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흔들리지 않기

수료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

by NaeilR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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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수료”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공기는 이상할 만큼 무거워진다.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지만,

박사과정에서 수료는 일종의 ‘중단’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한다.

수료가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실패여서가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 불안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의 내 마음을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 ‘불안을 읽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흔들림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 흔들림의 구조는 이해하고 싶었다.


□ “수료”라는 단어가 불안을 자극하는 진짜 이유

제도적으로 수료는 단순하다. 수업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하고, 연구계획서를 제출해 논문만 남겨둔 상태.

논리적으로 보면 박사과정의 70~80%를 이미 완성한 상태다.

그런데도 수료를 말하는 순간 마치 어떤 패배를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이유가 수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단어에 반응하는 ‘내 불안의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불안은 늘 이렇게 작동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커지고 타인의 시선에서 증폭되고 미래에 대한 압박에서 형태를 갖춘다. 그리고 박사과정의 수료는 이 세 요소가 정확히 겹쳐져 있는 지점이었다.


□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혼자가 되었다는 감각과 닿아 있다

박사과정에서 가장 흔한 말 중 하나가 있다. “논문은 결국 혼자 쓰는 거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써야 한다는 사실보다 혼자 남겨질 수 있다는 감각이 더 큰 불안을 만든다.

지도교수가 없다는 사실, 앞으로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 내가 선택한 연구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이것들은 모두 “불확실성”이라기보다 “관계의 부재”로 인식된다.

그래서 수료를 고민하는 순간 내 마음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이 길의 끝에서 혼자인 걸까?”

그러나 나는 곧 깨달았다. 외로움은 상황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을.


□ 남의 기준을 내 불안의 크기로 착각하지 않기

수료를 말했을 때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은 이랬다.


“아깝다.”

“그래도 끝까지 하는 게 좋지 않아?”

“왜 멈추려고 해?”


이 말들은 대부분 ‘학위냐 아니냐’라는 외부의 기준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내 불안은 학위 유무 자체가 아니라 내가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내면의 질문에서 나왔다.

불안은 언제나 타인의 기준을 끌어다 내 마음의 크기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질문을 바꿨다.


“지금 흔들리는 건 내가 원하는 방향을 못 찾아서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준을 너무 신경 쓰기 때문인가?”


그 질문만으로도 불안의 절반은 줄어들었다.


□ 불안을 해부해 보면, 그 안에 길이 보인다

나는 어느 날 불안이 심하게 몰려오던 날,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지금의 불안은 예측 불가능성 때문인가?

타인의 시선 때문인가?

앞으로의 미래 때문인가?


딱 세 가지로 쪼개면 불안은 더 이상 거대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대부분의 불안은 지금 당장 해결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전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했다.

불안을 읽는다는 것은 그 불안을 해체해 ‘내가 잡아야 할 것’과 ‘놓아도 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 수료는 포기가 아니라, 불안 위에 세워지는 하나의 선택지다

나는 이제 수료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다. 수료는 중단이 아니고, 패배도 아니고, 더더욱 낙오도 아니다.

수료는 내 연구가 새롭게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고,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배치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수료 이후에도 더 넓고 깊은 연구를 이어간다.


어떤 이들은 행정 현장에서, 어떤 이들은 정책의 최전선에서, 어떤 이들은 글과 강연으로 연구를 이어간다.

그러니 수료는 “끝”이 아니라 연구가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는 선언이다.


□ 불안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연구자에게 불안은 숙명에 가깝다.

그러나 불안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불안은 더 이상 나를 흔드는 힘이 아니다.

불안을 읽는다는 건 내가 흔들리는 순간을 이해하는 일이었고, 내가 견딜 수 있는 방식을 찾는 일이었고,

내 연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예전처럼 망가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불안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읽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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