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이후의 연구

나만의 방법을 다시 세우다

by NaeilRnC
8편, 흔들림 이후의 연구.png


배경 : 박사과정에 들어오기 전 나는 8년간 민간에서 연구를 해왔다. 그 경험은 학문제도 밖의 방식이었고, 때로는 ‘이건 학문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흔들림을 지나고 보니 오히려 내 방식이 한층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내 방식에 대한 질문

현장에서 일할 때 나는 이런 방식으로 연구를 해왔다.


"숫자만 보지 말고 그 숫자가 만들어진 상황과 관계를 같이 보자"

"보고서의 문장보다 그 문장을 말하던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자"

"정책 목표보다 그 정책이 통과될 수 있는 구조와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자"


논문에서 말하는 엄밀한 방법론과는 많이 다른 결이다. 그래서 박사과정 초반에는 내 생각이 애매한 방식은 아닐까? 학문적으로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도 안에서 흔들리고, 지도교수도 없이 고민하고, 수료를 떠올리며 불안을 해부하는 동안 오히려 한 가지는 선명해졌다.

나는 현장에서 나의 모든 감각을 학문의 언어와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


□ 나는 틀 안과 틀 밖을 잇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학문은 깊이를 주고, 현장은 넓이를 준다. 학문은 이론과 개념, 방법론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고 구조를 드러내고 현장은 그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예외, 부작용, 미묘한 균열을 보여준다. 나는 이미 두 세계를 모두 경험했고 이 둘 중 하나를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현장만 보면 구조를 설명한 언어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의 전문성을 위해 학문을 더 배고우자 했지만 빠르게 변화하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유연함이 학문의 세상을 너무 느리게 느끼게 만들었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하지만 신기하게 현장을 설명할 수 있는 그 방법론과 개념을 이제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문제의식은 현장에서 가져오되, 데이터와 사례는 학문을 통해 수집하고, 해석은 두 세계의 언어를 동시에 고려해서 풀어내는 연구자의 역할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길이 완전히 정통 학자의 길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가장 오래, 그리고 내 모습대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 연구방식의 재구성을 위한 흔들림

내가 흔들리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기존의 정답처럼 보이는 연구 틀에 나를 맞추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흔들렸기 때문에 연구자가 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할 때 가장 진정성 있게 고민할 수 있을까로 비로소 질문이 달라졌다.

결국 흔들림은 내 방식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내 방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고르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의 루틴과 문법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 루틴은 논문만을 위한 것도 보고서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연구자로서의 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뼈대다. 나는 이제 남이 만들어놓은 연구 문법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나만의 연구 문법을 조금씩 세워야 한다. 비롯 그것이 화려하거나 반듯하지 않을지라도 더 솔직하고 더 오래가고 더 내 삶과 맞닿아 있다면 그것이 비로소 나의 진정한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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