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 새벽의 작은 진동
겨울 새벽, 방 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실처럼 가느다란 소리가 스며들었다.
에에에엥—
아주 미세하면서도 귓속 바닥을 긁어내리는 듯한 진동.
후인은 반쯤 감긴 눈을 겨우 뜨고 몸을 뒤척였다. 어둠 속에서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하지만 예상처럼 손끝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잠결에 흩어진 생각들은 모기 한 마리의 날갯짓에 순식간에 휘발되곤 했다.
‘겨울에도 모기가 있네….’
그는 한숨처럼 생각했다. 한여름에도 잘 안 보이던 모기가 추운 겨울에 집 안을 활보하는 게 기묘했다.
불을 켜자 방 안 공기가 낯설 만큼 적막했다. 밤새 잠을 설친 탓인지 눈꺼풀은 무겁고, 머릿속은 아직 꿈의 잔해가 떠다니는 것 같았다. 후인은 노트북을 켰다. 새로 뜨는 화면의 푸른빛이 방 안의 공기를 얇게 갈랐다. 커뮤니티 창을 열고 스크롤을 내리는 순간 그의 시선이 하나의 제목에서 멈췄다.
“요즘 엄마들, 초등학생 정관수술 시킨다?”
순간 머릿속에서 작은 마찰음이 일었다. 제목은 낚시라는 걸 알면서도 그 조합 자체가 묘하게 불편했다.
엄마들. 초등생. 정관수술.
그 단어들은 각각 다른 세계의 조각 같은데 이상하게도 한 줄에 묶여 있었다.
후인은 차례차례 단어를 굴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주 오래전 어느 겨울 저녁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느렸다. 집은 늘 어둡고 따뜻했지만 어떤 날엔 그 온기 속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이 있었다. 어린 후인은 TV 앞에 엎드려 만화영화를 보던 중 삼촌이 문득 말했다.
“돈가스 먹으러 갈래?”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던 작은 경양식집. 삼촌의 제안은 그 자체로 선물이었고 그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날 그가 마주한 건 돈가스가 아니라 삶이라는 것의 첫 번째 뒤틀림이었다. 마취냄새 가득 남은 입안, 휘청거리는 다리,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돈가스 조각. 어린 마음은 당황했지만 그날은 그저 ‘어른들이 하는 게 원래 이런가 보다’하고 넘겼다.
노트북 화면 앞에 앉은 지금의 후인은 그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 깨달았다.
세상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어떤 순간에는 너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그걸 어린 나이에 본 사람은 이상하게도 그런 장면 앞에서 남들보다 빨리 멈칫하게 된다.
‘초등학생에게 정관수술이라니….’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면 그 제목은 단순한 낚시가 아니라 시대가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스크롤을 멈춘 채 후인은 고요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의 아버지는 불평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법을 아마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식탁은 늘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하루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버지는 밥을 먹으며 가끔 담배를 피웠다.
후인은 그 연기 너머 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종종 읽기 어려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에게도 말하지 못한 응어리가 있었다는 걸 알지만, 그때의 후인에게 그건 단지 ‘어른의 표정’ 정도로만 보였다.
‘넌 내가 낳았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크든 작든 이 문장을 속에 품고 살았다. 말로 꺼내지 않더라도 사소한 행동들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 보면 그 문장은 단지 시대가 만들어낸 관습이었고 때로는 폭력적인
구조의 일부였다.
후인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다 살짝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아버지가 지어준 ‘厚仁(후인)’이라는 이름의 뜻 또한 생각났다.
두터울 厚, 어질 仁.
뜻만 보면 좋은 이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후인은 오래전부터 느꼈다.
이름이란 건 뜻만이 아니라 그걸 지은 사람의 마음까지 담는 법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그 이름에 자신의
이상과 기대를 담았지만 아들이 삶 위에 그 무게가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지 전혀 관심 없었을지도 모른다.
에에에엥—
방 안 어딘가 다시 작은 소리가 났다. 후인은 주변을 둘러보다 결국 불을 끄지 않았다. 모기는 단지 벌레가
아니었다. 그는 어느 순간 인생의 어떤 시기, 어떤 사람들, 어떤 관계가 남긴 작은 흔들림을 모기 소리에
빗대어 떠올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무력함,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괜히 가슴이 답답하던 밤들,
말로 꺼내면 너무 적나라해서 차라리 삼켜버렸던 이야기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모기처럼 피부를 스치고,
가끔은 피를 빨아가고, 그리고 다음날까지 가렵게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았다. 오늘의 모기 소리는 그 시절의
잔향처럼 들렸다.
후인은 천천히 노트북을 덮었다. 지금은 단지 잠을 설치고 일어난 겨울 새벽이지만 어쩌면 이 순간은 그때와 지금을 잇는 작은 문이 열리는 시간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기억들이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