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24

요즘의 '각주구검'

by NaeilRnC

어제 오후 전화를 대신 받았다.


“우리 집 앞 전봇대에 불이 안 들어오는데 고쳐줘야지.”


다짜고짜 집 앞 전봇대에 불이 꺼졌다고 했다. 응? 갑자기 뭔 소리지? 순간 당황해서 어디로 전화를 하신 건지 물어봤더니, 그는 오히려 더 크게 소리를 쳤다.


"아니, 우리 집 앞 전봇대에 불이 안 들어와서 고쳐달라는데 그게 할 소리야?”
“저, 선생님. 그럼 위치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젊은 사람이, 우리 집 앞이라니까!”
“네, 지금 불이 안 들어와서 불편하시다는 말씀이시죠?”
“불편하니까 전화했지! 빨리 고쳐줘요.”


밝은 대낮이었다. 집 앞이 어두울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전화했는지부터 확인하지 않았다. 기관이 맞는지, 담당이 맞는지, 주소를 말해야 처리되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세계에서 중요한 건 단 하나였다.

“우리 집 앞.”


나는 좌표를 물었고, 그는 좌표를 거부했다.

위치를 알아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는데도, 그는 위치를 반복했다.

마치 “우리 집 앞”이라는 말을 여러 번 읊으면, 전봇대 불빛이 알아서 켜질 거라 믿는 사람처럼.

전화는 설명이 아니라 주문이 되고, 나는 그 주문을 해독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그때 느꼈다. 이건 민원 전화가 아니라, 내가 요즘 회사에서 받는 지시와 같은 형식이었다.

“툭, 하세요.”와 “우리 집 앞.”


정보가 아니라 표식만 던져놓고, 결과만 요구하는 문장.

설명을 생략한 쪽이 시간을 아낀 만큼, 상대는 맥락을 추측하느라 더 오래 헤맨다.

그런데 그 헤매는 시간은 늘 실무자의 책임이 된다.

“왜 안 물어봤냐”는 말은 사실상 “나는 말 안 했지만, 네가 알아야 했잖아”라는 형태의 완벽한 책임 전가다.


그 순간 ‘각주구검’이 떠올랐다. 배가 움직였는데도 칼이 떨어진 자리에만 표시를 남겨두고, 그 표시를 믿고 다시 칼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 상황은 변했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은 표식에 집착한다.

바뀐 건 바뀌었고, 확인해야 할 건 확인해야 하는데, 그는 ‘우리 집 앞’이라는 한 문장만 붙잡고 있었다.

표식은 변하지 않아서 편하다. 현실은 변해서 귀찮다.

그래서 사람은 현실을 따라가기보다 표식을 붙잡고, 그 표식이 통할 때까지 상대를 흔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각주구검이라는 말이 떠오르자 윤봉길의 ‘묘표(墓表) 사건’ 일화가 같이 떠올랐다.

1926년 무렵, 글을 모르는 한 청년이 공동묘지에서 묘표를 여러 개(혹은 모조리) 뽑아 들고 와서 윤봉길에게 “아버지 묘표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청년이 묘표를 뽑아온 원래 꽂혀 있던 위치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아버지 무덤을 찾는 일보다 더 큰 일이 터졌다. 아버지 무덤뿐 아니라 다른 무덤들의 위치까지 뒤섞이게 만든 것이다. 묘표를 뽑아오는 건 ‘찾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찾을 수 없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표식을 쥐는 순간, 질서가 사라졌다. 윤봉길은 그 일을 통해 ‘무지’가 개인의 질서만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까지 붕괴시키는 적이라는 충격을 받았고, 이후 문맹퇴치·야학 같은 농촌계몽운동으로 이어졌다고들 설명한다.


나는 그 전화를 끊고 잠깐 멍해졌다. “우리 집 앞”이라는 말은 분명 주소 같지만, 주소가 아니었다.

표식 같지만 표식이 아니었다. 칼이 빠진 자리의 표시처럼, 묘표를 뽑아 들고 와서는 “찾아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자기 세계의 기준을 내게 던져놓고, 내가 알아서 현실로 바꾸길 요구했다.


그제야 알겠다. 그 전봇대가 문제인 게 아니었다. 표식을 현실로 착각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방식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생각보다 자주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겪는다. 누군가는 “이해를 못한다”고 말하며 상대를 탓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말은 “내가 설명할 책임은 없고, 네가 알아서 맞춰라”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해는 능력이 아니라 협업인데, 협업을 포기한 사람이 먼저 ‘이해력’을 문제 삼는다. 각주구검의 표식은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한 표식이 상대를 움직여주길 바랄 때, 소통은 대화가 아니라 지시가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고장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설명을 생략한 사람이, 이해를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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