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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Sep 13. 2021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을 읽고

뽀송뽀송하고, 사랑방같고, 우리 삶의 다양성이 살아 있는 곳의 이야기…

나에게 편의점은 이런 곳이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후배 부친상 문상을 가는 길이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졌다. 신발과 함께 양말이 양동이 속 빨래처럼 흠뻑 젖었다. 도저히 그대로 갈 수 없을 정도였다. 장례식장 주변 편의점에서 양말을 사서 바꿔 신었다. 그 뽀송함이 얼마나 기뻤던지….


사업장 바로 옆에는 G편의점이 있다. 한 직원은 아침마다 아이스커피 2잔을 사온다. 형님 한 잔 아우 한 잔, 내가 누리는 매일 아침의 호사다. 직원들의 여름 폭염을 식혀줄 아이스크림을 사는 곳도 편의점이다. 자연스럽게 점주와 친해졌다. 이런 저런, 사람사는 이야기 중심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들를때마다 사랑방 같은 느낌이었다.


일본 소설 <편의점인간>을 읽은 적이 있다. 18년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의 이야기였다. 사회부적응이라는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다양한 삶이 있는 편의점이라는 주인공이다.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오지편)이 이처럼 뽀송뽀송하고, 사랑방같고, 우리 삶의 다양성이 살아 있는 곳의 이야기다.



[하루, 지킴]

편의점에서는 단지 물건 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학교다. 그래서 학생과 스승이 만난것처럼 배우고 익힌다. 또 삶의 오감이 모두 존재한다. 사랑과 행복, 걱정과 우려, 낙관과 비관이 오롯이 상존한다. 드라마와 개그가 있고, 다큐멘터리가 있다. 사람의 이야기가 잔뜩 있는 곳이 바로 편의점이라는 것을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유난히 투명한 눈물도 있다. 


‘영대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영대가 우리 편의점에서 일하고 며칠 지났을 때 한 아주머니께서 찾아오셨다. 마침 내가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하더니 자신이 영대 어머니라고 했다. “약해 보여도 성실한 아이입니다. 편의점 일을 잘 가르쳐 주세요.” 숱한 일바와 일해봤지만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 면담하듯 나를 찾아온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면 스승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비밀, 지킴]

버나드 쇼가 말했다. “수치스러운 집안의 비밀을 없앨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물론이다. 편의점과 수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편의점의 메커니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상대방에게 모르기 때문에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줄어들게 만드는 긍정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야말로 백화점 처럼 풍성한 물건을 만날 수 있고, 배우(俳優) 만큼 수많은 직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지편>이 아니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내 직업은 과연 무엇인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 팔고, 참치회, 편육, 홍어회, 양꼬치, 삼겹살까지 판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 있는 수제비와 잔치국수도 언제나 편의점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도대체 편의점에서 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을까? 스무 평 작은 공간에 온갖 욕망을 다 집어넣었다. 공과금 수납원, 치킨집 아저씨, 군고구마 노점상, 빵가게 주인장, 분식점 조리사, 보험 설계사, 급기야 의사, 간호사, 경찰관까지….’


[우리, 지킴]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하얀 마스크로 반쪽 얼굴을 만들더니 가정 경제를 반토막으로 잘라버렸다. 편의점도 예외가 아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편의점 매대를 갖추는 것보다 위에 놓이게 됐다. 어려울 때 비열해지는 사람이 있고, 위기에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사람이 있다. 작가는 후자다. “(확진자가 나)왔어!”라는 메시지가 두려운 단어로 바뀌어도, 음성이냐 양성이냐 절박한 위기 앞에서도 타인을 먼저 걱정한다. 


‘… 그렇게 우리는 소박한 다짐을 한다. 괜찮은 세상이란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괜찮니?”라고 물어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아웃에게 자꾸 “괜찮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관심이 쌓여 세상은 묻는 만큼 괜찮아질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당신, 괜찮습니까?’



[내일, 지킴] 

봉달호의 본캐는 편의점주, 부캐는 작가이다. <오지편>은 <매일 갑니다, 편의점>에 이은 두번째 작품이다. 편의점의 내일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작가가 먼 훗날의 언제까지라도 모든 자랑을 들어줄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의 그 자리에서….

편의점은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와 같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쓴 안정효 작가는 좋은 문장과 단어들을 수시로 적어 보물창고에 집어 놓는다고 했다. 글을 쓸 때 보고에서 하나씩 꺼내 쓰기 위해서라고…. 

작가에게 편의점이 그렇다. 작가는 경험적 서사로 글을 풀어가는 강점이 있다. 편의점의 내일을 지키려는 작가의 책임감이 아름답다. 글로 인해 편의점에 대한 낭만과 행복이 괜한 착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작가의 염려가 그렇다. 바로 이 대목이다.


‘내가 소개하는 재밌고 훈훈한 편의점 이야기는, 편의점이라는 강물에서 하루 종일 뜰채 흔들어 겨우 찾아낸 사금 한 조각 같은 사연들이다. 그걸 보고 강바닥은 온통 금 바닥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강에 대한 희망까지 버려서는 안 되겠지.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지루한 변명을 덧붙여야겠다. 아, 역시 쉬운 일이란 없구나.’


지금도 작가는 조선일보 등 여러 매체 등에 영향력 있는 글을 쓰고 있다. 중단없는 작가의 글은 ‘오늘도’를 넘어 ‘내일도’ 지키겠다는 독자를 향한 다짐일 수 있다. 작가는 ‘느슨한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오늘도 달리고 있다.


‘오늘도 나만의 출발선에 선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다. 신발끈을 고쳐 맨다. 자,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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