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를 말할 수 있는 자격
병원 가는 길에 도윤은 내 손을 잡지 않았다. 잡아주면 좋겠는데, 오늘은 잡히는 순간 더 불리해질 것 같았다.
어머니가 원하는 건 “내가 안전한 맛을 고르는 장면”이지, “내가 누군가를 선택하는 장면”이 아니니까.
사람들은 손을 잡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손은 때로 서류보다 먼저 증거가 된다.
나는 오늘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라도, 내가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도윤 : 너, 괜찮아?
후인 : 괜찮은 척은 할 수 있어.
도윤 : 그건 괜찮은게 아니지.
도윤이 숨을 짧게 웃었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먼저 와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데리고 온 게 아니라, 결정을 데리고 온 얼굴이었다.
손에는 서류봉투가 있었고, 그 안의 종이들이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글자들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늘 병원에 오면 더 단정해진다.
단정함이 그녀의 갑옷이고, 갑옷은 상대를 ‘환자’로 만들 때 가장 빛난다.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어머니 : 접수부터 하자
그리고 도윤을 보지도 않은 채 덧붙였다. 도윤은 한 발 뒤에서 내 속도를 맞췄다.
오늘 도윤의 ‘동행’은 내 옆을 지키는 게 아니라, 내가 흔들릴 때 내가 넘어질 공간을 비워두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배려가, 오늘은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옆에 서는 것’이 위로가 되려면, 그 옆이 내 자리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걸.
누군가 내 자리를 잠식하는 순간, 동행은 관리가 된다. 접수대 앞에서 어머니가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 : 보호자 칸도 오늘 다시 확인하자.
보호자. 그 단어가 목 뒤를 눌렀다.
나는 글자가 또렷이 보이지 않는 게 싫어서 오히려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까이 갈수록 글자들이 더 멀어졌다.
글자는 멀어지는데, 결정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읽지 못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읽지 못한 채로도 이미 움직이게 되는 게 두려웠다.
간호사가 말했다. "보호자 분 성함 여기 적어주시면 됩니다.”
어머니는 펜을 집어 들었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쓰려는 손이었다.
그런데 펜 끝이 종이에 닿기 직전에 어머니가 멈췄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어머니 : 후인아. 너는 누구를 적고 싶니.
그 질문은 선택을 주는 척하면서, 선택을 빼앗는 질문이었다. ‘원하는 답’이 이미 정해진 질문. 나는 알았다. 내가 어머니의 이름을 적으면 어머니는 오늘 승리한다. 내가 다른 이름을 적으면 어머니는 오늘은 전쟁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이렇게 멈춘다는 건, 이미 다음 수를 준비해뒀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가 고른 거잖니”라는 문장을, 그녀는 이미 속으로 쓰고 있을 것이다.
도윤 : 후인아, 오늘은 네가 결정해.
도윤이 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이 내 자존심을 세우는 동시에 무너뜨렸다.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누구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어머니가 바로 반응했다. 도윤을 바라보진 않았다. 바라보는 순간 도윤이 사람이 되니까.
어머니는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사람을 풍경으로 만든다.
어머니 : 네가 결정하긴 뭘 결정해. 너 지금 컨디션도 들쭉날쭉한데.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서류봉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덧붙였다.
어머니 : 그래서 내가 말했잖니. 네 주변은 좀 단정해야 한다고.
단정. 어머니가 사람에게 붙이는 가장 무서운 단어. 단정해지면 안전해지고, 안전해지면 통제할 수 있으니까.
단정이라는 말은 늘 내 감정의 잔가지를 쳐내고, 남은 줄기만 ‘정답’처럼 세우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나는 펜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을 들키면 내 선택은 ‘무능’으로 처리될 것이다.
나는 그게 싫어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후인 : 잠깐만요. 제가… 화장실 좀.
나는 도망치듯 걸었다. 도망치는 건 겁이 아니라, 시간을 확보하는 방식일 때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봤다. 버스 창문에 비친 얼굴과 비슷했다.
익숙한데 낯설었다. 기억이 아니라, 표정이 먼저 흔들렸다. 나는 거울 속 나를 향해 속으로 말했다.
지금 이 얼굴로, 내가 내 이름을 지킬 수 있을까.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도윤이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받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받는 순간, 내가 또 “잡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대신 메시지가 왔다.
‘나는 네가 원할 때만 네 옆에 설 수 있어.’
그 문장에는 묘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 “항상”이 아니라 “네가 원할 때만”.
도윤이 처음으로 내게 주는 ‘경계’ 같았다. 경계는 차갑지만, 경계가 있어야 관계는 내 것이 된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손바닥을 펼쳤다. 오늘은 주먹을 쥐지 않기로 했으니까.
주먹을 쥐는 순간, 나는 또 ‘붙잡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손바닥을 펼치면 아프다.
대신, 내 손이 내 손이라는 감각이 돌아온다.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접수대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마치 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는 듯 아직 펜을 들고 있었다.
펜의 방향이 서류의 빈칸 위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도윤은 내 눈을 똑바로 봤다.
그 눈빛은 “써”가 아니라 “네가 고르면 돼”였다.
고르는 일이 무서운 사람에게,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책임이 될 때가 있다.
나는 오늘 그 책임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피하는 순간, 내 인생은 다시 누군가의 문장으로 정리될 테니까.
나는 펜을 어머니에게서 뺏듯이 받아 들었다. 종이 위의 빈칸이 갑자기 너무 넓어 보였다.
칸 하나인데, 내 삶의 문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쓰는 건 이름 하나지만, 어머니는 그 이름으로 규칙 전체를 다시 쓸 것이다.
도윤은 그 이름으로 내가 무너질 때 옆에 설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름으로 내가 누구에게 말해질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펜끝을 빈칸 위에 올렸다. 무엇을 쓰든, 오늘 이후 나는 ‘내가 쓴 이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무서운 건, 그 책임을 누군가가 대신 지게 해주겠다고 말할 때였다.
대신이라는 말은 다정하지만, 대신이 반복되면 나는 점점 ‘결정할 수 없는 사람’으로 굳어진다.
나는 그 굳어짐을, 오늘 처음으로 거부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