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서서 - 또 다른 선택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배경 : 박사과정생이 학위를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주변에도 수료만 남긴 채 멈춰 선 사람들이 여럿 있다. 예전엔 그 이유가 쉽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하지 왜 멈췄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을 더 이상 가볍게 던질 수 없다.
나 역시 박사수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 ‘연구자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라는 첫 질문 앞에 시작된 나의 흔들림에 관한 기록이다.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미 8년 넘게 현장에서 연구를 해왔고, 이제 그 경험을 학문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
보고서를 쓰고, 정책을 분석하고, 지역의 변화를 숫자와 서사로 풀어내는 일은 이미 익숙했다.
그래서 박사과정은 그 연장선 같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연구자로 ‘일하는 것’과 연구자로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논문을 쓰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 질문을 앞으로 5년, 10년 동안 계속 붙잡고 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깊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사과정은 학사나 석사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다. 박사과정의 핵심은 ‘공부’가 아니라 ‘지도교수와의 관계’다.
지도교수 입장에서 박사과정생은 함께 연구의 방향을 만들어갈 잠재적 동료이기 때문에, 지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정은 학생에게 학위과정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순간이 된다.
문제는 내 연구주제가 너무 경계에 서 있는 주제라는 점이다. 지방분권, 감사체계, 인구감소, 지역정책평가...
이들은 각각 다른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정책학, 재정분권, 지방행정.... 어느 축에 놓아도 어딘가 조금씩 어긋난다.
그리고 이 애매한 경계성이, 결국 고스란히 나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
최근 몇몇 교수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흥미로운 주제이긴 한데… 제가 지도하기에는 전문성이 조금 애매합니다.”
그 말의 섭섭함보다, “내 연구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낯설어서 그렇다”는 사실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 결과, 나는 아직 내 논문을 지도해 줄 ‘한 사람’을 찾지 못한 채 출발선에 아직 머무는 연구자가 되었다.
박사과정을 중단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생각보다 ‘공부 자체의 난이도’와는 거리가 멀다.
논문이 어려워서, 이론이 이해가 안 돼서만이 아니다.
대부분은 사람과 제도의 벽, 구조적 여건과의 충돌,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좌절이 누적되면서 생겨난다.
나 역시 지금 흔들리는 이유가 학문적 역량이 부족보다, 내 위치 자체가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최근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이 주제로 내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정말 이 연구를 지도해 줄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다음 후보에게도 거절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의 방향을 잃는 순간 찾아오는 불안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한 번 무너지면 쉬이 복구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연구가 다층적이고 경계 위에 있다 보니, 어떤 교수도 “이건 내 영역이니 맡겠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연구 주제의 애매함이 곧 ‘연구자인 나의 정체성의 애매함’으로 번져가는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운이 안 좋았다는 얘기네.”
“좋은 지도교수만 만났어도 안 흔들렸을 텐데.”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흔들림을 전적으로 타인의 책임으로 두고 싶지는 않다.
지도교수를 찾기 어려운 연구를 선택한 것도 나고, 경계에 선 주제를 붙잡고 계속 버틴 것도 나다.
지금의 이 흔들림은, 어쩌면 “연구자로 산다는 것”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한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어디까지 이 질문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붙잡은 이 주제가, 내 삶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도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이야말로 연구자의 길 초입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맞닥뜨려야 하는 첫 번째 흔들림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박사수료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고민은 ‘포기’에 가깝지 않고, ‘정의의 재구성’에 더 가깝다.
교수 한 명이 내 주제를 소화하기 어렵다고 해서 내 연구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누구의 평가로도, 내 탐구는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서 있는 문제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내 연구가 너무 낯설어서 지도할 사람이 적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이 연구를 설득력 있게 재정비하지 못한 것인지.”
잠겨 있는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문을 찾으면 된다.
아니면, 애초에 없던 문을 새로 만들 수도 있다. 박사과정은 결국,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흔들림은, 단지 위기만이 아니라 ‘연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첫 질문이자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나는 박사수료와 학위 사이를 오가며 계속 고민할 것이다. 결정은 쉽게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 선택은 결국 나의 것이라는 점이다.
지도교수를 찾기 어려운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박사를 하든, 수료를 하든, 잠시 멈추든, 다시 시작하든 그 방향은 내가 정한다.
그리고 그 의미 역시 남이 아니라 내가 부여한다. 지금의 나는, 남이 만들어 놓은 ‘정상 코스’가 아니라 내 속도, 내 결, 내 질문에 맞는 길을 다시 그려보고 있다.
그 흔들림의 시작점에 서서 나는 조금 늦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나는, 연구자로 살겠다는 질문을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실 하나면 지금 이 흔들림을 버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