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시간
배경 : 박사과정은 지식을 축적하는 여정보다 ‘나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시간에 가깝다.
지도교수에게 거절당했을 때, 연구가 막혔을 때, 방향을 잃었을 때 흔들리는 것은 연구가 아니라 늘 ‘나’였다. 그리고 요즘 나는 이렇게 느낀다. 연구자의 정체성은 안정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새롭게 구축된다.
어떤 거절은 부드럽고, 어떤 거절은 칼날처럼 찌른다. “지도가 어렵다”는 말은 후자였다.
그 말은 연구 주제를 향한 평가가 아니라 “너는 아직 이 세계의 완전한 구성원이 아니다”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그래서 흔들린 것은 주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내가 선택한 질문은 틀린 걸까?”
“나는 이 길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을까?”
“왜 나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고립된 감각을 느끼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멈춰 섰고, 그 멈춤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무너뜨려 3일 동안 앓아눕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세우기 위한 ‘쉼’이었다.
흔들린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더 버텨.” “더 강해져야지.”
하지만 나는 버티는 힘이 의지에서 나온다고 믿지 않는다. 버티게 하는 건 ‘기술’이다.
그 3일 동안 정신이 드는 틈마다 나는 글을 썼다. 처음엔 무너진 감정을 휘갈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 내 마음의 어느 부분이 깨졌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글쓰기로 무너진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다듬기로 생각에 구조를 만들어주고 근거를 찾음으로써 혼란을 다시 이해로 되돌렸다. 그 과정이 쌓이자 흔들린 마음은 조금씩 형태를 회복했다.
흔들림을 견디는 기술이란 ‘내면을 외부로 꺼내는 연습’이었다.
연구자의 삶에서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질문하고, 의심하고, 다시 질문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읽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불안은 보통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예측 불가능성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평가의 시선 — 타인의 기준이 개입할 때 커지는 감정
미래의 압력 — 현재를 흐리게 하는 도달 불가능성
이 세 가지가 겹칠 때 불안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가?”
“이 흔들림은 누구의 시선 때문인가?”
“지금 해결할 문제인가, 시간이 해결할 문제인가?”
불안을 층위별로 분리하자 ‘내가 붙잡아야 할 불안’과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 불안’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대부분의 불안은, 붙잡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흔들리지 않는 연구자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연구자다.
실패의 순간보다 흔들리는 순간이 연구자에게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연구자 정체성은 논문이나 학점 같은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절, 좌절, 고립감, 불안, 멈춤, 재정렬, 회복 이 작은 감정의 파편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기 때문이다.
흔들렸기 때문에 나는 내 주제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흔들렸기 때문에 이 질문이 나를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흔들렸기 때문에 나는 다시 연구자로 서고자 했다.
흔들림은 무너짐의 신호가 아니라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진동이다.
흔들리지 않는 연구자는 없다. 그러나 흔들림을 읽을 수 있는 연구자는 있다.
나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도 글을 쓰고, 내 불안을 해부하고, 내 마음의 균열을 매만진다.
흔들렸지만,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흔들린 만큼 다시 세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연구자의 정체성은, 안정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