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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Dec 17. 2021

나의 존재감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

사람도 겨울꽃처럼 누군가에게 쉼과 여유가 됐으면 싶다

동네 어귀 어느 집 앞마당에 감나무가 서 있다. 나뭇가지에 감이 봉긋 솟아나면 ‘가을이 시작되는구나’를 느끼곤 했다. 가을이 깊어지고 감은 노르스름하게 익어간다. 계절의 섭리를 다시 체감하는 순간이다. 주인에 의해 감은 하나 하나씩 사라져간다. 결국 노랗게 익은 감은 서너 개만 남아 마른 가지에 매달려있다. 겨울로 들어서고 있는 시점이 됐다.


어느 날 아침, 중력을 이겨내면서 힘들게 달려 있는 감 한 개가 눈에 들어왔다. 외로워 보였다. 허술한 노출로 빈틈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관심 밖에서 한참을 뛰어 놀아도 저녁밥 시간 때 불러주는 사람 없는 아이처럼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까치 한테는 소중한 먹거리가 될터이다. 감 하나가 희망이 되는 경우가 이렇다. 인생은 감처럼 희망이 되어야 한다.


카메라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이 좋기만 하진 않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멋진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것처럼 우리 사랑이라는 게 그처럼 아름다운 날만 있지도 않다. 웃는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목표라지만 얼굴의 표정 가운데 웃음 만으로 삼백예순 날을 채울 수 없다.


빨간 우산을 쓴 채 서 있는 아름다운 연출이 있어서 내리는 빗속에서도 인생이라는 연극은 성공하는 법이다. 사람의 범위 안에서 다짐하는 신명이 있어야 슬픔의 눈물을 아름답게 가릴 수 있다. 웃음을 밑그림 삼아야 인생의 초상화는 행복의 순간들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여름을 지나 가을을 열고, 또 겨울을 만난다. 누구의 삶이든 마른 공중에 튕겨 쪼개지는 햇살처럼 분해되고 흩트러진다. 우리의 인생은 거룩한 시간의 조각들을 정갈하게 모아야 한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게끔 흐름의 움직임들이 합쳐져서 가슴으로 기억하고픈, 그것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인생이 된다.


인생이란 원하지 않는 길, 뜻밖에 가야 할 길을 가고는 한다. 그렇지만 그 길을 걷게 되면 결국 나의 길(my way)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심해야 하 것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최고라는 것, 다른 무엇 보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 고뇌를 거쳐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 온다는 것, ‘노력’에 의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는 것, 포기하지 않는 삶이 결국 범사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좌절하지 않을 때 인생 여행에서 ‘길(way)’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이다.


오늘은 또, 인생의 어느 날이다. 가끔 공격 보다는 수비가 최상의 전략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사랑이 주저앉는 것도, 갈 길을 돌아가는 것도, 성공을 앞두고 짐을 싸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두고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 그 모든 것은 쇼였어!” 오늘 하루도 인생의 연출을 잘 해야 한다.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모르니까 말이다.


아침 일찍, 고객 한 분이 오셨다. 차가워진 날씨에도 얇게 입은 옷 상태가 걱정돼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땀이 나야하는 일을 하셨나 봅니다.”

“해뜨기 전에 일을 해야 넉넉한 오후를 만날 수 있어요. 추운 날씨에도 땀이 날 정도로 일을 해야 부지런한 인생이 되는 것이고요.”

“하긴 인생이란 땀을 흘린 만큼 얻는 법이니까요.”

“땀의 보람이 땅의 보람으로 와야 하는데, 요즘에 흙은 땀으로 말을 잘 안하는 것 같어.”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알들이 달콤한 결실의 맛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줬다. 흘린 땀의 양만큼 기쁜 행복이 인생의 차곡차곡 쌓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땀이 천하보물의 근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나는, 가끔 공격을 멈추고 수비를 하는 인생이 좋겠다 싶어졌다.


나는 길을 걸을 때 앞서가는 사람의 발뒤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하루를 짐작해본다. 경쾌하게 느껴지면 만사형통의 날이었을 것이다. 발걸음에 힘을 받는 모양새는 의욕성취의 날이었을테고. 무겁게 내디딤은 굴곡의 순간이 짝이 된 날이었을거고. 힘 없는 촉감은 미련의 잔상이 있는 날이었을거다.


그래서 나의 발걸음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은 멈추어 있을 뿐, 흘러가는 것은 인생이다.” 겨울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아 가을, 흘러가는 인생을 즐기는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


서두에 까치밥이 된 감나무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자연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는 날은 눈이 오는대로, 바람부는 날은 또 바람이 부는대로, 추운 날에도 내리는 햇빛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런 수많은 날씨와 함께 인생은 레이스와 같다.


여행을 가서 태풍을 만나고, 스키장에서 비를 만나고, 이것저것 모두가 인생의 일부이다. 늦가을 꽃은 화려한 느낌을 받는다. 추위를 견뎌내야 하기에 그럴 것이다. 차가운 날씨가 몸에 부딪쳐도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끼는 사랑을 살짝 보여주는 것처럼 고귀한 행동이다. 


사람도 겨울꽃처럼 누군가에게 쉼과 여유가 됐으면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건 나뿐인 것처럼 말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쓴 <굿라이프>에는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을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눴다. 

첫 번째 그룹은 ‘심리주의자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기술을 말함이다. 명상을 하거나, 감사한 일을 세어 보거나, 부정적 사건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해보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그룹은 ‘환경주의자의 기술’이다. 특별한 마음의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애초부터 쉽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행복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 예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기술을 자유자재로 그리고 균형 있게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행복해지는 것, 결코 어렵지 않다. 마음의 기술이 잘 활용하면 된다.


‘나’라는 존재가 바로 세상의 주인이어야 하기에 오래 전에 쓴 자작시 <그럴 수 있다면>을 읽어 본다.

     

바람이 세상의 모순을 날릴 수 있다면

태양이 사람의 고뇌를 태울 수 있다면

시간이 마음의 아픔을 씻길 수 있다면

나는 바람이 되어

태양이 되어

시간이 되어

질긴 넝쿨을 만들고

인간의 고통을 묶어 내리라

사람이 사람의 희망을 돋을 수 있다면

나는

별이 되어

달이 되어

세상의 굴곡을 밝혀주리라

타인의 의해 살아지는 인생이라 슬퍼하지 마라

삶의 소유는 우리요

내일이 또 우리를 기다리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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