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2. 작은 보상이 되는 순간

by NaeilRnC

후인이 중학생이던 어느 해, 아직 거리는 차가웠고, 양말 속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던 일상.

그때의 그는 배우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집의 사정은 늘 빠듯했다. 용돈을 입에 올리기조차 어색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그는 자연스럽게 ‘일하는 아이’가 되었다. 친구들이 학원을 오갈 때, 후인은 작업복을 챙겨 들고 공사장으로 향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챙기고, 졸린 눈을 비비며 현장으로 향하던 그 감각은 지금도 그의 뼛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하루 종일 철근을 나르던 날. 어둡고 습한 공기.

발아래로 떨어지는 흙먼지. 철근의 차가운 표면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던 묵직한 무게. 팔이 아파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한 뒤에도 일은 계속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비닐봉지에 담긴 따뜻한 김밥 하나를 먹고 나면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했지만, 곧 다시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날의 하루 품삯은 4만 5천 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크지 않은 돈이지만 그 당시의 후인에게는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번 돈이다’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마음이 뜨겁고, 조금 더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일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 후인은 피로보다 배고픔을 느꼈다. 지하에서는 냄새 하나 제대로 맡을 수 없었지만 밖으로 나오자마자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가 그를 붙잡았다. 정육점이었다. 유리 진열대 안에서 하얀 지방과 분홍빛 살코기가 층을 이룬 삼겹살이 밝은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오늘 함께 일한 아저씨가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런 날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최고지. 그래야 기운이 돌아.”


그 말이 괜히 마음을 울렸다. 마치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오늘 만큼은 너 좀 챙겨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후인은 잠시 고민했다. 버스비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지하에서 철근을 들어 올렸던 자신의 팔과 허리가 조용히 말했다.


그냥… 오늘만은 괜찮지 않겠어?


그렇게 후인은 1만 2천 원이라는 큰돈을 내고 삼겹살 한 근을 샀다. 봉투에서 퍼지는 냄새만으로도 기분이 조금은 따뜻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후인은 옷을 갈아입고 프라이팬을 꺼냈다. 달궈진 팬 위에 고기를 올리자 지글지글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말없이 식탁에 앉아 방금 올라간 고기를 자연스럽게 집어 먹기 시작했다.

후인은 순간 어색한 기쁨과 작은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가 고른 고기인데…’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고기를 몇 점 더 먹더니 말을 꺼냈다.


“소주 한 병 사 올래?”


후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버지는 천 원을 건넸다. 겨우 5분 정도? 그 정도 거리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왔을 때 식탁 위에는 이미 고기 접시가 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소주를 따더니 잎사귀 하나 남지 않은 접시를 보며 중얼거렸다.


“고기 먹다 소주가 없으니 입맛만 버렸네.”


후인은 말없이 서 있었다. 아버지는 이내 불편한 표정으로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알아서 사다 놔.”


그 말은 명령 같기도, 책망 같기도, 그냥 습관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석은 모두 후인의 몫이었다. 그날은 어린이날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선물이나 외식을 했을지 모르지만 후인은 그날 공사장에서 일을 했고 혼자 고기를 구웠고 아버지의 한 마디를 들으며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 후인의 입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후인은 혼자 방에 앉아 프라이팬을 생각했다. 기름이 식어가는 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내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작은 보상은 왜 이렇게 쉽게 사라졌을까.’


아버지가 고기를 먹은 것이 정말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인의 마음은 고기 자체가 아니라 ‘내가 나를 챙기려는 마음’이 허공으로 흩어진 것 같아 서운했던 것이다. 그 감정은 그 후 긴 시간 동안 후인 안에 조용히 남아 성인이 된 후 그의 선택들, 사람을 대하는 방식,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그때의 작은 서운함은 누군가에게는 사소할지 모르지만 후인에게는 삶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나는 왜 나에게 친절하게 굴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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