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모듈란스(Homo modulans)

19. 감정조절에 자산을 깎아먹는 인간

by NaeilRnC

호모 모듈란스는 modulate (조절하다)에서 따온 말로, 삶을 바꾸기보다 기분을 조정하는 쪽을 택하며,

감정을 다루는 방식으로 소비를 습관화해 결국 자신의 자산과 선택지를 갉아먹는 인간을 뜻한다.

Homo modulans /ˈhoʊmoʊ ˈmɑːdjʊl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그에게 기분은 날씨가 아니다. 기분은 값이다. 올라가면 안전하고, 내려가면 위험한 값.

그래서 그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맞추는 것’으로 배운다.


모듈란스의 조절 장치는 단순하다. 기분이 내려가면, 결제한다.

"나를 위한 선물" 또는 "수집"이라는 형태의 조절장치는 모두 같은 기능을 한다.

지금 기분을 바꾼다. 그리고 빨리 바꾼다. 그런데 이 조절이 특히 자주 작동하는 순간이 있다.


외로움이 올라올 때다. 외로움은 이상하다. 누군가가 없어서 생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종종 ‘나를 붙잡아 줄 무언가가 없는 상태’에서 온다. 대화가 없어도 외롭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외롭다. 외로움은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내 안의 연결감이 끊어질 때 찾아온다.


호모 모듈란스는 그 외로움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한다. 외로움은 느리게 번지고, 느리게 가라앉히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불편을 부른다. 불편은 질문을 부른다. 그래서 그는 질문을 받기 전에 버튼을 누른다.

결제는 외로움이 말을 꺼내기 전에, 그 입을 막는다. 호모 모듈란스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일단 기분부터 올려야 해.”

“이거 하나 하면 괜찮아질 거야.”

“나를 위한 투자야.”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하루가 끝난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애매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묘하게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질문을 데려온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왜 이렇게 공허하지?”

“내일도 버틸 수 있나?”


여기서 필요한 건 변화일 수도 있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호모 모듈란스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면 외로움이 더 또렷해질까 봐. 또렷해지면, 내가 너무 비어 보일까 봐.

그래서 그는 버튼을 누른다. 버튼은 앱 안에 있고, 버튼은 카드 안에 있다. 결제는 즉시효과가 있다.


무언가를 샀다는 사실이 “나는 나를 챙겼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빈자리에 물건이 들어오면, 방은 잠깐 덜 비어 보인다. 하지만 금융치료의 무서운 점은 치료가 아니라 분납이라는 데 있다.

기분이 나빠질 때마다 결제하면, 그 결제는 고통을 없애는 게 아니라 고통을 다음 달로 미룬다.

다음 달 카드값은 말이 없다. 그래서 더 강하다. 그는 그때 또 조절한다.


“이번 달 좀 빡세네.”

“그래도 나한테 이 정도는 필요했어.”


여기서 루프가 완성된다.

외로움 상승 → 결제 → 회복 → 자산 감소 → 불안 증가 → 다시 결제.


외로움을 덮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만드는 구조. 그리고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사람은 더 고립된다. 돈이 줄어들면 여유도 줄어들고, 여유가 줄어들면 ‘만날 마음’도 줄어든다. 그때 외로움은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그는 또 버튼을 누른다.


나는 이 인간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소비는 필요하다. 위로도 필요하다. 문제는 소비가 ‘가끔의 보상’이 아니라 외로움을 조정하는 기본값이 되는 순간이다.


당신이 오늘 산 것은 무엇인가. 소비가 당신을 회복시켰나. 아니면 외로움을 다음 달로 넘긴 것뿐이었나.