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를 분석하고 후회를 희망으로 바꿔 갈 때 인생은 변하는 것이다
12월의 마지막 날이다. 손이 꽁꽁 발이 꽁꽁 언다. 입김을 호호 불며 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그네들 뒤로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이 울려 퍼져 아쉬움이 두터운 외투에 감춰진 몸속으로 파고든다. 여전히 거리에는 번쩍이고 깜빡이는 작은 전구 빛에 둘러싸인 크리스마스트리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성탄의 평화와 은총 마저 이제는 억겁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멀리서 송년의 타종 소리가 환청 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12월의 밤은 화려하다. 그 속에 숨어 있는, 가는 세월의 미련이 적지 않다. 올 한 해가 아주 멀찍이 달아나 이제는 끝만 보인다. 아니, 보이질 않는다. 뒷 모습의 흔적이 없다.
시작과 끝이 헷갈린다. 끝에 선 기분이지만, 이내 시작점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12월에 들어서면 끝맺음을 하려 한다. 주변도 정리한다. 연초에 세운 인생 목표를 마감하려든다. 열 달하고도 한 달이 지나도록 손을 놓고 있다가, 섣달이 되면 그제야 마침표를 크게 그려본다. 후회와 자탄의 시간을 맞는다.
어떤 이는 인생의 허전함을, 어떤 이는 외로움을, 또 어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후회의 순간들을 느끼게 된다. 우리들은 매번 연말이면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곤 하지만, 이내 새로운 준비가 더 중요함을 느낀다.
우리답게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 우리들 발에 밟히던 낙엽은 이제 흰 눈에 덮여 있다. 헌 것은 새 것에 의해 가려지고 지워지고 잊혀 진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눈물로 사려해도 허락하지 않는 게 세월이다. 삼백 예순 닷 새를 살아온 2021년을 이제 곧 떠나보내야 한다. 보내는 마음이 아쉽다. 기대되는 구석도 있다. 변함없이 2022년의 첫 날이 될 테니까 말이다.
12월이라는 시간이면 항상 후회라는 쓰나미가 밀치고 들어온다. 지나 온 날의 후회가 맵지 않도록,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헛되게 보낸 시간을 반성할 시점이 바로 지금, 12월이다.
세월이 흘러가 그 뒷모습을 돌아 볼 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을 절대로 헛된 시간일 수는 없다. 누구나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을 채로 걸러도 자신 만이 남을 것 같은 생각이 전부였다.
서른쯤 되면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채로 거르니 자신 만 쏙 빠져 나가고 남는 것은 온통 남들뿐이다.
마흔 쯤 되면 채로 걸러진 자갈 덩어리에 마음이 좌충우돌 한다. 도대체 금전이든 사랑이든 쌓여진 게 없는데 얼굴만 거북처럼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정상에 꽂지 못한 깃발이 손에 들려 있고, 이름 없는 들꽃처럼 열정만 마음 한 켠에 그윽하게 숨어있다.
일목요연한 인생노트를 기대하면 오십을 맞이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일들, 또는 아예 몰라서 무시해버렸던 일들이 삶의 원칙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통찰력이나 직관으로, 잘 살아보리라 했던 다짐들을 천천히 내려놓는 시점이다.
인생은 이처럼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후회뿐이다. 축축한 바위에 이끼가 끼어있듯 온 몸은 곰팡이가 핀 것처럼 퍼렇기만 하다. 비범함을 떨치며 세상을 호령할 듯 했던 마음은 직립으로 솟아오른 나무를 보며 위안 삼으면서 그게, 그 삶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이 자신한테 돌아 올 수 없음에도 이상한 마법처럼 기대하곤 한다. 내 존재의 바닥에 가장 풍부하게 깔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후회라는 주제의 그림을 복기(復棋)하기 시작한다.
나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볼 때 3가지의 후회를 하게 된다.
먼저 속도에 대한 후회이다. “그 때 좀 더 빨리 움직이고, 좀 더 빨리 의사결정을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시스코시스템스의 존 챔버스(John Chambers) 회장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고 말했다. 사람은 늘 익숙하게 해 왔던 일만 하고, 늘 같은 속도로만 걷는 관성의 법칙을 깨뜨리지 못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다음은 후회에 대한 후회이다. 법륜 스님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은 굉장히 소중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정말 내가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정말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말을 하고 있는지 깊이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동하기 전에 먼저 후회 않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이라고 일갈한 시인 정현종의 시처럼, 후회하기 전에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하라.
끝으로 ‘후회는 스승’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1982년 벨(D. Bell) 연구팀은 사람들이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행동을 피하려는 경향으로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효용이 적은 쪽을 선택하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발표했다. 바로 후회이론(Regret of Theory)이다. 효용의 가치보다는 후회를 덜 하게 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그렇다면 후회를 하더라도 최상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세상에는 후회하지 않는 행위는 없기 때문이다. ‘후회가 곧 스승이다.’라는 인생철학으로.
브로니 웨어(Bronnie Ware)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에는 죽기 전 가장 많이 후회하는 5가지가 나열돼 있다.
= 남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에게 더 솔직하게 용기내서 살아볼 것을.
= 일에만 치우치지 말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 감정 표현을 많이 하고 살 것을.
=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을.
= 인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 것을.
누구나 후회 없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누구나 되풀이되는 후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누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후회를 거듭하지 않는 것이 성공한 인생을 만들 수 있다. 후회를 불완전한 사람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원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후회를 분석하고 후회를 희망으로 바꿔 갈 때 인생은 변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삶에서는 그 어떤 결정이라도 심지어 참으로 잘한 결정이거나 너무 잘못한 결정일 지라도 정답이 될 수 있고 오답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답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삶이라는 그 자체가 후회의 연속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국의 작가 빅토리아 홀트가 말한 것처럼 우리 이제부터라도 후회의 정의를 바꿔 보자.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은 일이라면 그것은 멋진 것이다. 나쁜 일이라면 그것은 경험이 된다.”
후회의 크기가 점점 작아질 때 우리의 삶은 벅차오를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후회를 넌지시 알려주는 지금이 바로, 12월의 끝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