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32

기로에 서 있다

by NaeilRnC

한때는 내게 주어진 길이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래서 좌절한 적도 많다.

난 왜 이 일만 많은 컨설팅의 길을 선택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애초에 나와 이 일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그 감각이 자꾸 되살아난다. 그래서 한때는 업종을 바꾸고 싶었다.

제발, 제안서만 쓰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公적 업무를 시작해보니, 이번엔 또 다른 방식으로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느리고, 과정이 길고, 중간중간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동안 내가 해오던 컨설팅은 내가 주체였다. 내가 방향을 잡고, 내가 속도를 올리고, 내가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나는 그저 일을 위한 도구일뿐. 일이 진짜 주인이다.

일이 나를 지나가고, 나는 그 일의 이동 경로 중 하나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동안 공무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느리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답답함이, 이제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 느림을 견디고, 그 과정을 버티고, 그 브레이크를 받아들이면서도 일을 계속 굴리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자괴나 자책이라기보다, 스타일이 맞지 않음을 뼈저리게 체감하는 쪽에 가깝다.

내 속도와 이 일의 속도는 같은 도로를 달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기로에 서 있다.

3일을 버텨냈고 9일을 견뎌왔는데, 이제는 90일을 상상하게 되니까 고민이 더 늘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가 “이게 내 기본값이 될지도 모른다”로 변하는 지점이 바로 그쯤이니까.

이 고민에 불을 붙인 건 어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술찾사’ 멤버였던 동료에게 오퍼가 들어왔다.

조건은 꽤 합당했다(솔직히 말하면 매우 좋았다).

심지어 여자친구 자리까지 세팅되어 있다는 말도 덧붙었다.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갔다.

(솔직히 나는 계산을 잘 못 한다. 그냥 솔깃했다.)


이곳은 안정감이 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도 있다. 연봉은 낮지 않지만, 그렇다고 높지도 않다.
그곳은 불안감이 있다. 1시간 30분 이상의 먼 거리도 있다. 연봉은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낮지도 않다.

조건만 놓고 보면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머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부심’이나 ‘성취감’ 같은 멋있는 말 때문이 아니다. 내가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놈’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놈’보다 그 개인을 ‘원래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분위기와 구조가 문제다.

회사를 옮긴다고 해서 ‘그놈’ 같은 존재가 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여기보다는 내가 일을 더 ‘내 방식으로’ 밀어붙일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조직의 문제는 ‘그놈’보다 그를 보호하는 윗선의 표정이다.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괜찮다는 듯 넘어가는 표정. “그럴 수도 있지”로 모든 것을 덮는 표정.
떠나는 사람은 유난이 아니라 경고인데, 경고를 무시하는 조직은 결국 같은 방식으로 무너진다.


나는 요즘 그 무너짐이 ‘사건’이 아니라 공기처럼 진행된다는 걸 배운다.

여기서 ‘철의 장막’은 사람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무능이 벌어야 할 비용을 연기하는 구조처럼 느껴진다.

그에게 패널티를 주는 순간 위계가 흔들리거나 혹은 인정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아래에서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윗선은 눌러버린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체감한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연봉보다 ‘무능이 어떻게 자리 잡는지’, ‘그걸 누가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지’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적 영역에서는, 일을 못하는 건 결국 실적과 성과로 드러나고, 그러면 회사는 어느 순간 단호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 무능이 ‘보호’로 장기 체류하기 어려운 구조일 가능성은 있다. 그 차이가 지금 내 고민을 더 크게 만든다.


술찾사의 그 동료는 일을 잘하는 친구고, 나는 이미 그곳에서 한 번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승낙하는 순간, 다음 날부터 출근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곳의 일은 이곳처럼 생소한 일이 아니다. 나는 혼자 출장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 익숙하다는 건 단순히 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나는 익숙한 일과 익숙하지 않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바로 성과가 날 수 있는 곳과, 내가 잘 모르고 성과도 바로 나지 않는 곳.
지금의 이곳은 고향이라는 이점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최소 2단계만 거치면 형제요, 남매요, 친구가 될 수 있다.

그 촘촘함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더 무거운 끈이 되기도 한다.


자, 이제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실 별것도 아닌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내 안에서는 선이 확연하게 그어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기로라는 건 늘 그렇듯, 어느 쪽이 ‘정답’인지가 아니라 어느 쪽이 감당가능한 것인지부터 묻는다.


그리고 오늘 입금된 성과급. 난 성과급이라는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내가 흔들리는 이유는 '사람'인지 '돈'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휴가는 먹는거였고, 성과급은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 대해 "가장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밥 잘 사주고, 술 잘 사주면 끝이다. 내 몸을 갈아넣는다.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면 밤샘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게 놀라웠다. 그래서 오늘 고민이 더 깊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느낌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