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46

성실한 사람이 먼저 떠나는 이유

by NaeilRnC

회사에서 무임승차는 대개 큰 소리로 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 회의 자리에서 “저 사람은 일을 안 한다”라고 선언하는 일도 거의 없다. 오히려 반대다.

무임승차는 늘 조용히 시작한다.


첫 번째는 우연처럼 지나간다. 급한 일이 생겼고, 누군가의 손이 비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한다. 두 번째도 별일 아니다. “팀이니까.” “어차피 결과만 내면 되니까.”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은 대개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세 번째부터는 ‘일의 양’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 바뀐다. 처음에는 “내가 커버할 수 있다”였던 마음이, 어느 순간 “왜 늘 내가 커버하지?”로 변한다. 그리고 네 번째쯤 되면 질문은 더 노골적으로 바뀐다. “여기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무임승차가 무서운 이유는 업무가 늘어서가 아니다. 업무가 ‘의미를 잃는 방식’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더 한다는 사실이 ‘내가 능력 있다’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냥 메우는 사람’으로 고정되는 순간이 온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해결책을 쉽게 말한다.


“무임승차자에게 페널티를 세게 주면 된다.”

“평가를 더 엄격히 하면 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결론은 너무 순하다. 페널티는 사후조치다.

이미 팀의 신뢰는 깎였고, 이미 성실한 사람은 지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페널티가 작동하는 조직은 사실 많지 않다.

상사는 바쁘고, 평가는 연 1~2회이며, 팀 단위 성과는 여전히 편하다.

무임승차는 처벌이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묻어가도 손해가 아닌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성실함은 공유자원이다.

가렛 하딘(Garrett Hardin, 1968)은 「The Tragedy of the Commons」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말한다.

주인이 없는 공동의 목초지에 사람들은 자기 소를 더 풀어놓는다. 각자는 합리적이다.

내 소 한 마리 더 풀어놓는다고 당장 큰일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면 풀은 말라죽고, 결국 모두가 망한다.


회사에서 공유지는 목초지가 아니다. 회사의 공유지는 성실함과 책임감, 그리고 ‘누가 결국 해낼 거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조직을 굴린다. 무임승차가 반복될수록 이 믿음은 특정인에게 집중된다.


“저 사람은 결국 해.”

“저 사람은 마감 맞춰.”

“저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 순간부터 조직은 ‘성실한 사람’을 공유지처럼 쓴다.

성실한 사람의 에너지와 시간과 정신력을 공동 자원처럼 끌어다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유자원은 늘 같은 방식으로 고갈된다. 한 명이 오래 버틸수록, 더 많이 당한다.


무임승차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맨서 올슨(Mancur Olson, 1965)은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에서 집단행동 상황에서 개인이 합리적으로 기여를 회피한다고 설명한다. 집단이 커질수록 개인은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하겠지”라고 계산한다. 회사에서 이 계산은 너무 쉽게 성립한다.


팀 프로젝트의 산출물은 공동으로 이름이 올라가고, 결과는 팀의 성과로 기록되며, 보상은 평균으로 분배된다. 기여는 희미해지고, 결과는 명확해진다. 그러면 사람은 계산한다.


“내가 이만큼만 해도 결과는 나오겠지.”

“어차피 누군가는 하겠지.”

“그 누군가가 늘 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여기서 무임승차는 “나쁜 사람의 나쁜 선택”이 아니라 “구조가 허용한 합리적 전략”이 된다.

처음엔 누구나 잠깐 기대고 싶다. 문제는 조직이 그 기대기를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역할이 명확하지 않고, 업무가 문서화되지 않고, 누가 무엇을 했는지 기록되지 않으면 기대기는 습관이 된다. 습관은 성격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조직은 결론을 내린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도 되는 환경이 그 사람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책임이 분산되면 노력도 분산된다.

