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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Nov 09. 2021

인생을 재개발하라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단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난해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의 노래 <사랑의 재개발>이 큰 인기를 얻었다. ‘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라고 시작하는 과감한 가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갈아엎으라고 내내 소리지른다. ‘나비 하나 날지 않던 나의 가슴을 재개발’해서 사랑이 찾아오게 해달라는 노랫말은 그야말로 인간의 개조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재개발은 단어 자체는 긍정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궁색 맞을 만큼 지지부진하던 동네가 재개발을 통해 상전벽해(桑田碧海)하여 세련된 도시로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재개발이라는 단어는 부동산과 직결된다. 


하지만 재개발을 우리 자신한테도 사용해보자는 것이다. 인간의 태어남이 개발이요, 그리고 그럭저럭한 삶을 영위해왔다. 변화없이 살아온 삶이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개발을 다시 하자는 것이 바로 재개발이다. 


재개발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이미 있는 것을 더 낫게 하기 위하여 다시 개발함.’ 결국 재개발은 새로워지는 것이고, 바꿔지는 것이다. 바로 새로움과 탈바꿈, 변화와 변모의 다른 표현이 재개발이라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변화와 흐름에 의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새로움이다. 변하려는 자신의 의지와 실행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 탈바꿈이다. 탈바꿈은 스스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새로움은 자연법칙에 의해, 탈바꿈은 본인 의지에 의해 우리들에게 변화와 변모의 기회를 가져다 준다.


보통의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재개발을 생각하지 않는다. 또 보통의 사람들은 낡고 오래된 것보다는 새것,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새로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들뜨게 한다. 


어쩌면 재개발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일 수 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다시 시작’한다는 것과 같다. 인생의 재개발이 쉽지않는 것은 ‘시작’에 대한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희망을 안고 재개발한 ‘시작’이 반드시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따라온다. 


그래서 기분 좋은 새로움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새롭다는 것, 거기에는 기대감이 있듯이, 불안감도 함께 따른다. 살아오면서 몸에 익은 익숙함 위에 새것, 재개발이라는 것이 생경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새로움은 자연과 시간의 흐름에 의해 찾아오기도 한다. 재개발을 통한 새로움은 백지(白紙)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리는 그림이 걸작이냐 졸작이냐는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기존의 바탕들을 허물고 새로운 도화지에 무엇을 그려볼까? 각자가 구상하고 있는 작품의 성공을 기대해본다. 재개발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재개발에 뛰어들어 가보자.


재개발은 또 탈바꿈이다. 많은 사람들이 탈바꿈을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삶이건, 습관이건, 마음이건, 행동이건, 기존의 방식와 태도를 바꾸는 것, 즉 우리들의 모습을 바꿔 보자는 것이다. 탈바꿈으로 인하여 모양이나 태도 등이 달라지게 된다. 탈바꿈의 성공은 자연과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다. 오직 자신에게만 달려 있다.


톨스토이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남을 개조하려고 하지 스스로를 바꾸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라며 탈바꿈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지적했다.


로댕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언젠가 누가 그에게 어떻게 돌덩이로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품을 다듬어낼 수 있느냐고 묻자 로댕이 말했다.


“사실 생동하는 아름다움은 이미 그 돌 속에 존재하고 있지요. 다만 나는 그 중 군더더기 부분을 잘라낸 것뿐이랍니다.” 로댕은 습관을 극복하지 못한 인간적 한계를 일컬었다.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변화가 개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속해 있는 가정과 단체, 지역사회는 물론 자신의 삶 속에서도 탈바꿈을 통해 기존의 방식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구태의연과 기성(旣成)의 틀을 버리고 창조적 사고와 창의적 노력으로 삶에 있어 변화를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인생의 혁신이다. 바로의 인생의 재개발인 것이다. 재개발은 변화와 창조로 새롭게 지금의 인생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거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든 사람이든/ 늙음과 죽음이 온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손을 멈추지 않는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은/ 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법정스님·자신을 창조하는 일)


자신을 재개발하기 위하여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자. 자신을 새롭게 하고, 탈바꿈할 것은 없는지. 또 새롭게 해주고, 탈바꿈시켜야 할 것들이 우리 주변에 있지는 않는지. 한 예술가는 “새롭다는 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거든, 중요한 것은 하나야. 사물의 내부를 파고 들어가 그것을 더욱 뛰어나게 창조해내는 것이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서른여덟 형경씨의 인생 재개발>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치유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고통 속에 머물 것인지. 슬픔의 다른 단계들과 마찬가지로 여섯 번째 단계에서도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과거를 떠나지 않고서는 미래를 향해 할 수 없다. 살아왔던 날들에 작별 인사를 하고 다가올 날들에 긍정의 대답을 해야 한다. 이렇게 자문해보라. “이러한 상실과 더불어 변하고 성장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다. “이러한 상실과 더불어 성장하지 못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정치, 경제, 교육 등 우리 사회 전반의 현재는 그야말로 불신의 모습들이다. 우리 사회 곳곳이 총체적인 불신에 빠져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사회와 인간의 신뢰도는 매우 낮아 갈등과 불신이 팽배해 있다는 얘기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불신초래의 주체다. 불신이 겹겹이 쌓여있는 그 안에 우리가 있다. 결국 인간의 힘으로 불신의 벽을 깨트려야 한다. 불신사회의 종말이 비참함으로 끝나기 전에, 사람들의 삶이 점점 황폐화되기 전에 정신차릴 사람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임제 선사의 차르침이 떠올랐다.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공이 되어라.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실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단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시시때때로 흘려 보내줘야 한다. 지금이 자신을 재개발하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싹 다 갈아 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싹 다 갚아 엎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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