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끝에서 찾은 중심

결국 선택은 나의 몫

by NaeilRnC
7편, 흔들림 끝에서 찾은 중심.png


배경 : 박사과정을 이어갈지, 수료를 선택할지, 완전히 다른 길로 갈지. 최근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하지만 멈춰 선 이유는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다.

이 글은 그 갈림길에서, “그래도 결국 선택은 나의 것”이라는 문장에 도달하기까지의 기록이다.


□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조용하게 온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결정해야 할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야.” 그 말을 한동안 믿었다.

언젠가 마음 깊은 곳에서 번뜩 깨달음을 얻어 “그래, 이 길이야”하고 확신하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경험한 선택의 순간은 훨씬 더 조용했다. 어떤 극적인 사건도, 인생을 바꾸는 명언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밤,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어떤 결정을 하든 책임질 수 있다면, 그게 내 길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두려웠던 건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잘못 보일까 봐’였다.


□ 흔들림이 가르쳐 준 것은 ‘중심의 주체’였다

지도교수도 없고, 연구주제는 경계에 서 있고, 제도 밖 경험이 길어 제도 안에서는 애매한 위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연구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오래 흔들리다 보니 조금 다른 결론에 닿았다. 연구의 방향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학위가 날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맞는 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이유로 그 길을 선택하느냐였다.


박사과정을 계속 가겠다는 결정이든, 수료 후 다른 방식의 연구를 선택하는 결정이든 그 결정을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순간 그 선택은 나의 길이 된다.


□ 선택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지만, 나를 다시 정의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박사과정을 계속한다면, 그건 박사라는 타이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한 번쯤은 내 질문을 학문의 언어로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반대로 수료를 선택하게 된다면, 그건 실패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현장에서 더 잘 펼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선택은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박사를 하든, 수료를 하든, 어느 쪽에도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그 선택의 이유를 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다시 정의되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은 앞으로의 인생 시나리오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겠다는 것인지 선언하는 일에 가깝다.


□ 그래서 이제 나의 기준으로 결정하려 한다

완주를 할 것인가? 수료를 할 것인가? 연구를 할 것인가? 일을 계속할 것인가? 나는 여전히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건 하나 있다. 결정의 기준이 더 이상 남에게 두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이 선택을 하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가 아니라 이 선택을 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내가 정말 두려워했던 것은 틀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납득하지 못하는 길을 남의 기준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정리를 하고 싶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 선택은 결국 나의 것이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흔들림 끝에서 찾은 중심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내가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었다.

이전 06화제도 밖의 연구를 상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