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첫 출근을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과열됐다.
‘드디어’라는 말이 반갑기보다 부담스럽게 들리는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랬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꿈을 꾸다가 "식혜"를 외치며 잠을 깼는데 새벽 3시였다.
뭔가, 쎄한 느낌. 불안함.
이상한 꿈은 늘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흔든다. 꿈의 내용보다도, 꿈이 남긴 기분이 더 오래간다.
나는 그 기분을 떼어내려고 잠을 한 번 더 청했는데, 눈은 끝내 다시 감기지 않았다.
꿈을 해몽해 보니 임명장을 받거나 학문적으로 성취를 이루는 길몽이라고 했다.
난 지도교수도 아직 없는데, 학문적 성취는 모르겠고 임명장을 그럴듯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길몽의 날짜였다. 그런데 길몽이라는 말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진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이 있어야 한다’는 기대감이 또 다른 긴장으로 바뀌었다.
오늘 8시 20분까지 오라는 사전통보에 따라 8시까지 직장 앞으로 갔다. 너무 추워 바람이 안 들어오는 곳에 웅크려 담배를 피웠고, 직원이 오길 기다렸지만 20분이 다 되어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출근 전의 시간은 늘 이상하다. 시간은 흐르는데, 나만 제자리인 느낌. 담배 연기만 위로 오르고, 나는 바닥에 더 가까워졌다. 문득 ‘내가 너무 일찍 온 건가’ 싶었고, 또 ‘이렇게까지 떨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떨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떨린다. 그게 첫날이었다.
8시 30분. 팀장님이 오셨고, 임명장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 주간업무회의가 개최되었다. 나의 업무는 생전 처음 접하는 "구매"와 "추경". 나는 회의실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다. 웃지는 않았지만, 표정은 잃지 않으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말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흐름’을 놓치면 더 위험하니까.
“구매”와 “추경”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놓였을 때, 그건 업무라기보다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나라에 갔을 때, 알파벳이 아니라 문법부터 배우는 기분. 면접장에서 심사위원장이 “오래 다닐 수 있느냐?”라고 계속 물었던 게 생각났다. 면접예정자 4명 중 3명이 왜 안 왔는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여기서는 ‘적응’이 먼저 시험대에 오르는 자리라는 걸 오늘 느꼈다.
적응이라는 말은 부드럽지만, 사실 꽤 잔인하다. 능력과는 다른 문제라서 잘해도 어색할 수 있고, 잘 못해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첫날의 나는, 아무래도 어색한 쪽에 가까웠다.
점심시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시간이었다. 선임자들은 모두 회사에서 차로 1시간 이상씩 떨어진 곳에서 출근했고, 내가 걸어서 30분이라는 말에 놀라워했다. 내가 가장 가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 어린 직원들은 나를 신기해했고, 나와 나이 차이가 가장 적은 상급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출근해서 만난 사람들은 좋아 보였다. 총원 9명 중 2명은 오늘 휴무였기 때문에 내일이면 이 조직의 공기가 더 또렷해질 것 같다.
아, 그리고 이 조직은 여초회사였고 흡연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마치 무인도에 혼자 고립된 기분. 흡연실이 따로 있는지도 아직 모르겠다. 어디에 가서 피워야 하는지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도 애매했다. 사소한 것들이 다 애매했다. 사소한 것들이 애매하면 사람은 더 외로워진다.
안 그래도 외로운데, 맡은 업무는 생소했고, 웃으며 친절했던 선임자들은 아마 조마조마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 온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 얼마나 빨리 익숙해질지. 얼마나 조용히, 혹은 얼마나 크게 흔들릴지.
오늘 하루 내내, 나는 “괜찮은 척”을 했다. 그 척하는 힘으로 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첫 출근이라는 건, 일을 시작하는 날이 아니라 내 마음을 숨기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날일지도 모른다는 걸.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덜 떨릴까. 아니면 오늘보다 더 떨릴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