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와 학생 사이, 권력보다 관계가 어려운 이유
배경 : 박사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잔인한 부분은 지식이 아니다. 누구도 쉽게 말해주지 않는 ‘관계’다.
지도교수와 학생이라는 구조적 불균형 속에서 우리는 쉽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을 견디는 과정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라는 문제와 마주한다. 이 글은 그 흔들림을 통과해 오며 내가 발견한 아주 작은, 그러나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썼던 기술들에 대한 기록이다.
박사과정에 들어오자마자 모두가 말했다. “논문은 결국 완성된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다.”
그 말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지도교수–학생 관계는 처음부터 완벽한 수평이 되기 어렵다.
교수는 심사권과 승인권, 연구실과 평판을 갖고 있고, 학생은 거의 모든 위험을 혼자 감당한다.
이 관계는 학문적 관계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감정적인 관계가 된다.
그래서 관계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논문이 아니라 자신감이고, 연구가 아니라 자존감이다.
지도교수 후보들에게 거절을 당했을 때 나는 단순히 ‘승인받지 못했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연구자로 적합한가’라는 질문이 불쑥 솟구쳤다.
“내 연구가 너무 낯선 걸까?”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린 건 아닐까?”
교수의 한 문장은 내 안에서 며칠, 몇 주를 흔드는 잔향이 되었다. 거절 자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 거절이 나의 정체성을 파고드는 방식이었다. 나는 연구 때문에 흔들린 것이 아니라, 연구를 둘러싼 관계 때문에 더 깊이 흔들렸다.
나는 아주 작은 기술들을 통해 그 흔들림의 폭을 조금씩 줄여갔다.
크게 대단한 기술도 아니지만, 이 작은 방법들이 나를 버티게 했다.
1) ‘질문의 원래 자리’를 계속 돌아보았다.
거절을 받을수록,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나는 자꾸 본질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애초에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질문은 무엇이었나?” “이 질문이 왜 나를 이 길로 데려왔나?”
이 질문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2) 관계의 부담을 ‘나의 잘못’으로 해석하지 않기
지도교수 선택은 개인의 성격이나 학문적 능력보다 연구적 궁합, 분야의 적합성, 교수상황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니 거절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내 결함’은 아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것이야말로 나를 지키는 가장 큰 방패였다.
3) 불안을 감추지 않고 기록하기
불안은 감추면 더 크게 자란다. 그래서 나는 흔들리는 순간들을 그대로 글로 적기 시작했다.
이 연재 글도 사실 그 기록 중 일부다. 적어두고 나면 불안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이 된다.
사실이 되면 더 이상 나를 삼키지 못한다.
4) ‘나의 속도’를 인정하기
박사과정은 누구보다 빠르게 걷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누구도 정답을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속도를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내 속도가 느린 게 아니라, 내 길이 다를 뿐이다.”
이걸 인정하고 나자 남의 속도를 따라가려는 조급함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흔들렸다고 해서 내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흔들린다는 것은 지금 이 관계가, 이 연구가, 이 길이 내 삶에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증거였다.
흔들렸다. 그러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흔들리면서도 서 있었다. 그건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 주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붙잡는 기술을 조금이라도 배웠기 때문이다. 흔들림 속에서, 나는 연구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많이 흔들렸던 순간들이 내 연구자의 뼈대를 만들었다. 거절을 경험했고,
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고립을 느꼈고, 나 자신을 의심하는 밤들을 지나왔지만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지를 배웠다.
연구자는 거대한 성취보다 이런 작은 기술들로 버텨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흔들리지만, 흔들리는 나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흔들리는 연구자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관계 때문에, 구조 때문에, 때로는 나 자신 때문에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흔들림을 버틸 기술이 이제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술이 내 연구를, 내 삶을, 나라는 존재를 지탱해 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