빕 라타네(Bibb Latané), 윌리엄스, 하킨스(Latané, Williams & Harkins, 1979)는 「Many Hands Make Light the Work: The Causes and Consequences of Social Loafing」에서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을 설명한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개인이 내는 힘은 줄어든다.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누가 이거 정리해 줄 수 있어?”라는 질문이 단체 채팅방에 올라오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읽음은 늘어가지만 답은 늦다. 어떤 사람은 바쁘고, 어떤 사람은 모르는 척하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 하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 한다. 대개는 늘 하던 사람이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일을 미루면 불편하고, 일정이 깨지면 불안하고, 결과가 망가지면 더 고통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그 심리를 이용하지 않아도, 그 심리 위에 올라탄다.


이때 성실한 사람은 또 한 번 선택해야 한다. 이 일을 그냥 두면 팀이 위험해진다. 내가 하면 팀은 살아난다. 팀을 살리는 선택은 처음에는 자부심으로 포장된다. “내가 해결했다.” 하지만 반복되면 자부심은 의무로 변한다. 그리고 의무는 곧 분노로 변한다. 분노는 팀에게 향하지 않는다. 대개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


“내가 왜 또 했지.”

“내가 또 받아줬네.”


성실한 사람은 무임승차자보다 먼저 무너지는 게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탓하기 시작하면서 무너진다.


“사람 탓” 문화는 설계 실패를 덮는 방식이다

무임승차가 반복되면 조직은 종종 문화적 진단을 내린다.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없다.”

“MZ는 조직에 애착이 없다.”

“요즘 사람들은 끈기가 부족하다.”


이 진단은 편하다. 설계를 바꾸는 것보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1990)은 『Governing the Commons』에서 공유자원이 무너지는 이유를 인간의 본성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공유를 유지하는 힘은 규칙, 경계, 모니터링, 반복되는 상호작용, 그리고 제재의 합리성에 있다.


회사로 번역하면 간단하다. 역할이 명확하고, 기여가 기록되고, 책임이 귀속되며, 반복 속에서 평판이 누적되는 구조가 있으면 무임승차는 통제된다. 문제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불편하다는 점이다. 기록하려면 시간이 들고, 역할을 나누려면 갈등을 감수해야 하며, 기준을 세우려면 책임이 발생한다. 그래서 조직은 대충 넘어간다. 대충 넘어가면 무엇이 남는가. 사람 탓이 남는다. 사람 탓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갈등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일 뿐이다.


성실한 사람이 떠나는 이유는 ‘월급’보다 ‘의미’다.

성실한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단지 월급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기 일을 통해 의미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성과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무임승차가 반복되는 조직에서는 의미가 사라진다.

내가 더 한 만큼 더 인정받지 않는다.

내가 메운 공백이 내 역량이 아니라 내 의무가 된다.
내가 버틴 팀은 “원래 잘 돌아가는 팀”이 된다.
내가 조금만 놓으면 팀은 “내가 문제인 팀”이 된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성실한 사람은 조용해진다. 그리고 조용해진 사람은 떠날 준비를 한다.

무임승차의 비용은 즉시 청구되지 않는다. 지연된 방식으로 청구된다. 그리고 그 영수증의 이름은 ‘이탈’이다.


결론: 무임승차의 최종 비용은 ‘이탈’이다.

무임승차의 직접 비용은 프로젝트 지연일 수 있다. 그러나 최종 비용은 다르다.

무임승차가 반복될수록 조직은 세 가지를 잃는다. 신뢰를 잃고, 기준을 잃고, 사람을 잃는다.


묻어가던 사람은 남고, 메꾸던 사람은 떠난다.

팀 성과로 묶을수록, 기여는 더 투명해야 한다. 평균을 주려면, 기록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무임승차를 줄이려면 처벌부터 시작하면 안 된다. 설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업무 역할을 문서로 고정한다. 기여를 기록한다. 팀 성과와 개인 책임을 분리한다.


“누가 결정했고 누가 실행했는가”를 흐리지 않는다. 무임승차를 인성 문제가 아니라 조직 리스크로 관리한다.

무임승차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설계의 문제다. 그리고 설계가 바뀌지 않는 조직에서는 성실한 사람이 먼저 떠난다.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 조직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에서는 이미 기울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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