것들에 대한 후회일 거다.
인생은 채워지는 것이다. 흘러가는 것은 세월이지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그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자신을 뒤를 돌아보면서 인생필름을 편집하고,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인생의 중간 점검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묘비명은 완성된다.
내가 준비한 묘비명은 이거다. ‘인생 편집이 작은 삶을 살다.’ 인생편집이 작은 삶일수록 성공한 삶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