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시간에게, 시간이 사람에게...
# 사람이 시간에게
또 ‘하루의 시간’ 이라는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나는 지금 아쉽고 슬픈 마음으로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는 심정입니다. 2020년의 어느 하루. 당신의 유영(遺影)을 우러러 무릎 꿇어 삼가 애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똑딱똑딱 사라지는 순간순간의 비보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탄과 고뇌에 빠져 그저 망연자실해집니다.
그만큼 당신의 역할은 탁월하였으며, 그 대담한 행동력과 많은 빈 공간을 베푸는 자질은 놀랄 만큼 훌륭하여 어느 누구도 당신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회상컨대, 1년 365일 내내 뜨고 지는 별들은 어느 것 하나 작고 크고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1일 24시간의 촘촘함 속에서 우리는 뛰어난 감각과 꺾이지 않는 도전성, 그리고 열정적인 개척정신을 가지고 분(分)과 초(秒)까지 다퉈가며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2020년 어느 하루 당신은, 우리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꼭꼭 채울 수 있는 백짓장을 내어주는 자상함을 매순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두터운 신뢰로 우리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생명의 촛불이 꺼지는 그 순간까지도 ‘어제보다 나은 미래의 도약’을 외치면서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운명을 결정짓는 전장(戰場)에서 치열하게 싸워갔지만, 때로는 당신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화살처럼’, ‘세월이 유수 같다’. 이런 말들이 들려오는 것은 모두 당신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한 원망과 미련 속에서도 당신의 흔적이 자꾸 사라져 가는 게 비통하고 암담한 심정입니다. 자꾸 흘러만 가는 시간 앞에서 얼마 남지 않는 찰나의 순간들이 자꾸 사라져가니 당신을 잃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을 만큼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슬픔의 바닥에서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담아 둔 비원(悲願)은 아마도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제 사라져가는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는 슬픔의 깃발을 가슴에 묻고 최고의 우리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다잡아 보겠습니다.
부디 마음 편히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내어 준 당신의 희생과 노고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과 다르게 살아가도록 앞으로도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부디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시고 지켜 주십시오. 당신이 마음 편히 잠들도록 우리 모두가 마음 속 깊이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빕니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2020년 어느 하루에게 김남조 시인의 아름다운 시(詩)로 배웅하겠습니다.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 시간이 사람에게
시간은 항상 새롭습니다. 자연스러운 변화와 흐름에 의해 찾아오니까요. 시간은 사물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을의 단풍, 겨울의 하얀 눈들처럼 세상을 다르게 바꾸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가요? 시간은 사람의 바깥 모습을 바꾸어 놓을지언정 속마음과 사고(思考)까지는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려는 의지와 실행이 전제돼야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새로운 다짐과 변화를 꿈꿉니다. 그렇지요? 새로운 시간이 사람의 마음을 고쳐주는 힘이 있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종종 사람들에게 희망을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새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희망을 안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 애를 쓰는 게 바로 시간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안고 시작한 시간의 ‘시작’이 반드시 해피엔딩 만은 아닙니다. 비극으로 흐를 수도, 결론 없이 마무리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의 출발과 달리 시간의 끝남은 언제나 상큼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시간의 주어짐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시간의 시작은 곧 새로움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또 새로움은 백지(白紙)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은 앞서 사람이 먼저 인정했습니다.
그럼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리는 그림이 걸작이냐 졸작이냐는 누구의 몫인가요? 또 하얀 도화지 위에 삶이건, 습관이건, 마음이건, 생각이건, 기존의 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요? 바로 ‘나 자신’이요 ‘우리’입니다.
톨스토이가 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남을 개조하려고 하지 스스로를 바꾸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로댕도 비슷한 말을 했지요. “사실 행동하는 아름다움은 이미 그 돌 속에 존재하고 있지요. 다만 나는 그 중 군더더기 부분을 잘라낸 것뿐이랍니다.” 사람은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을 고치는 것도 시간이 아니라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 하지 않다는 것을 시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허송세월 일뿐이라는 사실을 함께 알아야 합니다.
가수 김연자 씨가 대학가에서 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45년 경력의 트로트 가수가 대학가에서 인기라는 신문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아모로파티’ 때문인데요. 스케줄이 꽉 차 정작 대학 몇 곳은 못 갔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노래의 가사 가운데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등이 청년들의 마음을 열게 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허송세월을 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가 가사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김연자 씨는 원래 이 노래에 자신의 인생을 담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제목이 ‘연자 송’이었다지요. 파란만장한 가수의 일생을 표현하려고 쓴 묘사가 아랫세대에 꽂혔다고나 할까요? 시간은 청년이라고 결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라도 시간인 내가, ‘아모르파티’처럼 청춘에게 공감과 위로를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법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창조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법정 스님의 글 가운데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든 사람이든 늙음과 죽음이 온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손을 멈추지 않는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은 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시간의 씨를 어떻게 뿌릴 건가요? 그래서 시간의 뒷모습을 볼 때쯤 어떻게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은가요? “시간은 금이다!” 이 말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